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권]정통부에 대한 MB맨들의 고백…MB는?


# 여전히 빛나는 IT코리아

최근 덴마크의 기자가 아이뉴스24에 불쑥 찾아왔다. 덴마크의 IT 전문 온라인매체인 '컴온(www.comon.dk)'의 에디터인 카림 페데르센이었다. '컴온'은 이를 테면 덴마크의 아이뉴스24 격인 셈이다. 얼마 전 방한한 라스무슨 덴마크 총리가 한국의 IT를 극찬한 것이 한국에 취재하러 온 계기라고 그는 소개했다.

개도국 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한국의 IT는 워낙 유명하다. 지금 세계인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6.25전쟁'이나 '산업화 성공국가'가 아니다. 단연 'IT'다. IT는 실제로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브랜드나 마찬가지다. "한국 IT를 본받자"는 벤치마크 바람까지 일고 있다. 그러니 덴마크에서도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여겼다. 덴마크 기자와 이것저것 한국의 IT 현황에 관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그의 마지막 질문은 이랬다.

"도대체 뭔가?"

한국의 IT가 발전하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 뭐냐는 거였다. 본질에 관한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법이다. 머뭇거렸다. 기자가 IT 분야에 몸담기 시작한 것은 지난 93년 초. 체신부(옛 정보통신부의 전신) 출입기자를 하면서부터다. 덴마크 기자의 질문을 받자, 지금까지 17년 이상 IT 분야에서 보고 겪은 수많은 일들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스쳐갔다.

몇 초가 흐른 뒤 기자의 대답은 이랬다.

"정부의 힘이었다."

다른 이들은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자가 한국의 IT를 기록자, 관찰자로서 지켜 본 소회로는 정부의 역할이 가장 커 보였다. 그래서 기자는 그렇게 대답했다. '정부'라 함은 이른바 '좌파 10년'이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뿐만이 아니다. 국가기간전산망 구축부터 반도체, TDX 전전자교환기, CDMA 이동통신시스템을 개발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까지 아우른다.

# 세종시 수정하려는 MB, 정통부는?

이명박 정부는 자기 모순이 심해 보인다. 이율배반, 무원칙도 엿보인다. 그게 이명박 정부 탓인지, 아니면 이명박 대통령 탓인지는 불분명하다.

온 나라를 논란의 도가니로 만든 세종시 문제를 보자.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 계획이 '노무현 정권의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규정했다. 전 정권에서 세종시법이 만들어졌지만,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법조차 수정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오고 있다. 세종시 수정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언필칭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는 용기와 결단"이라고 자화자찬한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지금 욕을 먹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것이 은근히 '실용'의 철학인 것처럼 부각시키기도 한다.

그 같은 이명박 정부 실용철학의 프레임은 과연 일관성이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단적인 사례가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 해체다.

세종시 문제의 경우는 노무현 정권의 계획이 과연 잘못된 것이었는지 분명치 않다. 이명박 정부가 "잘못이었다"고 정죄할 뿐이다. 하지만 세종시 계획이 옳은 결정이었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지방대, 지방기업, 지방경제가 갈수록 말라비틀어지는 반면 수도권은 갈수록 비만해져 가는 현실에서 지방균형발전을 꾀하는 게 옳은 방향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종시 문제는 참인지, 오류인지 가려내기 힘든 사안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 계획이 '잘못'이라고 단정하고, 수정하는 쪽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 해체는? 이 문제는 세종시에 비하면 시비를 가리기가 훨씬 쉽다. 정보통신부 해체 이후 한국의 IT경쟁력은 갈수록 곤두박질치고 있다. 과학기술부를 교육부와 합친 이후 과학기술 이슈는 교육 현안에 파묻혀 종적을 감췄다. 과학기술자들은 심각한 소외감을 맛보고 있다. 한국의 천재들은 과학기술에 관심을 끊어가고 있다.

정보통신은 한국이 가장 강점이 있는 분야다. 과학기술은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는 분야다. 이명박 정부의 정통부와 과학기술부 해체는 2년이 지난 시점에서 '매우 잘못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정통부, 과기부 해체로 저지른 잘못을 스스로 교정하겠다고 나서지 않고 있다. 전 정권의 세종시 계획이 잘못됐다면서, 논란을 무릅쓰고 이를 수정하려는 '용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노무현 정권의 총애를 받았던 정보통신부는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멤버들 사이에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혀 해체 및 분산으로 결론났다는 게 통설이다. 정부조직 개편 당시 정부, 학계, 기업의 많은 이들이 정통부 해체에 반대했다. 결과가 나쁠 것이라는 우려도 표명했다. 하지만 인수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통부를 방통위, 지경부, 행안부, 문화관광부 등으로 토막냈다.

정통부 해체가 인수위 차원에서만 벌어진 일이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자신의 IT에 대한 관점을 이따금 드러냈다.

