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KT합병, 회오리 속으로-중]필수설비 공동활용, 상생 효과


KT-KTF 합병을 계기로 KT의 필수설비를 더 공익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논의가 많다. KT가 보유한 필수설비의 경우 워낙 덩치가 커 대체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는 반면에, 만약 필수설비를 사적으로 사용할 경우 KT의 사적 지배력이 강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수설비란 물리적으로 복제가 어려운 설비를 말한다. 누구든 그 설비를 다시 만들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데 KT가 전국적으로 가진 통신용 관로와 그 속의 전화선, 전주, 전화국의 각종 장치용 시설, 집안의 통신장비와 연결되는 가입자망이 여기에 해당한다.

KT가 공기업시절부터 땅을 파고 설치한 파이프라인(관로)은 총 11만km(통신기업 전체의 95.38% 차지)에 달한다. 전봇대(전주)도 380만개(100%)에 이른다. 과거에 비해 전주와 관로 설치는 점점 어려워져 이젠 경쟁기업이 KT 수준의 전주 관로 등의 필수설비를 까는 데만 4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이미 포장된 땅을 다시 파고 넘쳐나는 전봇대를 다시 세워야 그런 시설을 설치하는 게 가능하나 그건 국가적 낭비이기도 하고 그런 이유로 땅 파고 전봇대 세우는 일을 정부가 쉽사리 허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필수설비 중요성은 갈수록 증가

필수설비에 대한 중요성은 갈수록 증가할 전망이다. 초고속인터넷 뿐 아니라 인터넷전화, IPTV, 이동전화까지 묶은 결합상품 시대를 맞으면서 '광가입자망(FTTH)'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게 필수적이며, 가정까지 망을 포설하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에겐 관로와 전주의 확보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업자에 필수설비의 중요성이 커지지만 KT 경쟁사들은 "KT가 자사 핵심 경쟁력인 전주와 관로를 임대하길 꺼려한다"고 주장한다.

"그 쪽 실무자들이 터놓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신청해도 100% 거부될 걸, 뭣 하러 하느냐는 겁니다." 한 경쟁 업체 관계자의 증언이다.

SK브로드밴드 네트워크 구축본부 관계자는 "LLU(가입자망공동활용)를 신청해도 KT가 거부하면 그만이고, 우리로서는 관로가 비어있는 지 아닌지 확인조차 할 수 없으니 LLU는 무용지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시장을 놓고 경쟁할 때는 관로를 빌려달라는 요구 자체가 기업비밀이 흘러나감으로써 해당 기업 영업을 뺏기는 역마케팅으로 활용당하는 실정"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SK브로드밴드가 자사 인입관로가 없는 국회의사당에 들어가기 위해 KT에 내관 사용을 요구하자 "제공 가능한 관로가 없다"는 공문을 보내오기도 했지만,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다. KT 망운용정보시스템(OSS)이 공개돼 있지 않아 KT가 얼마나 여유용량이 있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쟁사들은 요금이 비싼 한전이나 LG파워콤 등 후발사업자들의 설비를 이용한다. 그나마도 한전의 전주 등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한전 배전운영처 관계자는 "대도시 등 밀집지역에는 임대 가능한 전주 비율이 확연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필수설비 업계 갈등 증폭…프랑스는 강력한 도매규제

이 같은 이유로 KT 필수설비를 둘러싼 업계의 갈등은 점점 커지고 있다.

KT는 "경쟁업체들이 필수설비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게 문제"라고 하고, 경쟁사들은 "돈내고 쓰려해도 빌려주길 꺼리는 게 문제"라고 받아친다.

KT 서정수 부사장은 국회 토론회에서 "SK브로드밴드가 설비공동활용 요구 거절을 말하는데, 사실은 2008년 12월에 한꺼번에 487건을 요청했다. 담당 직원이 2명이라 현황파악에 시간이 걸렸다"면서 "오히려 (우리 설비를) 무단사용하는 9만 건을 적발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이형희 실장은 "설비제공과 관련, 과징금 등 통신위 처벌이 있었지만 해결이 안 돼 결국 무단설치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정당한 대가를 내고 쓸 테니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한편 프랑스는 망동등 접근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광가입자망(FTTH)까지 가입자선로공동활용(LLU) 제도에 포함시킨 것. 통신망에 대한 동등한 접근이 다양한 서비스를 꽃피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규제기관(ARCEP)은 프랑스텔레콤이 관로에 여유가 없다고 반발했지만 ARCEP과 경쟁 통신업체들이 공동으로 전국 20개 지역을 정해 관로를 직접 열어 보고 관로가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다.

◆합병심사에 필수설비 대책 마련 필요

이처럼 미래 방통시장에 막대한 파급력을 지진 필수설비는 KT 합병심사의 과정에서도 핵심 검토사항이라 할 수 있다. KT 입장에선 2002년 민영화된 후로는 자사 설비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공기업 시절 큰 어려움 없이 마련한 필수설비에 대한 적절한 이용방법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 또한 적지 않다.

과거에도 규제당국들은 기업결합 심사시 경쟁제한성의 향방을 주요 심사 기준으로 삼아 왔다. 지난 2008년 2월 공정거래위원회와 옛 정보통신부는 SK텔레콤의 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 인수 심사에서 무선분야의 '필수설비'격인 800Mhz 주파수에 대한 경쟁제한성을 높은 비중으로 심사했다.

공정위는 특히 SK텔레콤의 인수 인가조건에서 경쟁촉진을 위해 800메가 독점 사용을 해소할 방안 마련을 정통부에 요구했다. 정통부 역시 KT와 SK텔레콤 통신군(群)의 시장집중도가 81% 수준에 달한다며 후발사업자들이 경쟁력 열세로 인해 시장경쟁에서 배제될 상황을 우려했다.

