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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중기가 되살아야 나라가 산다


서민경제, 먹거리 해결할 생태계 구축이 새해 화두

21세기 첫 10년은 '벤처의 꿈과 좌절'로 기록할 수 있다. 벤처는 세기말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 돌파의 첨병으로, 나라의 새로운 먹거리와 질 좋은 일자리를 책임질 주체로 인식됐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돈과 인재를 급속히 흡수했다.

성과는?

충분히 좋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벤처가 대한민국의 경제 현실에서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벤처를 활성화해야 할 이유와 배경은 과거보다 더 강화됐고 지난 10년간 시행착오는 실패 확률을 낮출 훌륭한 자산이 됐다. 21세기 두 번째 10년의 명운도 벤처와 함께 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아이뉴스24는 21세기 두 번째 10년의 첫 해인 2010 경인년(庚寅年)을 맞아 지난 10년간 그랬던 것처럼 벤처 생태계를 조성하고 지키는데 주력할 것이다. 20~30대의 창의적인 기업가를 지속적으로 발굴 보도하고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상생 구조를 같이 고민할 것이다. 무엇보다 벤처 기업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생기를 전달하는 데 노력할 것이다.

◆왜 다시 벤처여야 하는가?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경제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고용 없는 성장'이다. 일자리는 줄고 빈부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소비기반이 무너지면서 성장폭도 줄고 있다. 소비와 생산이 악순환 구조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실물경제가 심하게 뒤틀리면서 자본 시장도 왜곡되고 있다. 돈은 남아돌지만 갈 데가 없다. 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온갖 여윳돈은 유동화해 투기 등 비생산적인 곳에서만 배회한다. 돈이 길을 잃은 것이다.

뒤틀린 한국 경제 구조를 건강하게 재건하는 관건은 ‘일자리’와 ‘성장 동력’이다. 방황하는 돈이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춘 곳으로 간다면 제대로 길을 찾은 것이다. 벤처를 다시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벤처기업은 성장성과 고용 능력에서 대기업 및 일반 중소기업을 훨씬 능가한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을 보면 벤처기업은 평균 16.1%였다. 이는 대기업 6.5%와 일반 중소기업 5.9%보다 세 배 가까이 높은 것이다. 저성장 경제구조에서 대안은 이미 나와 있다.

고용 효과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연평균 고율 증가율을 보면 벤처기업은 20.2%였다. 이 반면에 대기업은 마이너스 4.5%였다. '고용 없는 성장' 구조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 지 드러났다. 일반 중소기업은 4.2%였다.

그러나 이런 저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2~3년 동안 벤처기업을 둘러싼 분위기는 싸늘하다. 무엇보다 '새 피'가 수혈되지 않고 있다.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을 가진 20~30대 젊은이가 사라지고 있다.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1998년에 벤처기업 CEO 가운데 20~30대 비중은 58%였다. 그러나 2008년에는 이 비중이 12%에 지나지 않는다. 숲은 사라지는데 새로 나무를 심는 사람도 없어진 꼴이다.

벤처기업으로 가는 돈도 꽁꽁 묶인 상태다.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엔젤 투자 규모는 2000년 5천493억 원으로 정점에 달했으나 점점 줄어 2008년에는 492억 원에 불과했다. 특히 가장 초기단계에 있는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더 냉혹해졌다. 벤처캐피털이 3년 이내 창업 초기기업에 투자하는 비율은 2001년 전체의 72%였으나 2009년에는 29%로 줄었다. 20~30대 젊은이가 섣불리 창업에 나설 수 없는 현실이 수치로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벤처는 성장성과 일자리를 입증했지만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셈이다.

◆벤처 10년, 무엇이 문제였는가?

벤처가 다소 신뢰를 잃은 것은 대략 3가지 이유로 파악된다.

먼저 벤처 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들 수 있다.

벤처는 '꿈'과 '좌절'을 반복하며 성장한다. 모든 유기체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게 마련인데 벤처기업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 변화가 극심하다. 성장성이 높은 대신 위험도 크다. 그러나 2000년대 초기 '벤처=성장성'으로만 인식됐다. '위험성'에 대한 고민은 적었다.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이를 외면했다. 꿈만 키웠고 꿈은 바람이 됐다. 필연적으로 거품이 생겼고 그 후유증이 컸다.

벤처 기업인의 부도덕성도 지적돼야 한다.

꿈과 바람을 타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밀려오면서 기업가 정신은 내팽겨 치고 돈놀이에 몰두한 기업인이 한 둘이 아니었다. 돈은 가까이 있었고 본업은 멀다 보니 쉽게 한 몫 잡으려는 기업가 아닌 투기꾼이 적잖았다. 피해는 불가피했고 손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었다. 불신 구조가 똬리를 틀게 됐다.

