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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스티브 잡스가 원할 마지막 한 가지


스티브 잡스를 이해하는 첫걸음이자 종착지는 아마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일 듯하다. 줄여 ‘앱(App)’이라고 한다. 지난 20일(미국시간) 애플이 ‘백 투 더 맥(Back to the Mac)'을 외칠 때 그건 더 명확해졌다. 잡스가 초창기에 만들었던 매킨토시도 다른 제품에 비해 품격 있는 외모나 값비싼 기능을 가졌다는 측면에서 이날 발표된 ‘맥북 에어’와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맥북 에어’는 과거의 맥 제품들과 차원이 다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앱이라는 잡스의 신사상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앱은 이제 단순한 컴퓨터 용어라기보다 IT를 중심으로 세상을 새롭게 조직하고 재편하는 이론이자 사상에 가깝다. 앱 이전에 IT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웹(Web)이었다. 지금 쓰는 인터넷이다. 여기서 주름잡던 존재들은 웹 세상을 탐험하게 해주는 소프트웨어인 브라우저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만드는 마이크로소프트, 웹 세상에 널려 있는 정보를 찾아주는 검색 업체인 구글, 그리고 그 모든 일을 해주는 기기인 PC 업체 휴렛패커드(HP) 등이었다. 여기서 애플은 작은 업체에 불과했다.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쫓겨날 정도로 수모를 당해야 했던 스티브 잡스로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PC와 웹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아무리 더 노력해봐야 분위기를 뒤집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셈이었다. 그래서 찾은 돌파구가 앱이다. 출발은 MP3 플레이어였다. 힘 있는 경쟁자가 적고 시장 규모도 작아 비교적 경쟁이 덜 치열했던 곳이다. 앱 사상을 테스트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잡스는 아이팟과 아이튠스를 연계한 새 비즈니스 모델을 내놓았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때, 혹은 그전부터 잡스가 아이팟 다음에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거쳐 ‘백 투 더 맥’을 구상했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이미 계획된 것이었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립될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잡스는 아이팟과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로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이폰과 앱스토어는 기존 휴대폰 시장을 초토화시켰고, PC와 인터넷 중심의 세상을 모바일 중심으로 바꾸어버렸다. 여기에 태블릿 아이패드를 덧붙이자 모든 IT 업체들은 앱 회오리에 빠져 허우적거리기에 바빴다.

사실 앱이 빠졌다면 잡스의 휴대폰 시장 진출은 무모한 모험에 불과했을 지도 모른다. 노키아 삼성전자 모토로라 등이 버티고 있는 휴대폰 시장은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처럼 애플이 ‘깐죽거릴’ 곳이 아니었다. 거대한 자본과 오랜 노하우도 견줄 바 아니거니와 이동통신 사업자와 끈끈한 유대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속성도 애플에게는 문제다. 그래서 “한두 번 저러다 말겠지” 하는 게 휴대폰 시장 거물들의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앱이 가진 파괴력을 그들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하면 승부는 번연한 것이었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 휴대폰 시장의 성패를 가르는 승부의 요체는 지금 생각하면 가소로운 것들이다. 확인하기 어려운 휴대폰 통화품질이나 광고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디자인의 매력 따위가 전부 아니었던가. 그 외에 무엇이 있는지 곰곰이 따져 봐도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 휴대폰 거인들이 그런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이거 하나 사면 네가 원하는 많은 솔루션을 언제든 구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휴대폰이 떡 등장한 것이다.

누구든 그것을 사고 싶지 않겠는가. 아마도 잡스는 휴대폰 시장에 진출할 때 그 결과를 빤히 예측했을 듯하다. PC와 웹 시장은 사실 그가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잠시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을 만큼 빈틈없고 견고하다. 그가 생각한 새로운 무기 앱으로 뚫고 들어가기에는 이미 그 틀이 너무 완고하다. 그러나 기껏해야 목소리나 문자를 주고받던 시장이라면 다르지 않겠는가. 그 기계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앱을 덧붙이게 해준다면 시장을 흔들기가 PC와 웹에 비해 훨씬 쉬운 일 아니겠는가.

