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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합병 회오리 속으로-상]10년 대계(大計)를 생각할 때다


KT-KTF 합병은 향후 수 년 동안 국내 방송통신 인터넷 시장의 구도를 결정할 중대한 사안이다. 이 때문에 합병 찬반논란이 거세다. KT측은 합병이 굳어진 시장에 변화를 주어 국가적으로 새로운 경쟁과 성장동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반면에 SK 그룹, LG그룹, 케이블TV 업계 등은 합병이 통신뿐 아니라 뉴미디어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원천 봉쇄한다며 합병반대를 외치고 있다. '심판' 역할을 맡은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어느 주장이 진실에 가까울 지 검토에 들어갔다. 아이뉴스24는 이번 합병이 국내 방송통신 인터넷 시장에 가져올 영향, 합병 심사 과정의 핫이슈, 합병을 인가할 경우 그 조건 등에 대해 3회에 걸쳐 집중진단한다.[편집자주]


수년 째 매출 12조원을 넘지 못한채 '성장정체'에 빠진 통신공룡 KT. KT가 자회사 KTF와 합병추진에 나섰다. KTF의 임원은 "큰집과 작은집이 따로 살다가 살림이 어려워 집을 합치는 것"이라고 합병의 절박함을 표현한다. 그러나 단순히 KT 집안살림을 합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업계 전체가 시끌벅적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소비자를 가운데 두고 '심판'을 하기 위해선 현실부터 정확히 봐야 한다.

◆KT-KTF 합병=확고한 통신 2강 체제

지난 2001년 양승택 장관시절 옛 정보통신부는 후발통신회사가 선발통신사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돕는 이른바 '유효경쟁정책'을 도입했다. 접속료 차등적용(2002년), 번호이동시차제(2004년) 등을 통해 국내 통신시장이 KT와 SK, LG라는 3강으로 자리잡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유효경쟁정책은 선발 사업자들에 '규제 우산' 효과로 나타났다.

LG가 경쟁력을 가지도록 돕기 위해 KT와 SKT의 요금을 규제한 게 오히려 요금인하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과거 KT 사장 후보자로 이름이 올랐던 A씨는 "정부와 KT-SK텔레콤의 거대한 규제담합이 있었다"고 평가할 정도로, 현재 국내 통신시장은 KT군과 SK텔레콤군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내전화와 인터넷은 KT가, 이동전화는 SK텔레콤이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유선통신에선 시내, 시외, 국제전화, 초고속인터넷 등에서 경쟁이 도입됐지만, 전주나 통신관로 같은 필수설비 덕분에 여전히 KT가 독점적 내지는 지배적 지위를 갖고 있다. 또한 KT는 자회사인 KTF를 통해 이동통신시장에서도 제2사업자로 활동하고 있다.

SK텔레콤 역시 KT 못지 않은 이동통신시장의 절대 강자다. 2006년 말 기준 가입자 수 규모에서 50.4%, 매출액에서 55.0%를 차지했다. 번호이동시차제 같은 정통부의 다양한 비대칭 규제에도 불구하고 황금주파수(800㎒)와 시장 선점에 따른 지배력은 여전하며, 지난 해에는 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를 인수해 유무선통합서비스를 본격화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08년 기준 전체 통신매출 중 KT군이 20조(48.6%), SK군이 13조5천억원(32.7%), LG군이 7조7천억원(18.7%)를 차지했고,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보면 SK군이 1조1천억원(53%), KT군이 6천억원(27%), LG군이 4천억원(20%)이다. 유효경쟁정책이 국내 통신시장을 ‘2강(KT-SKT)1중(LG)다약(별정통신업체 등)'으로 만든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KT-KTF 합병심사를 통해 지난 8년 동안 실패한 유효경쟁체제의 틀을 바꿔 경쟁을 활성화할 수 있을 지 관심이다.