세 번째 이유는 좀 더 기술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다. ‘이해 부족’과 ‘부도덕성’은 돈의 광기로 인한 것이다. 피해가 컸지만 원인이 분명해서 해결책도 쉽다. 그러나 구조의 문제는 치밀하게 연구하고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무엇보다 대기업과 상생 문제를 들 수 있다. 벤처 10년 동안 성공한 기업은 대부분 대기업과 협력이 별로 필요치 않은 분야였다. 매출 1조 원을 넘은 NHN을 비롯해 엔씨소프트, 옥션-지마켓, 메가스터디 등이 대표적이다. 대기업과 무관하게 인터넷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는 회사들이다. 제조업의 대표주자인 휴맥스 또한 국내 대기업보다 해외 방송사업자들을 파트너로 사업을 했던 곳이다. 대기업 협력사로서 장수하거나 크게 성장한 회사는 찾기 힘들다. 상생 구조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 공공기관 마저 대기업에 우호적이라는 게 업계 주장이다.

서승모 벤처기업협회장은 "정부의 조달시장이나 공공부문의 경우 대기업이 거의 독식한다"며 "대기업은 위장 벤처 계열사까지 만들어 건전한 벤처기업을 위협하고 있을 만큼 시장 질서가 왜곡 됐다"고 말했다. 구조적인 문제는 이외에도 많다. 벤처기업의 경우 기본적으로 다산다사(多産多死)형인데 한 번 실패하면 재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안철수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최근 "한국 벤처에서 한번 실패하면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 마저 사라져 버린다"고 안타까워 했으며 허진호 인터넷기업협회장도 "대표 이사의 모든 것을 담보로 요구하는 경직된 자본 시장이 벤처 활성화를 가로 막는 가장 큰 애로"라고 토로 했다. 기업인으로서는 사실상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니 쉽사리 창업의 길을 걸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벤처 캐피탈로서도 애로가 많다. 주식 시장에 상장하기 전에는 투자금을 회수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구조기 때문이다. 완벽한 확신이 없는 한 벤처 기업에 투자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은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제도적 구조적 문제가 벤처에 대한 초기 이해 부족 및 몇몇 기업가의 부도덕성과 맞물리며 벤처 업계를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벤처 생태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행히 벤처를 둘러싼 시장 여건은 지금 2000년대 초반 못지않다. 당시에는 초고속인터넷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IT,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벤처기업이 각광을 받았었다. 지금은 무선인터넷이 당시 초고속인터넷에 버금가는 사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 IT와 자동차 등 전통산업을 융합하는 시장도 크게 팽창할 기세다. 무엇보다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향상사업, 친환경 사업 등을 골자로 하는 녹색기술 분야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사업거리로만 보자면 2000년대 초반을 능가하는 분위기다.

정부도 벤처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최근 '제2기 벤처기업 육성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10년의 성공과 좌절을 냉정히 분석한 뒤 새롭게 벤처 육성 10년 계획을 발표한 것. 이번 정책은 과거 시행착오를 제대로 짚었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것을 요구받는다.

이번 정책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21세기 첫 10년 벤처 정책과 달리 '녹색기술과 IT 융합을 통한 신산업 벤처 육성'을 강조한 점이다. 시장성에 대해 다소 논란이 있지만 사업기회를 확장한다는 점에서는 거의 이론이 없다.

투자 정책도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는 평가다. 정부는 모태펀드와 민간펀드를 합해 2012년까지 총 3조5천억 원을 조성해 융자보다 투자 중심의 벤처 금융 체제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벤처 투자금에 대한 회수시장을 활성화하기로 한 것이다. 인수합병(M&A)과 관련한 세제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건전한 M&A를 적극 장려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투자금 회수기회를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회수시장 확대는 벤처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8년 기준으로 M&A를 통한 투자금 회수비율이 96.7%다. 투자를 해도 크게 손해 날 일이 적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 비율이 4.4%에 지나지 않는다. 잘못 투자하면 투자금이 꽁꽁 묶여버리는 것이다. 이는 2002년 이후 초기 상태에 있는 벤처에 대한 투자를 급감시킨 결정적 문제로 꼽힌다.

이 계획을 꾸준히 실효성 있게 추진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정부는 또 청년 기업가의 도전정신을 자극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며, 유능하지만 불가피하게 실패한 벤처기업인에 대해 재기할 수 있도록 재도전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한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 200억 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신설해 재창업 자금으로 지원하고 연대보증 제도도 개편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업계가 느끼는 현실은 아직도 요원한 상황이다.

허진호 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한국 벤처에서 한번 실패하면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 마저 사라져 버린다"며 "무엇보다 대표이사에 대한 연대담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벤처는 실패할 수도 있고, 그 실패가 나중에는 더 큰 성공을 거두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정책에서 또 아쉬운 점은 대기업과의 상생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벤처 기업인들의 최대 애로 사항은 대기업과의 관계다. 협력 관계건 경쟁 관계건 대기업과 중소 벤처기업 사이에는 불공정한 거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없이 지적되지만 나아지는 기미는 없다.

아직도 수많은 벤처 기업가들은 익명을 전제로 대기업의 횡포에 대해 입에 거품을 물고 지적한다. 이 문제를 개선하려면 범정부 차원의 다각적이고 장기적이며 일관된 신념과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균성 방송통신인터넷 에디터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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