실제로 그랬다. 불과 10년전 만 하여도 애플보다 기업가치가 10배나 높았던 노키아를 비롯해 모든 휴대폰 업체들은 알고 보니 간단한 잡스의 비즈니스 로직에 백기 투항했다. 이제 너도나도 누구나 앱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잡스는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종횡무진하고 있다. 휴대폰 업체들이 인터넷 업계 거두 구글과 연대해 스마트폰과 앱스토어의 로직을 어느 정도 따라 붙자 태블릿 아이패드를 내놓으며 전선을 넓혔다. 그가 숙원 해오던 땅 PC 시장을 향해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그 뿐인가. 아이패드를 내놓은 지 몇 개월 만에 휴대폰 업체와 PC 업체들이 뒤엉켜 혼전을 벌이는 동안 다시 애플TV를 내놓으며 이제 안방까지 넘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잡스는 아이팟과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거치면서 다른 모든 경쟁 업체들의 도움을 받아 소비자의 사용습관을 웹 중심에서 앱으로 바꾸고 그것을 기반으로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PC 시장으로 돌아왔다. 이미 익히 알려졌듯 ‘백 투 더 맥(Back to the Mac)'이란 깃발을 들고. 전쟁은 어느새 종착지에 다다른 것이다.

이점에서 애플과 구글의 싸움은 단순히 안드로이드와 iOS의 싸움이 아니다. 구글은 애플에 맞서 안드로이드를 계속 강화시켜나가겠지만 결코 웹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웹에서 갖고 있는 지분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구글이 ‘크롬 웹 앱스토어’라는 것을 내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애플과 앱 전쟁을 하면 할수록 구글로서는 손해다. 이 전쟁이 커질수록 앱의 파이는 커지고 그만큼 웹은 작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글의 목표는 앱의 물꼬를 다시 웹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게 ‘웹 앱스토어’이다.

‘웹 앱스토어’는 애플의 iOS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그리고 MS의 윈도폰7처럼 특정하고 폐쇄적인 운용체계(OS)에서 돌아가는 앱을 거래하는 곳이 아니라 지금의 인터넷처럼 개방된 공간에서 앱을 거래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티브 잡스가 20일 ‘백 투 더 맥’ 행사에서 90일 이내에 ‘맥 앱스토어’를 내놓겠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구글의 ‘크롬 웹 앱스토어’에 대한 선전포고인 것이다. 웹이냐, 앱이냐의 논쟁은 그래서 구글과 애플의 승부가 어떻게 갈리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스티브 잡스와 애플은 앱이라는 실로 아이팟에서 시작해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TV, 그리고 맥북 에어를 꿰어 염주를 만든 것이다. 그 염주 알을 굴릴 때마다 웹의 지분이 줄어들고 앱의 파이가 커질 것이라는 게 잡스의 생각일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잡스는 앱을 도처에서 이용하게 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가정(애플 TV)이든 사무실(아이패드, 맥)이든 이동할 때(아이폰, 아이팟터치)든 모든 애플 기기는 연동되고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앱을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잡스의 앱 철학은 그래서 그동안 데스크톱 PC, 노트북, 스마트폰, 인터넷 검색, 웹브라우저 등 품목별로 나뉘었던 IT 시장을 몇 덩어리의 OS와 앱스토어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거대한 음모(?)라고도 볼 수 있다. 당연히 애플이 그 한 덩어리를 차지하려는 속셈일 것이고 또 다른 덩어리들은 눈치 빠른 누군가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아픈 와중에도 아이팟으로부터 ‘백 투 더 맥’까지 대장정을 단행한 스티브 잡스가 원하는 건 단품 몇 개를 파는 게 아니라 애플 중심의 'IT 제국'을 건설하는 일이다.

그런 추론이 틀리지 않다면, 자, 이제 스티브 잡스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지점에서 눈길을 끄는 게 애플이 보유한 현금이다. 애플은 우리 돈으로 수십조 원의 현금을 쌓아놓고도 왜 배당을 하지 않느냐는 주주들의 볼멘소리를 듣는다. 잡스가 ‘짠돌이’이기 때문에 투자자에게 보답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잡스를 너무 소인배로 깔아뭉개는 일일 것이다. 18일 실적 발표를 하는 자리에서 잡스는 말했다. “한 번 혹은 그 이상 매우 중요한 전략적 기회가 올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이 멘트를 대규모 기업인수에 대한 구상으로 해석하고 있는 분위기다.

내 생각도 그렇다. 단순 짐작이로되, 그가 생각했을 ‘IT 제국’까지 이미 8부 능선은 왔다. 시장을 100% 다 먹는 제국을 건설하겠다고 하면 오만이자 필패의 지름길로 가는 것이겠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상당히 거대한 규모의 제국을 건설할 수 있을 듯도 하다. 이를 위해 마지막 남은 문제가 무엇이겠는가. 난 그게 네트워크와 데이터센터라고 본다. 제국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갔을 때 애플의 OS를 통해 단말(이용자)과 앱스토어(서버)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필수 장비이자 기술들이다.

그것의 완비로 애플은 IT 제국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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