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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부자내각의 빈곤한 인식 수준


"우리 집은 가난하다. 왜냐하면 정원사도 가난하고, 가정부도 가난하고, 운전사도 가난하기 때문이다."

확실친 않지만 학창 시절 공부했던 영어 교재에서 읽은 문장이다. '가난'을 주제로 한 글짓기에서 어느 학생이 가정부, 정원사, 운전사까지 모두 가난하기 때문에 우리 집도 가난하다는 글을 썼다는 얘기다. 당시 이 얘기를 읽으면서 한바탕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자진 사퇴한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투기 의혹과 관련해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 것일 뿐"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역시 사의를 표명한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도 유방암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 기쁜 마음에 남편이 서초동 오피스텔을 선물해줬다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런 장면은 청문회가 시작되면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27일 인사청문회에서 "골프회원권을 2개나 갖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것은 싸구려"라고 대답했다.

그는 수 십억원을 호가하는 여의도 롯데캐슬 아파트에 대해서는 "별 것 아니고, 그냥 은퇴후 연구실로 사용하려고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 여의도로 이사왔다가 바로 송파구로 옮긴 사정을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여의도는 살기가 좋지 않다"고 받아쳤다.

그는 또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질문에는 "LG연구원 이사 때 월급 700만원 이었다"면서 "재테크 안하고 근로소득으로만 48억원 벌었다"고 답했다.

같은 날 청문회에 불려나왔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는 저서를 통해 'IMF는 축복'이라고 주장한 부분이 구설수에 올랐다. 강 내정자는 청문회에서 "비효율 부문을 제거, 재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석연찮았다. "(IMF가 축복이란 것은) 서민과 동떨어진 생각으로 부동산 투기 등으로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부유층 중심 사고"라는 심상정 의원이 질타가 훨씬 더 와 닿았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로 사는 것이 비난받을 이유는 아니다. 인사청문회 검증 과정에서 각종 투기나 불법 사례가 드러나는 것 또한 특별할 것은 없다. 이번 내각이 정도가 좀 심하긴 하지만,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봐 줄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초기엔 심심찮게 봐 왔던 장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1% 내각'이란 소리를 듣는 이번 내각의 특별한 점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이런 부정과 비리를 보는 인식이다.

서민 정책을 총괄해야 할 장관 후보자가 수 억대 골프회원권을 '싸구려'라고 자신있게 대답하는 인식. 경제정책을 책임질 또 다른 장관 후보자가 서민들이 생존 걱정으로 밤잠을 설쳤던 IMF를 '축복'이라고 평가하는 인식 말이다.

게다가 청와대는 장관 후보자들의 잇단 사퇴에 대해 "제도와 시스템 때문"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인사 자료를 넘겨받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여기서 처음에 인용했던 '가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 집은 가난하다. 왜냐하면 정원사도 가난하고, 가정부도 가난하고, 운전사도 가난하기 때문이다."는 글짓기를 본 선생님이나 친구 중에 "이게 무슨 가난이냐?"고 지적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과연 글쓴이는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떻게 대꾸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도대체 무슨 말이냐? 가정부, 운전사, 정원사 모두 가난하면 가난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을 게 뻔하다.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 저 너머에 '진짜 가난'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 청문회를 보면서 20여 년 전 책에서 읽었던 한 장면이 그대로 오버랩되는 듯 해서 영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곤 이내 불편했던 그 마음은 걱정으로 바뀌었다. "저런 인식으로 만들어낼 정책이 어떤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까?"란 걱정 말이다.

'대한민국 1% 내각'이 '운전사, 정원사, 가정부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 한 두개를 내놓곤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자위하지나 않을까 정말 걱정이 된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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