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정종오]무상급식과 미담


유난히 국내소설에는 '없는 집 아이'가 많이 등장한다. 소설은 시대를 대변한다. 우리 역사가 '가난의 굴곡사'였기 때문일까. 소설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오래 전 한 소설을 읽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나는 책가방도 없었다. 점심 도시락을 싸가는 일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한 숟가락씩 내 점심을 채워줬다. 맛있게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사연이 지역 신문에 알려졌다. 언론에 미담기사로 대서특필됐다."

언론에 어떻게 보도됐을까.

"신문에는 '착한 아이들이 가난한 아이를 돕고 있는 훈훈한 교정이었다' '점심을 싸 오지 못한 아이는 서로 돕는 친구로 외롭지 않았다' '가난한 아이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사진도 큼지막하게 실렸다."

소설은 이어간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난 점심때만 되면 도망가기 바빴다. 언론에 대서특필 된 뒤 반 전체 아이들이 점심때만 되면 앞 다퉈 나에게 숟가락을 내밀었다. 그 날 이후로 '미담기사'는 절대 읽지 않는다. 미담기사는 미담이 아니라 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다."

초·중등생 전면 무상급식 이슈가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민주당과 진보신당 등 야권은 "어린 학생들의 인권 문제로 전면 무료 실시"를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여권은 "부유층 자녀까지 무상 급식할 필요는 없고 그 예산을 서민층 자녀들의 교육 부분에 활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맞섰다.

여권의 입장에 대해 노회찬 진보신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 세력이 주장하고 있는 무상 급식의 빈부 선별 적용은 '아이들에 대한 창피주기와 낙인찍기'의 전형이며 이런 복지는 복지라 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복지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누구나 누려야 하는 보편개념이다. 두 번째는 복지를 누리고 있는 사람(부자)에게서 비용을 거둬 그렇지 못한 이들(가난한 사람)을 지원하는 선별개념이 있다.

우리나라는 선별주의에 무게중심이 있다. 이 개념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미담기사'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미담을 읽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다'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그러나 정작 '선별된 사람'들은 결코 따뜻한 세상도, 정이 많은 현실도 아니다. 자신이 주인공인 '미담'은 아름다운 이야기일 수 없다. 차라리 굶는 게 더 낫다는 마음의 상처로 이어진다.

'부자 아이'들이 떠 주는 한 숟가락은 얻어먹는 아이에게는 평생 동안 씻을 수 없는 비참한 기억이 될 수 있다. 특히 한창 예민한 아이들에게는 더욱더.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정종오기자 ikokid@inews24.com

2024 iFORUM






alert

댓글 쓰기 제목 [정종오]무상급식과 미담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