그는 2008년 7월11일 18대 국회개원 연설에서 난데없이 '정보전염병(infodemics)' 경계론을 들고 나와 깜짝 놀라게 했다. 인터넷이 창출한 정보사회의 문제를 '질병'으로 인식하는 일단을 드러냈던 것. 그에 앞서 5월17일 OECD장관회의에서는 "인터넷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독(毒)"이라고 했다. 그 나름대로 옳은 지적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국내외 공개석상에서 그는 굳이 선정적인 용어를 써가며 부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특히 2008년 9월9일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는 "IT산업 키워봐야 일자리만 줄어든다"고 말해 IT산업 종사자, IT창업 희망자들에게 충격과 절망을 안겨줬다. 같은 해 12월22일에도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묶이다 보면 빈부격차도 줄일 수 없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없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본심'에는 IT, 디지털, 인터넷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이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정통부가 해체된 후 인터넷 규제가 크게 강화됐다. 많은 IT전문기업들이 의욕을 잃고 전업하거나 폐업했다. 국가의 IT 경쟁력은 해마다 추락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EIU)가 발표한 국가별 IT경쟁력 지수에서 한국은 2008년 8위에서 지난해 16위로 추락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IT국가경쟁력 지수도 2007년까지 6위 수준이었으나 2008년과 지난해 모두 14위로 주저앉았다.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정보통신기술(ICT) 개발 지수에서 우리는 2007, 2008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작년 2위로 떨어진 뒤 올해는 3위로 더 내려갔다. 주요한 IT경쟁력 지수는 일제히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IT코리아의 퇴보'를 보여주고 있다.

결정적으로 애플의 '아이폰'이 가한 충격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여지없이 드러낸다. 아이폰이 출시된 것은 2007년 6월30일. 그해 8월부터는 미국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제작에 나서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모바일 인터넷이 IT산업의 거대한 주류로 커질 싹이 그때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 세계 시장에서는 스마트폰 혁명이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작년 12월 KT가 아이폰을 출시하고 나서야 그 충격파를 실감했다. 2년 지나서야 뒤늦게 감을 잡고,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셈이다. 인터넷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던 한국이 모바일 인터넷에서는 후진국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주무부처라도 있었더라면 기술과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고 민간이 할 일, 정부가 지원할 일을 정해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거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스마트폰 혁명이 밀려오는 동안 한국에서는 규제 당국이 여럿으로 쪼개져 있었고, 실의에 찬 IT기업인들은 출구전략에 골몰했다.

빛나는 IT코리아의 '공든 탑'이 지난 2년 사이에 와르르 무너져 가는 것이 이처럼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제 발이 저려서일까. 정권 교체 후 받게 될 역사적 평가를 예감해서였을까. 최근 이명박 정부의 핵심 멤버들이 "정통부 해체가 잘못됐다"면서 앞다퉈 고백하고 나서는 씁쓸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3월18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세미나에서 정통부를 해체하고 IT 기능을 4개 부처로 쪼갠 것은 잘못된 조직 개편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정보통신부 기능을 방통위와 지식경제부, 문화부, 행안부로 사분시켜서 분야마다 마찰이 생긴다. 방통위가 통신사 CEO 간담회를 하고 나니 지경부도 한다고 해서 참 어찌할 수 없구나 하는 괴로움을 느낀다"면서 "청와대도 IT 콘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정보화추진위도 만들고 IT특보도 만들었지만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는 "실무자 선에서 막히니 전혀 작동이 안되더라"면서 "정부기구 개편이 시정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정통부가 해체된 데 대해 "참 비효율적으로 됐다. 참 아쉽다. IT의 경우 정말 일으키기 어려운데 그런 헌신의 노력이 우리 대에 와서 잘못된, 조금은 사려깊지 못한 부작용을 남긴 데 대해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자청, 국회의장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특정 분야'인 IT 분야를 전담할 통합 주무부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형오 의장은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 부위원장으로서 정통부 해체와 방통위 출범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그는 "IT 강국이라는 사실은 한국인의 자부심 자체였는데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든다. 애플과 아이폰의 공습을 받아 모바일 분야 경쟁력이 흔들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통부를 해체하고 방통위, 문화부, 지경부 등으로 관련 기능을 나눈 것은 IT가 모든 산업과 연계된다는 철학적 기반이 있었다. 하지만 2년 뒤에 그만큼의 경쟁력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 모바일 분야에서는 크게 반성해야 한다"며 정통부 해체의 실험이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그는 "IT 경쟁력이 추락한 이유는 초고속망에 너무 안주해 무선인터넷시대를 준비 못한 것이다. 이를 해결할 새로운 통합부처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참 맥 빠지게 하는 이명박 사람들의 고백이다. 그러면 애초 그렇게 될 줄 몰랐었다는 것인지, 그럴 정도로 예측력과 판단력이 떨어졌었다는 것인지, 2년만에 후회할 일을 왜 했던 것인지…이미 정통부는 해체됐고, 유능한 전문관료들은 여러 부처로 흩어져 이산가족 신세가 됐다. 일부는 민간기업으로 빠지기도 했다. 과거 정통부 같은 강력한 시스템과 소명감 높은 관료들의 팀워크는 '지금 부재중'이다.

# MB식 실용철학의 시금석

이들의 인식과 발언이 그나마 잘못된 것을 제대로 돌려놓는 계기가 된다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반길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들의 발언이 "나는 잘못됐다고 인정했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스친다. 거기에서 끝난다면 그들의 발언은 '당사자들의 자기 보호'에서 멈추고 만다.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대통령이 풀어야 할 일이다. 국민들은 여전히 대통령이 IT의 가치를 무시하고 인터넷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고 본다. 참모들은 잘못됐음을 고백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 IT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시그널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 해체가 '명백한 잘못'이었다는 것은 '시대공감'이다. 일방의 단정이나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공감을 사고 있다. 정통부와 과학기술부 해체로 실질적인 손실과 폐해, 부작용이 발생했다면 실수를 인정하고 교정하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것, 그것이 실용철학의 진정한 표현이다. 손해 보는데도 계속 고집하는 것이야말로 하지하(下之下)의 명분론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입을 주목할 것 같다.

/이재권 논설실장 jay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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