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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묵]'아리랑'과 삼성전자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2일차 때 노무현 대통령이 관람했던 '아리랑' 공연의 잔상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난 3일 저녁 내외신 공동기자실이 마련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는 약 30여분 동안 평양에서 보내진 '아리랑' 공연 영상을 보며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대통령 방북 전부터 관람 여부를 두고 논란이 거셌고, 정상회담 일정 중에도 관람이 취소될 뻔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아리랑' 공연은 이념적 요소는 차치하고서 한 번쯤은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물론 거기엔 '미학적'으로 마음을 움직일 만한 것은 없다. '아리랑'은 북한 체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술적'으로만 볼 만한 구경거리일 것이다. 집단체조가 전하는 이야기에는 귀 기울일 것이 없었지만, 이야기를 전하는 표현수단인 10만여명의 노력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리랑'의 '미학'과 '기술'을 구분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둘은 한 몸이다. "무궁 번영하라 김일성 조선이여" 같은 메시지와 10만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만드는 표현수단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의 체제 단결과 결속을 도모하는 '이념'이 아니라면 그런 '기술'도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전체적인 그림이 굉장하다고 해도,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댔을 때 보이는 어린 소년들의 '절도 있는' 몸짓에 안쓰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몸이 닳도록 연습했을 것인가 하는 안쓰러움 말이다. 안쓰러움은 사람을 하나의 부속품으로 간주하는 체제에 대한 섬뜩한 감정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아리랑'은 사람 개개인이 액정 화면의 한 화소로 역할을 하고 있는 전체주의 국가, 북한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나라에서 PDP 액정 모니터의 '화소'로 더 선명한 영상을 만들 때, 북한에서는 '사람'을 화소로 만들어 그에 못지 않은 영상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리랑' 공연의 모습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남한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전자에서도 그 못지 않은 공연(?)을 한 적이 있다. 한때 동영상으로 널리 퍼져 화제가 됐던 삼성전자 매스게임이다.

삼성전자 신입사원 연수회 때 공연한 매스게임으로 알려진 이 동영상은 국내 포털에서뿐만 아니라 해외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었다. 미국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mass game'로 검색하면 'North Korea'와 'Samsung'이 같은 페이지에 오르기도 한다.

이 매스게임은 흥겨운 월드컵 음악 등에 맞춰 사람이 골을 넣는 장면과 치마를 펄럭이는 캉캉 춤, 삼성의 주 생산기종인 휴대폰 단말기, 그리고 삼성의 대표 상품인 'Anycall' 등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어림짐작으로 1천명쯤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이 매스게임은 단순비교하자면 10만명이 참여한 '아리랑'의 기술적 완성도에는 물론 미치지 못하지만 역시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삼성의 사원들이 행사를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들였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감탄 뒤에는 '아리랑'을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직원들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브랜드 컨설팅 그룹인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07년 세계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 삼성전자는 당당히 21위를 차지한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이다. 최고 인재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곳이며 심지어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의 스터디가 대학가에서 따로 꾸려질 정도로 선망받는 회사이다. 특히 이 회사가 '무노조'를 자랑한다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안쓰러움은 섬뜩함으로 이어진다.

정상회담 취재를 다녀온 기자단에 따르면, 평양의 부모들도 '아리랑'에 자녀가 참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전해진다.

사회주의 독재체제의 극단에 가 있는 북한…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는 '자본주의 대표 브랜드' 삼성. 이 둘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그러나 두 집단이 결속력을 다지는 방식이 비슷하며 또 외형적으로 매우 닮아 있다는 사실은 이념과 체제를 유지하게끔 하는 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던져준다.

정병묵기자 honnez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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