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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실패 껴안아야 벤처가 산다"


중소·벤처 본연의 일에 집중하는 환경 만들어야

아이뉴스24는 2010 경인년(庚寅年)을 맞아 지난 10년간 그랬던 것처럼 벤처 생태계를 조성하고 지키는데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벤처 중기가 되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신년 기획 기사를 통해 서민경제와 먹거리를 해결할 벤처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 벤처는 그동안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한국 경제에 신선한 피를 수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처 생태계는 자연 질서를 따르기 보다는 편법이 난무하고, 대기업간 불공정 거래 등으로 조금씩 파괴되고 있는 실정이다.

안 교수와 페이스북 인터뷰를 정리해 본다.

◆실패 껴안아야 벤처가 산다

-벤처가 그동안 한국경제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벤처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한국벤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일 텐데...어떤 점을 꼽을 수 있을지.

"중소기업·벤처 기업의 성공확률을 떨어트리는 가장 큰 원인은 세 가지이다. 첫째, 중소·벤처기업가와 경영진의 지식과 자질 부족. 둘째, 중소·벤처기업과 대기업·공공기관간의 불공정 거래관행. 셋째, 중소·벤처기업 지원 인프라의 낙후를 들 수 있다.

창업자를 포함한 벤처기업 경영진이 기본적인 경영 마인드나 경영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한 경우에는 당연히 성장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사업 파트너가 아니라 하청업체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는 중소벤처기업들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성장하기는 힘들다.

벤처기업의 성장을 도와주는 인프라, 즉 대학, 벤처캐피탈, 금융기관, 아웃소싱 업체, 정부의 R&D 정책 등도 낙후한 실정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몇 년 동안 벤처와 관련된 공부도 하고 실제 미국에서 관련 벤처인들을 많이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실리콘밸리를 직접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흔히들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성공의 요람'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잘못된 표현이다. 실리콘밸리의 본질은 '성공의 요람'이 아닌, '실패의 요람'이라는 데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100개의 기업 중 하나만 성공하고 99개의 기업이 망한다.

그렇지만 만약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실패한 기업가에게는 다시 기회를 준다. 다시 기회를 부여받은 기업가는 예전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게 되어 성공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또한 처음 시작하는 기업가들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들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의 본질은 성공 기업들에 대한 지원 시스템이 아니라, 실패 기업들에 대한 처리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밝은 면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면에 대한 인프라가 탄탄하게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번 실패하면 다시 재기하기가 무척 어렵다.

대표적인 예가 대표이사 연대보증 제도이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빚을 얻을 때 또는 심지어는 투자를 받을 때도 대표이사가 연대보증을 서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연대보증을 선다는 것은 기업이 망할 경우에는 기업의 빚이 모두 대표이사 개인의 빚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냉정하게 기업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만두지 못하고 기업을 계속 무리하게 끌고나가게 되고, 손해가 나는 사업도 선금만 받을 수 있다면 뛰어들어서 산업 전반적으로 공정가격을 무너트리는 주범이 된다."

◆'좀비 경제' 무너져야 벤처가 산다

-한국 벤처의 활력을 떨어트리는 원인이 있다면.

"공공과 민간부문에 만연해있는 소위 눈먼 돈은 망해야 할 기업의 수명을 연장시켜 줌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킨다. 결과적으로 처음에는 한 기업만 위기상황에 처해있고 다른 기업들은 모두 건강한 경우라고 할지라도, 망해가는 기업이 계속 덤핑을 해서 공정가격을 무너트리고 결국 다른 기업들까지 망하게 만든다.

외국의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좀비 경제(zombie economy)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한 좀비만 있었는데, 이 좀비가 다른 건강한 사람을 물어서 좀비로 만들고, 결국에는 모두 좀비만 남게 된다. 또 망해가는 기업도 전 산업을 무너트리면서 결국 망하게 되고, 대표이사는 개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빚을 진 금융사법으로 전락하게 되어 다시 재기할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기업가 정신이 쇠퇴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도,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아무리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을 가지라고 해도, 한번 실패하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상황에서는 누구도 뛰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트리는 주범이 되고 있다."

-한국 벤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첫째, 경영의 위기처럼 벤처기업 경영자와 각 분야 실무자가 제대로 못해서 그렇다. 창업자를 포함한 벤처기업 경영진이 기본적인 경영 마인드나 경영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한 경우에는 당연히 성장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둘째, 기업을 도와주는 인프라가 부실하다. 인력을 제공하는 대학, 자본을 제공하는 벤처캐피털 등이 있는데 이들이 부실하다. 대표자 연대보증 같은 제1금융권의 금융관행, 정부제도, 전문성 있는 아웃소싱 같은 게 다 부족하다.

셋째,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 때문이다. 벤처기업을 만들면 수익창출해서 R&D 투자하고 그런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대기업에서 공기업에서 열매를 다 가져간다. 벤처는 부가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인건비만 계산 받는 인력 파견 업체가 돼 버린다. 그래서 망하는 것이다."

◆벤처기업 본연의 일에 집중하는 환경이 중요하다

-실패를 껴안을 수 있는 포용, 좀비 경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 등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벤처 생태계가 선순환으로 움직이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가장 중요한 것은 앞서 지적했듯 실패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표이사 연대보증을 없애기는 힘들다고 할지라도, 중소기업·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재원을 확대하고, 이면계약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빚과 다름이 없는 잘못된 투자관행을 고치고, 눈먼 돈을 없애고, 퇴출될 기업은 빨리 퇴출될 수 있게 하는 등의 거시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벤처기업 스스로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중소벤처인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교육제도와 실무에서 지도해줄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업무 경험이 쌓이기는 하지만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넓은 시야를 길러주고 분야별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 벤처는 교육 시스템도 갖추어지지 않고 배울 선배도 없다.

나아가 중소기업과 대기업·공공기관 사이의 공정거래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흔히들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공정거래문제는 가격문제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대기업의 한 임원이 빨리 성과를 내기 위해서 확정되기 전의 프로젝트를 한 중소기업과 구두로 계약을 한다.

중소기업에서는 임원의 말만 믿고 자신들의 자금으로 미리 제품을 생산해 놓는다. 그런데 그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임원은 구두로 계약을 파기해 버린다. 중소기업은 파산을 하게 되지만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게 된다. 계약서를 쓴 뒤에도 계약서 내용을 지키지 않는 일도 많다. 하드웨어 납품의 경우에 계약서에는 포함되지 않는 물품을 추가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의 경우에 추가적인 개발요구가 원래 계약 당시보다 거의 2배에 달하는 경우도 많다. 처음 계약할 때도 거의 이익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국 중소기업은 큰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거래 가격만 볼 것이 아니라 거래 과정 전반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불법적인 일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함으로써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 지원 인프라에 해당하는 대학, 벤처캐피탈, 금융기관, 아웃소싱 업체, 정부 R&D(연구개발) 제도 등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대학에서는 기업현장에서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인재들을 길러내고 시장을 염두에 둔 연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벤처캐피탈도 진정한 의미의 능동적 투자(active investment)를 통해서 자금 제공뿐만 아니라 조언과 네트워크 제공을 통해서 기업의 성공확률을 높여야 한다. 전문성 있는 아웃소싱 업체들도 활성화되어서 중소·벤처기업들이 본연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정종오기자 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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