KT 필수설비 문제가 이번 합병과 무관한 내용이라는 주장도 있다. KT가 이 입장이고 학계에서도 이런 주장은 존재한다. 한양대 이호영 교수는 "KT가 가진 필수설비는 관로나 전주가 아닌 가입자망이 유일하며, 이미 KT가 갖고 있는 만큼 합병시 인가 심사에서 쟁점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쟁사들의 이해득실에 따른 주장과 별개로 방송통신융합시대 도래와 KT 합병이라는 계기를 맞아 기존 유효경쟁의 틀에 대한 진단 및 개선이라는 면에서 KT 필수설비에 대한 전향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필수설비 기능분리 대안으로 부상… '감독위원회'도 논의

현재 필수설비 공동활용 활성화의 대안으로 부각되는 것 중 하나는 기능분리다. 기능분리는 KT의 필수설비를 관장하는 네트워크 부문을 별도의 '회사내 회사'로 칸막이 치는 것을 의미한다. 별도 CEO를 두며, 별도의 임금체계와 승진체계, 이사회 등을 갖는다. KT라는 큰 울타리 내에 속해 있지만, 별도로 운영되는 회사라 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약 1만여 명이 이 부문에 의해 별도 회사내 회사로 자리를 이동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영국 최대 통신사 BT에서 분리한 '오픈리치(Openreach)' 모델과 유사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오픈리치가 국내 통신환경에 적용 가능한 하나의 주요 모델로 인식돼 왔다.

눈 여겨 볼 것은 BT가 오픈리치로 네트워크 조직을 분리하고서도 경영성과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오픈리치 역시 알려진 것과 달리 LLU 회선 임대증가로 수익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프랑스·유럽 순방 취재에서도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 영국 규제기관 오프콤의 톰 키드로프스키 국제협력관은 BT의 오픈리치 분리 이후 가입자망공동활용(LLU)과 전체 투자가 늘었다고 밝혔다.

오픈리치를 분리하기 전인 지난 2005년 가입자망 공동활용(LLU)은 25만 회선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550만 회선에 이른다. 아울러 BT는 차세대 네트워크(NGA, NGN) 구축에 15억파운드를 쓰겠다고 발표했다. 영국의 규제기관인 오프콤 역시 BT의 투자를 돕기 위해 LLU 요금인상을 검토하고 있을 정도다. 이는 필수설비를 분리하지 않은 프랑스나 독일과 비교할 때 투자비가 높은 것이다.

기능분리조직이 완전한 자회사로의 분리를 뜻하지 않기 때문에 KT로선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각 영역에서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이에 KT 고위 관계자는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의 하나"라고 말했다.

이와함께 필수설비 분리가 KT에 너무 가혹한 조치라면, 필수설비에 대한 '상시감독위원회'도 생각해 볼 만 하다는 주장도 있다. 프랑스처럼 별도 조직으로 분리하진 않아도 강력한 도매규제를 할 수 있다는 것.

YMCA 신종원 부장은 "필수설비는 구조분리가 원론적으로는 맞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이지 않은 만큼, '중립적인 관리위원회'같은 걸 만들어 1~2년 시한을 정해 필수설비에 관한 중립적 사용이나 구조분리를 포함한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것으로 대안 모색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설비기반 경쟁, 냉철히 재고해야

KT의 필수설비 부문을 기능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현재로서는 KT의 사업부문간 엄격한 회계분리가 어렵다고 보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회계분리만으로는 내부의 부당한 보조를 감시할 수 없어 공정경쟁을 저해하고, KT의 지배력만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다.

앞으로의 방송통신 경쟁은 결합상품이 대세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더욱 더 공정경쟁을 위한 회계분리가 필수적이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투명한 회계분리가 어려워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규제당국이 해당 기업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없는 등 현재의 회계분리 제도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KT-KTF합병은 비용배분에 대한 검증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설비기반 경쟁정책을 멈추고 서비스 기반 경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내찬 한성대 교수는 "유럽은 케이블망(HFC)이 충분히 깔리지 않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사업자의 가입자 선로를 모든 사업자가 쓰게 해 경쟁활성화 및 투자를 유도했다"면서 "망설치 및 투자가 설비기반경쟁의 포인트라면 우리도 (유럽처럼) 서비스 기반으로 가져가는 게 어떤가, 아니면 설비기반정책을 유지할 것인가 등에 대한 의사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KT 합병심사를 계기로 기존 설비기반 경쟁정책을 진지하게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왜냐하면 정부는 설비기반 경쟁정책을 써왔지만, FTTH 시대에는 필수설비 문제로 경쟁사들이 망을 제대로 깔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설비투자는 정부가 투자를 강제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좋은 서비스를 제 때 출시하기 위한 기업가 정신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을 얻는다.

또한 합병심사를 앞둔 KT로서도 자사 서비스 출시 로드맵에 따른 투자가 아니라, 공무원 책상에서 나오는 투자 계획을 인가조건으로 받지 않을 명분이 생긴다. 즉 KT-KTF 합병과 함께 대용량 데이터통신용이라는 '보완재'로 자리매김하려하는 와이브로에 대해, 정부로 부터 별도의 투자 확대 조건을 부여받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현아기자 chaos@inews24.com, 강호성 기자 chaosing@inews24.com, 김지연 기자 hiim29@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KT합병, 회오리 속으로-중]필수설비 공동활용, 상생 효과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