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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묵]'대운하'에서 '괴물3' 나올라


한국영화 역대 최다관객을 동원한 '괴물'의 제작사 청어람은 얼마 전 속편인 '괴물2'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한강이 배경이었던 1편과 달리 놀랍게도 2편은 청계천이 배경이다.

영화사 측은 2003년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노점상 등 강제 철거작업이 이뤄지는 것을 기본 설정으로 여러 마리의 괴물이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1편은 상계동 개발 당시 강제 철거민들이 한강 둔치에 매점을 분양 받았다는 현실 사례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매끈한 시민들의 안식처로 사랑받는 청계천도 착공 당시 인근의 철거민 문제, 하천의 생태적 문제 등 현실 문제의 함의를 가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한반도 대운하' 공사를 청계천 복원과 동급으로 생각한 것일까.

압도적인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대선 후보 시절에도 그가 대운하 건설 공약을 진짜로 이행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진짜로, 그것도 '임기 내에' 할 것 같다.

당선인의 측근들은 "임기 중에 완성한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으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도 한반도 대운하 태스크포스팀(TFT)이 구성됐다. 현대건설 등 몇몇 건설사는 정부 출범 전에 대운하 건설을 위한 별도의 협의체를 만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로 물류비용 절감, 내륙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수질 정화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환경단체들은 대선 전부터 하천 생태계 파괴, 식수원 오염,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 조장, 부동산 경기 과열, 경제 수익성 모호 등 숱한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일각에선 '대운하 임기 내 완성' 계획은 건설 토목 경기 부양을 통해 '747 공약'의 7%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의견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대통합민주신당 등 각 당은 "7% 성장 공약을 달성 못했다고 비판하지 않겠으니 대운하 건설만은 하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는 형국이다.

경기 활성화, 물류비용 절감, 환경 문제 등은 전문적인 영역이니 일단 차지하더라도 '일자리 30만 창출'을 보면 황당할 뿐이다. 대운하 건설이 끝난 뒤 다시 해고될 비정규직 30만명을 추가로 늘리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사업 자체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추진력'이다. 이 정도 사안에 토론도,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도 없다. 반대 목소리가 많이 나오는데도 그저 "건설 여부는 재고하지 않고 무조건 한다" 식이다.

대운하 사업보다 위험한 것이 이 같은 독단성일지도 모른다. 역대 대통령 적접선거 사상 최고인 48%라는 지지율을 얻었기 때문에 마치 절반 가까운 국민이 이 사업에 마치 동의라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산술적으로만 봐도 이 당선인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을 포함한 전체 유권자(3천765만여명) 중에서 30% 가량의 지지(1천140만여표)를 받았다.

대선의 높은 지지율의 여세를 몰아 임기 초반 기세를 확실히 잡겠다는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설사 그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았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대운하 같은 '대형 사업'은 제대로 각계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지난 대선 기간 동안 판세 싸움과 각종 의혹 공방으로 공약을 논의할 시간이 없었으니 지금이라도 논의를 차분하게 시작하면 된다.

대운하 사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행한 경부고속도로처럼 '선 개통 후 보완'이라는 '나름의 명분'도 없다. 취임 전부터 이처럼 서두를 이유가 하등 없다. 더욱이 이 당선인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에서 나온 정책들은 장기적 안목이 결여된 '반짝' 이벤트 성격이 짙다는 시각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장 재직 시절 최대 치적이라고 평가 받았던 버스 운영체제 개편도 반 년 만에 약 1천300억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청계천은 인근 하천과 완전히 단절된 비 생태적 거대 어항이며 반쪽짜리 복원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국민들은 이 당선인이 보여준 '성공사업'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대운하에 대한 우려도 클 수밖에 없다.

대운하가 정말로 "국가의 미래이자 후손들을 위한 애국(이재오 의원)"이라면 이명박 당선인은 서두르지 말고, 먼저 임기 내에 건설해야 하는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 오해받고 있는 것이 있다면 해명해야 한다.

새 정부의 주장대로 대운하 건설로 내수 산업이 활성화 되고, 물이 정화되며, 물류 비용을 낮출 수 있다면 반대자들도 그럴 이유가 없다. 무작정 '드라이브'만 걸 것이 아니라 먼저 국민이 알아듣게끔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다시 '괴물2' 이야기로 가 보자. '괴물2'에는 "대통령을 목표로 하는 우리 시장님이 청계천 복원 사업을 임기 내 이루라고 지시했다"는 공무원의 대사가 있다고 한다.

만약 대운하가 이처럼 부실한 논의과정을 통해 착공돼 돌이킬 수 없는 진통을 낳게 된다면 몇 년 뒤 한반도 대운하를 배경으로 '괴물3'가 만들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괴물3'가 제작된다면 어떤 괴물이 나오고 어떤 이야기가 진행될까? 한강부터 낙동강까지 인간과 괴물의 논스톱 사투라는 화끈한 액션 장면이 나올 법 하지 않을까?

"7% 성장을 목표로 하는 우리 대통령님이 대운하 사업을 임기 내에 이루라고 지시했다"와 같은 대사도 나올지 모른다. 영화 '괴물'의 열렬한 팬이지만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지는 속편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정병묵기자 honnez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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