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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법 '오락가락', 근로자만 고통


'노동유연성 확보, 정규직 격차 축소' 해법 있지만, 정치권 '숫자놀음' 일관

비정규직 문제를 두고 정치권의 찬반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비정규직 근로자들만 오락가락하는 정치권 공방에 고통을 겪고 있다.

"비정규직을 활성화해서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되, 정규직과 격차를 어느 정도 해소해주면 글로벌 노동시장의 기준에 맞출 수 있다"는 해법이 학계를 중심으로 진작부터 제시됐음에도 정치권에서는 기간 공방만을 거듭, 노동자들의 원성만 사고 있다.

정부여당은 8일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으로 규정한 현행 비정규직법을 그대로 유지하되, 그 조항의 적용시기를 현 경제상황을 고려해 유예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유예기간에 대해서는 2~4년 등 여러 의견을 두고 노동계와 논의를 거친 뒤 한나라당 원내지도부 주도로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열린 당정회의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 간담회를 통해 '2년을 초과해 사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비정규직법 사용기간 제한조항의 적용을 유예하는 쪽으로 잠정 결정했다고 신성범 원내공보부대표는 밝혔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비정규직 해법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일 뿐"이라고 맞서고 있어, 비정규직법 처리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또 근본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추경예산 1천200억원을 확보해 집행할 준비가 됐다며 비정규직 법을 현행 그대로 유지하되 정규직 전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입장은 뚜렷하게 찬반양론으로 갈라서 있지만, 막상 기자가 만나본 당사자들의 입장은 혼란스럽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크게 "아쉬우나마 연장되면 좋다"는 찬성 측과, "근본 대책이 아니다"는 반대 측으로 갈렸다.

비정규직으로 1년 반 동안 근무하다 최근 정규직으로 이직한 박모씨(30세·남)는 비정규직 법 개정에 대해 "2년간 계약이 한시적으로 연장된다 해도 앞으로 또 비정규직 보호법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불안하다"며 "그렇다면 어차피 2년간의 연장은 결국 안정적인 정규직을 찾아 헤매는 시간 벌기에 불과할 것"이라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대기업에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신모씨(31세·여)는 "지금 회사를 떠나게 되면 갈 데가 없는 현실"이라며 "본인 스스로 아쉬운지라 비정규직법이 개정된다면 다들 계약 연장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비정규직 법 개정에 대해 찬성했다.

중소기업에 근무 중인 권모씨(27세·여)도 "4년 연장까지는 찬성하지만 그 이상은 반대한다"며 "4년 정도면 경력을 쌓아 다른데로 이직할 만한 커리어를 쌓게 되겠지만 2년은 너무 적다"고 4년 연장안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비정규직 기간 연장에 대한 호불호는 기업 형태에 따라 다를 것"이라며 "중소기업 종사자들은 기간 연장에 대해 찬성하겠지만, 대기업 종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정규직 전환을 목매어 기다렸을 것이기 때문에 반대할 것"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직장인에 비해 예비 구직자들인 대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비정규직 기간 연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신길자 취업 컨설턴트는 최근 예비 구직자들의 동향에 대해 "학생들은 불경기에 관련 경력을 쌓으면 정규직으로 취업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아쉬우나마 비정규직을 선택할 순 있다"며 "하지만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안정된 정규직이고, 4년 연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노동계의 혼란에 대해 김기태 취업 컨설턴트는 현재 비정규직 논란은 사측과 노동자의 균형적인 조화보다는 정치권의 논리에만 너무 매몰됐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우선 "비정규직 기간을 4년 늘려주면 당장 해고자 수는 줄겠지만 비정규직을 기업들이 선호하면서 비율이 늘 수 있다"며 "기업 측에서는 비정규직 기간이 늘어나면 기존 인력을 더 길게 쓸 수 있어 이윤추구에는 유리하겠지만 이 법이 통과되지 않아도 해고하고 새 비정규직을 뽑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글로벌 시대를 맞아 선진국 수준의 노동유연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제한을 어느 정도 풀어주는 것이 맞다"면서도 "대신 비정규직의 처우개선 등을 통해 정규직과 간극을 좁혀나간다면 노사 모두가 만족할 것"이라며 해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권이 노동유연성이라는 거시적인 측면보다는 비정규직 기간이라는 미시적인 문제에만 매몰돼 정치싸움을 하고 있다고 여야 모두를 비판했다.

한편, 기업 측에서는 비정규직 기간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모 그룹 인사담당자 김모씨는 "우리 회사의 경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대부분 됐기 때문에 비정규직 법과는 무관하다"며 "일부 기업들은 비정규직 기간으로 인해 손해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인력 문제는 기업의 경영철학에 따라 운영하면 되기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인해 기업이 큰 영향을 받는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IT업체에 근무하는 다른 인사담당자도 "이쪽 업계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하는 문화보다는 옮겨 다니는 게 보편화돼 있다"며 "비정규직 문제가 다른 생산업종에서는 큰 문제로 다가 올지 모르겠지만 지식기반 산업 쪽에서는 노동유연성이 이미 어느정도 확보됐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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