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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괴담'보다 심한 '비정규직 괴담'


해고자 100만 vs 24만…실체없는 해고 공포로 '혼란'

비정규직법 시행 이틀째인 2일 정치권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해고자 규모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여당은 '연간 100만 실업대란' 설을 주장하며 대규모 실업자가 양산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이에 비해 민주당 등 진보진영은 대략 24만명의 비정규직 해고자가 발생할 것이라면서 "실업대란설은 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는 과거 '광우병 괴담'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떠돌던 당시 광우병 파장을 축소하려던 여당과, 파장을 키우려던 야당의 모습과는 정반대 양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무부서인 노동부조차 비정규직 해고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등 대한민국 어느 누구도 비정규직 해고사태의 규모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여야가 숫자 논쟁을 벌이는 이유는 사측을 대변한 한나라당의 2년 유예안과, 노동계 측을 대변한 민주당의 6개월 유예 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주장의 주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여야 모두 구체적 근거 없는 괴담만 퍼뜨리고 있어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결국 먹거리보다 더 생존에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일자리를 두고 여야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한 숫자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여당, '71만명+37만명' 100만 비정규직 해고대란 주장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난 3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를 근거로 100만 비정규직 해고대란을 주장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장에서 2년 이상 근속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86만8천명이고 이 중 비정규직법 사용기간 적용대상이 아닌 55세 이상과(14만5천명)과 주 15시간 미만(9천명)을 제외하면 71만4천명이 된다는 해석이다. 이에 내년 7월까지 2년 근속자(37만명)을 합치면 100만명이 넘는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실제 노동현장에서는 눈물을 흘리면서 정든 직장에서 쫓겨나는 가슴 아픈 일이 생기고 있다"며 "이런 비정규직 대란이 일어나는 데도 민주당은 태평성대처럼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비정규직 해고위기의 책임을 민주당에 떠넘겼다.

그러나 노동부는 지난 3월 100만 고용대란을 주장하다 4월에는 71만명으로 축소한 뒤 다시 100만명으로 늘리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스스로 신뢰성을 잃어버렸다.

또 비정규직 시행 첫 날인 지난 1일 이영희 노동부 장관이 직접 나서 비정규직 대란을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실질적인 해고자 수치 대신 몇몇 사례만 공개하는 등 정확한 피해규모 집계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민주당·노동계, 비정규직 해고자 월 2만명 수준

반면 민주당 등 야당과 노동계 측은 2년 이상 근속자 71만여명의 통계청 수치 가운데 절반 정도는 정규직에 가까운 무기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보고 있기다.

이들은 여러 변수를 고려했을 때 실질적인 해고 대상자는 정부여당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월 2만명, 연간 24만명 수준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또 이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자회사·계열사 등 순환근무, 이직 등을 통해 재취업을 할 수 있어 실질적인 해고대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야당과 노동계의 주장이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정책회의에서 "많은 언론들이 해고대란 사태가 나고 있다고 보도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자체 분석결과를 소개했다.

같은 당 박영선 의원도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의 인터뷰를 인용해 "실업대란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노사정과 국회가 비정규직 실태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투명하게 실태를 조사하고 문제가 있으면 보완하고 개선하면 된다"고 말했다.

◆현장은 실체 없는 공포로 '혼란'…네티즌, "정치권 본질 놓쳐"

이 같은 여야 정치권의 치열한 숫자공방으로 인해 산업현장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비정규직법 시행 이틀째인 이날 노동부에 따르면 노동부 고용차별정책개선과와 각 지역 근로감독관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사업주 등의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해야 하는지,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언제쯤 통과될지,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복직할 수 있는지 등을 문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런 사회적 혼란의 원인으로 정치권이 비정규직 처우개선이라는 문제의 본질은 망각한 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숫자공방만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학병원에 다니던 동생이 비정규직법으로 인해 해고당했다는 아이디 'Secretgarden'씨는 "정말 혼란스럽다"며 "일부 경영인들이 주장하는 내용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노동조합 대표가 주장하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의 이야기도 이제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돼버렸다"고 혼란스러워 했다.

이어 "지금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문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며 "비정규직 법안의 근본적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고용기간 논쟁을 벌일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여야 모두를 비판했다.

아이디 '오딘' 씨도 "한나라당은 무조건적으로 밀어붙이고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사회적 합의와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데 과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확실한 법이 있을까"라며 의문을 표시했다.

다음 아고라 등 토론사이트에서는 여야로 편을 나눈 네티즌들의 공방도 벌어졌다.

아이디 '우편마차'씨는 "아무런 대책도 준비도 없이 비정규직을 다시 개정한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없는 법도 만들어 뒤집어 씌우는 정부가 있는 것도 못 지킨다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반면 아이디 'H2HIRO' 씨는 "노무현 정권 때 2년 시한부 비정규직보호법을 만든 것 자체가 유예와 같은 의미"라며 "이에 대한 대책 및 국민적 합의를 위해 6개월이면 가능할 것인가"라고 민주당과 야당의 주장에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처럼 정치권의 비정규직 공방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어 이를 의식한 정치권이 극적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정치권의 대안이 여야의 이해관계만 반영한 누더기 대안으로 결론지어진다면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박정일기자 comj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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