옛 정보통신부 차관출신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변재일 의원(민주)은 "KT-KTF 합병은 국내 통신시장을 KT군(KT-KTF)과 SK군(SKT-SK브로드밴드)으로 정리하는 효과가 있고, 케이블TV방송업계가 와이브로 등을 통해 들어와 제4 통신사업자가 될 등장할 가능성은 더욱 적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KISDI 출신 이광훈 중앙대 교수도 "KT-KTF 합병은 단기적으로는 (SK텔레콤이 주도했던)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할 가능성은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LG텔레콤의 주변기업화 및 재판매(MVNO) 사업자에 대한 진입을 막아 경쟁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KT합병이 이동통신시장에서 SK텔레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지는 않겠지만, LG텔레콤이나 제4이통사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변 의원은 정부가 미래 방송통신시장의 경쟁 구도를 감안해 KT-KTF 합병인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방송통신위는 변 의원의 요구에 따라 KT 합병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연구용역해 놓은 상태다.

◆KT, 생존위해 합병...경쟁 제한성 논란 이겨낼 국가적 이익 설득해야

KT가 합병하려는 이유는 유선부문의 침체를 극복하고, 비용을 줄이며, 경쟁력을 높여 신규 융합서비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이는 유선 시장의 퇴조라는 세계적인 추세와 무관치 않다. 12조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일반전화(PSTN)의 경우 매출이 매년 5천억 원 씩 줄어들고 있다. 시내, 시외, 국제전화는 매년 5.6%씩 매출이 줄고 있으며, 초고속인터넷은 11.2%씩 성장하나 가입자가 포화돼 남의 시장을 뺏아와야 하는 처지다.

게다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여겨 막대한 투자를 단행한 와이브로와 IPTV는 언제 돈 되는 사업이 될 지 불투명하다. 현재의 사업 구조만 보면 정체를 넘어 심각한 역성장도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인 것이다. KT는 그 돌파구를 KTF 합병에서 찾았다.

합병의 효과는 클 것으로 예측된다. 무엇보다 방송통신시장의 새로운 전쟁터인 '결합 상품'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가능성이 크다. 초고속인터넷, IPTV, 이동통신, 유선전화(인터넷전화 포함) 등 이른바 4대 결합상품(QPS)전선을 완벽하게 구축하게 된다. 결합 상품을 구성하고 요금을 책정하는 데 있어 경쟁 회사에 비해 더 다양한 조건에서 더 신속한 결정을 하는 게 가능해진다.

KT는 또 합병을 통해 대외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 외에 합병 이후 중복 투자 자원에 대한 구조조정과 경영 합리화를 통해 투자 여력을 비축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합병시 결합상품, 브랜드, 유통망 등 마케팅 경쟁력은 높아지고 인력효율화 등을 통해 연간 5천억원 정도의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석채 KT 사장은 최근 KTF 합병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그 이유에 대해 크게 두 가지를 말했다. "유무선을 통합하는 합병은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것과 "(그것이) 우리나라 IT의 지평을 넓힐 것"이라는 점이다. 합병을 막는 것은 거대한 세계적 흐름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합병이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다.

KT 표현명 코퍼레이트센터장은 "합병KT는 IP, 브로드밴드, 모바일이라는 미래 발전방향에 맞춰 다양한 IP기반 신규 서비스들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초고속인터넷을 활성화한 게 포털이나 게임 같은 시장을 창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처럼, 합병으로 얻은 재원을 좀 더 개방적이어서 IT 생태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인터넷기반(All-IP)서비스에 집중투자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KT가 국내 시장에서 갖는 지배력과 위상을 감안하면 단순하게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선(善)이 될 수는 없다. 독과점이 강화돼 개별 기업에는 이득이 되지만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국가와 소비자에게는 손해가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합병은 기존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만약 공정 경쟁을 약간이라도 해치는 것이라면 그것을 만회하고 남을 국가적 이익, 이를테면 신규서비스 출시 같은 이용자 편익 증가나 글로벌 시장 진출에 따른 국민경제적 효율성 같은 것을 증명해야 한다.

