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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이석채 회장, 할 말 했다


'정치적'으로 상당히 심상치 않은 사고다. 이석채 KT 회장이 방송통신위원회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일감은 그랬다.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다. “안하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KT의 대체적인 반응이 그랬다. 이 회장 발언이 어떻게 보도될지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보였다. 발언의 톤을 조정하려는 해명자료도 나왔다.

이 회장이 오버한 것 아니냐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판단할 만도 했다.

문제의 발언은 준비된 원고가 아니었다. 객석의 질문에 대한 대답 형식으로 이뤄졌다. 우발적인 상황이다. 말실수는 대개 우발적인 상황에서 나온다. 그렇게 나온 말이 규제기관에 대한 비판이었다. 과거에는 흔치 않았던 일이다. 할 말이 있어도 공개된 자리에서는 참는 게 상례였다. 진짜 할 말은 아무도 듣지 않는 밀실에서 조용히 행해지는 게 미덕이던 나라이다.

진짜 이 회장은 얼떨결에 말실수를 하고 만 것일까.

그렇게 본다면 이 회장을 한참 모르는 소리다. 이 회장이 누구인가. 명석한 두뇌와 강력한 카리스마를 특징으로 하는 정통 엘리트 관료 출신이다. 흐트러진 빈틈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 캐릭터다. 더구나 문제의 질문과 답변은 그가 가장 잘 아는 분야다. 그의 말을 실수로 볼 수 없는 측면이 여기에 있다. 충분히 작심하고 한 말일 수 있다.

그래서 이 회장 발언은 1995년 4월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베이징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작심하고 “한국 경제는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성토했다. 당시 주변에 있던 삼성 임원들은 화들짝 놀라 보도하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도가 됐고 큰 소란이 벌어졌다.

두 발언이 닮은 건 내용 자체보다 정치적 이유로 주위에서 호들갑을 떨게 만들 만큼 강렬하다는 점이다. 또 내용인즉 옳더라도 그 사람의 서 있는 위치가 그 말을 하기에 적절한 위치냐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는 것이고, 그런 환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그 점에서 두 사람은 상식과 소신을 바탕으로 변화와 진전을 모색하는 진보적 인물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반대로 오히려 주변의 인물들이 제왕적 봉건시대에 짓눌려 늘 전전긍긍하며 주어진 대세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피동적 보수 성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포인트가 ‘비즈니스 프렌들리’인데, 그 정책에 진정성이 있다면, 대기업 회장으로 기업을 운영하면서 정부에 느끼는 애로가 있을 때 자연스레 문제제기하는 것은 지극한 상식 아닌가.

한편, 이건희 전 회장의 발언과 이석채 회장의 발언은 같으면서도 다른 측면이 있다. 이 전 회장의 발언은 그 내용이 대부분의 사람이 인정할 만한 현실적으로 옳은 말이지만 그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와 달리 이석채 회장의 발언은 당장의 현안 문제고, 얼마든지 다양한 대안을 찾고 논의할 수 있는 소재다. 그래서 이석채 회장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더 나은 대안을 찾고자 강렬한 화두를 던진 셈이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 환경에 맞춰 정부 조직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에 대해 사실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 많은 논란 뒤에 만든 조직이 방송통신위원회다. 또 방통위가 1년 이상 가동됐기 때문에 새로운 조직체계가 효율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충분히 따져볼 때가 됐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석채 회장이 지적하고 슬며시 비친 대안이 반드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전혀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더 나은 대안이 있을 수 있다면 논의해서 나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 정부의 주요 철학인 '실용'이란 것의 핵심 아닌가.

그런 이유 때문에 사실 방통위의 구조에 대한 이 회장의 24일 발언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고도로 전략적인 것이었다고 판단하는 게 더 맞을 수 있다. 좀 더 건너짚어 말하면 이 회장은 이미 정권 깊은 곳과 어느 정도 상당한 교감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 모종의 전략이 무엇인지는 추후에 밝혀질 수밖에 없다. 그것까지 지금 섣불리 예단할 이유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방송과 통신 융합이 대세인 것은 현실이지만, IT 산업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방송과 통신에 관한 정책을 일원화하는 게 옳은지, 2원화 하는 게 옳은 지에 대한 논란은, 방송통신위원회 출범 전부터 있어왔고, 그에 관한 문제제기는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석채 회장은 이 사실을 애써 묻어두지 않고 오히려 공개적으로 꺼내 다시 논의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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