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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히고 설킨 고속도로 ETCS 수주전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한, 각본 없는 드라마.'

이 표현이 딱 들어 맞는, 그래서 늘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고 내렸던, 고속도로 자동통행료징수시스템(ETCS) 수주전이 오랜 시범사업을 거쳐 현재 본사업 단계에 진입하고 있어 오랜 만에 주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내년까지 전국에 ETCS를 보급하기에 앞서 올해는 우선 주요 지역에 먼저 도입한다는 도로공사의 계획에 따라, 지난 13일 62억원 규모의 '하이패스 시스템 제조 구매' 입찰이 떴으며, 26일에는 사업제안서 제출이 끝나 입찰 참여 업체들의 윤곽이 이제 모두 드러났다.

흥미로운 점은 그간 시범사업을 거치면서 도전과 응전, 은원 관계로 얽히고 설킨 삼성SDS, 포스데이타, 서울통신기술, DB정보통신(구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 등이 모두 빠짐없이 수주전에 뛰어 들었다는 점이다. 처음 출사표를 던진 LS산전이 있지만, 이 회사 역시 고속도로 통행료징수시스템을 구축했던 곳 중 하나여서, 전혀 연고가 없는 곳은 아니다.

계획대로 내년까지 전국에 ETCS가 보급되면 앞으로는 톨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요금 정산을 위해 일일히 지체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사실만큼이나, 오랜 동안 얽힌 이들 간의 과거 관계를 돌아보는 일도 매우 흥미롭다. 내달중에는 승자가 가려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수주전을 놓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들간의 엄청난 기싸움을 체감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SDS Vs 포스데이타

삼성SDS와 포스데이타는 표면적으로는 이번 입찰에서 전혀 부딛칠 일이 없다.

도로공사가 능동 RF 방식과 적외선 방식으로 나눠 사업자를 뽑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SDS는 DB정보보통신과 적외선 방식을 놓고 경쟁하고, 포스데이타는 능동 RF 방식을 놓고 서울통신기술, LS산전 등과 경합을 벌인다.

하지만, 두 차례의 시범사업을 거치면서 그 어느 곳 보다 가장 극단적인 대치전선을 펼쳐 온 곳이 바로 이 두 회사다.

2000년 4월 도로공사가 ETCS 방식으로 수동형 단거리전용통신(DSRC) 기술을 도입키로 하고 시범사업에 착수할 때만 해도 삼성SDS는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도로공사가 정보통신부의 권고를 무시한 채 수동형 DSRC 방식을 고집하다가 결국 정통부가 1년뒤 강제적으로 해당 주파수의 회수 결정까지 내리는 사태까지 빚어지자, 삼성SDS의 독주에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결국 도로공사는 기존 수동형 DSRC 방식 대신에, 능동형 RF 방식과 적외선 방식 두 가지 중 하나를 새롭게 도입키로 결정하고, 1차 시범사업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이 때만 해도 삼성SDS는, 오스트리아 이프콘의 원천기술을 가져다가 관련 장비를 개발한 AITS와 재빨리 손을 잡고 적외선 방식 적용에 나서, 승기를 잡는 듯 했다. 실제로 삼성SDS는 2003년 5월 그 어느 업체 보다 먼저 적외선 방식으로 ETCS 1차 시범 사업권을 거머 쥐었다.

이 때 국산 능동형 RF 방식을 제안했던 업체 중 포스데이타는 성능시험 중 추돌사고로 탈락하고 나머지는 기술 평가에서 모두 탈락해 삼성SDS가 다시 독주의 발판을 공고히 한 듯 했다.

하지만, 포스데이타의 진정 제기로 조사를 벌인 감사원이 한달 뒤 바로 '국산 기술인 능동형 RF 방식 재테스트'를 도로공사에 권고하면서, 또 다시 삼성SDS의 독주에 제동이 걸리고 만다.

감사원의 권고에 따라 2004년 1월 능동형 RF 방식 사업자를 별도로 선정하기 위한 입찰이 실시된다.

바로 이 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속도로 추격전'이 성능시험 과정에서 벌어진다.

사건의 골자는 이랬다. 성능시험을 받던 포스데이타가 방해전파를 쏘던 차량을 감지, 시속 200km로 달리는 추격전을 벌인 끝에 차량번호와 정황기록 등을 토대로 검찰에 기소했고, 차량번호 조회를 통해 그 차량이 삼성SDS 소속인 것으로 나중에 확인됐다.