◆경쟁업체들, 합병반대...규제 완화 역행 논란 잠재워야

경쟁 업체들이 주목하는 것은 통신주와 관로를 포함한 유선가입자망(필수설비)을 그대로 가지고 KT가 합병했을 때 현재 뿐 아니라 유무선통합(FMC) 같은 미래 시장에서도 경쟁이 심각하게 제한될 것이라는 점이다. KT의 필수설비가 정부기관이나 공기업 당시 국민들로부터 설치비를 받아 만들어졌는 데다, 가입자망공동활용제도(LLU)가 유명무실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특히 최근에는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과거에는 서비스별로 역무의 칸막이가 분명해 전이의 강도가 덜했으나 융합이 가속화하면서 지배력 전이의 강도와 범위가 커졌다는 것이다. 통신 분야 경쟁 업체뿐만 아니라 케이블방송 업체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 다른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경쟁이 심각하게 제한당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김형곤 LG텔레콤 상무는 "KT가 합병하면 유무선통화 중 65%가 망내 통화가 돼 할인대상이 되는데, 우리는 23%정도에 불과하다"면서 "KT가 망내할인율을 20%로 하면, 우리는 60%를 해야 비슷한 수준이 된다"면서 합병으로 인해 KT의 무선시장 지배력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티브로드홀딩스 김형준 경영기획실장은 "KT와 KTF가 합병되면 자금력, 가입자 정보 등에 대한 지배력을 IPTV에 전이시켜 케이블TV의 경쟁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특히 저가 요금 공세도 심각한 경쟁 제한이 우려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SK브로드밴드 정태철 상무는 "KT가 전주나 관로의 대체성으로 설명하는 한전의 전주는 이미 포화됐다"면서 "가입자망은 u헬스나 펨토셀 같은 미래형 서비스에서 인프라가 되지만 다른 경쟁 사업자는 제대로 포설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입자망의 중립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경쟁사들의 주장은 SK텔레콤의 황금주파수(800㎒)와 마찬가지로 KT 유선가입자망의 경제성 병목성이 갈수록 증가할 것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경제적 병목성이란 쉽게 물리적으로 복제할 수 없거나, 복제가 가능해도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 실질적으로 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러나, KT합병 반대나 가입자망 분리가 새 정부 들어 방송과 통신에서 전방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규제 완화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 지 역시 검토돼야 한다. 왜냐하면, 방송통신시장의 성장률이 '04년 이후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과잉 규제는 해당 기업의 역동성을 막아 성장 잠재력을 죽일 것이고 편파적인 규제 완화는 공룡들만 남겨 소비자 후생을 해칠 것이기 때문이다.

◆KT 합병심사, 미래 세상을 담아야

결과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가 KT와 KTF 합병을 심사하면서 우선적으로 따져 볼 일은 이 합병이 시장에 미치는 경쟁 제한성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눈여겨 볼 것은 방송통신융합서비스 시장에 미치는 효과다. 더 이상 통신, 방송, 인터넷 '따로국밥' 시장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반(All-IP)망 중심으로 다가가는 지금, 정부의 정책은 접속망의 고도화 뿐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의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따라서 지금 주목할 부분은 무조건적인 '합병찬성'이나 '합병반대'가 아니라, 기업과 시장에 가장 도움이 되는 인가조건을 붙이는 것이다.

특히 SK텔레콤의 '황금주파수'처럼 KT 지배력의 원천이 되는 전주나 관로 같은 '필수설비'로 인한 망 불균형 현상 발생여부와 평가가 시급하다. 프랑스나 영국과 달리, 가입자망공동활용제도(LLU)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유명무실해 졌는 지, 광가입자망(FTTH)시대에도 필수설비의 지배력이 여전할 지, 옛 정통부 시절 설비기반 경쟁정책과 유효경쟁정책을 함께 써 온 결과 콘텐츠는 없고 망만 고도화된 게 아닌 지를 평가하고 그 개선책을 고민해야 한다.

합병과 '유관하냐, 무관하냐'의 논란을 떠나 이는 정부가 반드시 짚어야 할 책무다. 방송통신위도 오는 19일 KT와 SK브로드밴드 등을 불러 '필수설비 공동활용'에 대한 문제를 점검키로 해 선량한 심판관으로서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이 합병에 대한 정책적 판단이 향후 방통시장 10년을 좌우할 수도 있다.

김현아기자 chaos@inews24.com, 강호성기자 chaosing@inews24.com, 김지연 기자 hiim29@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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