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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난 가족 확인도 못해?"···'사람잡은' 통비법


부작용 우려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걸림돌

[강호성기자] 서울에 사는 김 모씨는 이달 초 본가에서 전화를 받고 급히 부산으로 내려갔다. 연세가 적지 않은 아버지가 등산을 나간 후 연락이 두절됐다는 얘기였다. 아버지는 수십 통의 전화에도 휴대폰을 받지 않았다. 이틀째 되던 날부터 휴대폰 신호음마저 끊겼다. 배터리가 방전된 듯했다.

혼자 산행에 나섰다는 말을 들은 김씨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혹시 산에서 발을 헛디디신 것은 아닐까. 제발...' 불길한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소방서를 통해 마지막 휴대폰 발신지 위치를 알아냈다.

반경 1Km. 사력을 다해 뒤졌다. 등산로 주변을 중심으로 이잡듯 돌았지만, 사람 찾는 일이 마음처럼 간단한 게 아니었다. 그러다 김씨는 '마지막 통화를 한 사람과 얘기를 해본다면, 어떻게든 아버지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통신사에 통화한 사람이 누구인지 도움을 요청했다. 단칼에 거절당했다. 그래서 경찰에 매달렸다. '경찰이 정식 수사절차상 요구를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경찰에서 돌아온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살인이나 강력사건이 아니면 법원에서 영장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통신사들은 경찰 등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더라도 법원의 영장없이 통화내역을 제공할 수 없다. 수사기관이 영장없이 먼저 통화내역을 받고, 48시간 내에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 올 수 있는 '긴급'으로 처리할 수도 있지만, 특수한 경우에 해당한다. 영장없이 경찰이 조회를 하려면 '본인'이 원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시간은 그렇게 하염없이 흘러갔다. 결국 김씨는 지난 28일 아버지의 주검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양면의 칼'과 같다. 수사기관이라도 함부로 개인의 통신내역을 뒤질 수 없도록, 공권력의 남용을 제한하려는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사고로 인해 가족의 생사가 촌각을 다툴 때도 본인의 의사가 입증이 되지 않으면 통신내역을 확인할 수 없어 '사람 잡는'것조차 보고만 있어야 하는 우를 범하게 하고 있다.

불법감청 등의 문제 때문에 법률 개정이 조심스럽다고는 하지만, 사고 등에 대비해 일부 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당장 이 법률이 개정될 가능성은 낮아만 보인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법무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공동 소관 법률이다.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공권력 남용이나 가정폭력, 미성년자 가출 등 다양한 사안과 관계되는 법률로 개정이 필요한 측면이 많다"면서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개정을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기자에게 말했다. "마지막 통화자와 연락이 닿았다고 아버지를 늦지 않게 찾았을 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 간절했던 겁니다. 하지만, 사고가능성 때문에 아버지를 찾으려는데 실종된 아버지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이런 법도 법인가요?"

강호성기자 chaosing@inews24.com 사진 최규한기자 dreamerz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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