이와관련, 법원은 2004년 12월 포스데이타의 손을 들어 주는 판결을 내려, 삼성SDS가 사실상 조직적으로 공정경쟁을 방해한 업무방해 행위를 저질렀음을 대외적으로 확인하기에 이르지만, 삼성SDS의 항소로 그 이후의 시시비비는 아직 가려지지 않고 있다.

여하튼,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친 포스데이타는 성능 시험에서는 통과했으나, 가격 입찰에서 탈락해, 결국 서울통신기술이 2004년 2월 능동형 RF 방식 1차 시범사업권을 움겨 줬다.

◆포스데이타 Vs 서울통신기술

이로써 1차 시범사업자 선정 과정은 일찌감치 사업권을 따서 수행중이었던 삼성SDS(적외선 방식)와 나중에 합류한 같은 관계사 서울통신기술(능동형 RF 방식)이 장악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오래 가지는못했다.

서울통신기술의 사업자 선정 후 6개월이 흐른 2004년 8월. 도로공사가 2차 시범사업자를 뽑기 위해 벌인 수의계약서 제안 견적서 평가에서 포스데이타가 '1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써내면서, 능동형 RF 방식에서 서울통신기술을 꺽고 사업권을 거머 쥐었다.

미래 핵심 사업으로 능동형 RF 기술을 육성해온 포스데이타로서는 관련 비용을 손실로 전액 떠안는 무리수를 감수하더라도, 사업권을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배수진을 친 것이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서울통신기술로서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당시 서울통신기술은 14억원을 써낸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데이타가 2차 시범사업권을 따낸 여파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적외선 방식에 단일 후보로 참가해 순조롭게 2차 시범사업권을 따낸 삼성SDS가 결국 사업권을 돌연 포기하는 초대형 후폭풍으로 번졌다.

실제로 삼성SDS는 포스데이타가 능동형 RF 방식 사업권을 따자, 며칠 후 2차 시범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당시 삼성SDS는 수익성 문제를 결정적인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포스데이타는 2차 시범사업에서 적외선 방식과 능동형 RF 방식을 모두 통합하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삼성SDS가 자사와의 협력을 거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업에 차질을 빚게 만들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당시 삼성SDS 외에는 적외선 방식을 구현한 곳이 없기 때문에, 삼성SDS가 빠지면 2차 시범사업의 목표인 통합시스템 개발은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얘기였다.

때문에 삼성SDS와 서울통신기술, 포스데이타 간의 물고 물리는 파워게임은 모두가 질 수 밖에 없는 '패-패' 구도로 급변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서울통신기술은 1차 시범사업을 스스로 끝내지 못한 채 이듬해 4월 '준공불가' 판정까지 받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삼성SDS Vs DB정보통신

이처럼 '패-패' 구도로 치닫는 상황에서, 변곡점을 만든 것은 DB정보통신과 AITS였다.

DB정보통신은 1996년 도로공사가 100% 지분 출자로 만든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이 전신인 회사다. DB정보통신은, 삼성SDS의 갑작스런 포기로 사업 기회를 잃은 적외선 전문 업체인 AITS와 손을 잡고 대신 2차 적외선 방식 시범사업자로 직접 나서면서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2004년 12월 도로공사의 성능 시험을 통과해 삼성SDS 대신 사업자로 선정되고, 더욱이 포스데이타와 적외선·IR 방식 통합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성공해, 결과적으로 삼성SDS에 대항해 진입장벽까지 쌓기까지 했다.

1차 시범사업권을 따면서 승기를 잡았던 삼성SDS와 서울통신기술은 이 기간 동안 '권토중래'를 위해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삼성SDS는 적외선 방식 장비를 자체 개발하는 데 총력을 쏟았으며, 서울통신기술은 자체 현장 테스트를 통해 기존 시범사업에서 드러난 문제점 등을 개선한 능동형 RF 장비를 개발하는 데 땀을 흘렸다.

이에 따라 이번 수준전의 관건은 2차 시범사업을 통해 유리한 입지를 다진 포스데이타와 DB정보통신에 맞서, 새롭게 도전장을 던져야 하는 삼성SDS, 서울통신기술을 비롯해 처음 참여하는 LS산전이 내달 시작될 성능 시험을 통과해 효과적으로 유효 경쟁 구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참고로, 2차 시범사업을 수행하면서 통합시스템의 성능을 검증받은 포스데이타나 DB정보통신은 별도로 성능시험을 받을 필요가 없다.

또한 삼성SDS, 서울통신기술, LS산전 등 3사가 무사히 성능 시험을 통과해 유효 경쟁 체제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1원 입찰'로 상징되는 ETCS 수주전의 고질적인 출혈경쟁을 다시 겪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어, 넘어야 할 산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관범기자 bum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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