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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손님이 작동해 보세요"…갈 길 먼 '제로페이'


강남·시청 앞 제로페이 첫 날…'홍보부족' 역력

[아이뉴스24 허인혜 기자] 간편 결제를 내세웠던 제로페이는 불편했다. 하루 종일 모두 90곳의 매장을 찾았지만 제로페이로 구매한 물건은 김밥 한 줄과 빵 하나, 커피 한잔이었다. 그마저도 제로페이 가맹점임을 확인하고 방문한 두 곳의 대형 프랜차이즈 직영점을 제외하면 딱 한 곳이다.

'카드수수료 0%'를 내세운 제로페이가 20일 시행됐지만 현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서울시청과 정부서울청사 공무원들이 포진한 광화문, 시청 일대 상권은 점심시간 이후 오후 5시까지, 일반 소비자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퇴근 무렵인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방문해 봤다. 제로페이의 가동률은 말 그대로 제로에 가까웠다.

◆공무원도 외면한 제로페이…시청 앞 대형 프랜차이즈 직영점서만 받았다

점심시간 직후 서울시청과 정부서울청사 인근 상점 20곳을 돌아본 결과 제로페이가 가능하다고 답한 곳은 다섯 곳이었다. 구매 실패로 이어진 곳이 두 곳이라 실제로 가동된 곳은 세 곳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결제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할까 걱정스러워 제로페이 가맹점임을 확인하고 찾아간 대형 프랜차이즈 직영점 두 곳을 제외하면 딱 한 곳뿐인 셈이다. 그 한 곳마저도 중견 외식업체의 프랜차이즈였다.

갈 때마다 첫 손님이었다. 자영업자도 결제 방법을 몰라 되묻는 일은 당연지사. 결국 "손님이 결제방법을 좀 알려달라"는 하소연이 나왔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열고 QR코드를 찍거나 바코드를 생성하고, 결제 금액을 확인해 결제하는 데에만 수분이 소요됐다.

상인과 구매자가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결제 직후였다. 구매자는 돈을 지불했는데 상인은 돈이 들어 왔는지를 알지 못했다. 서울시청 인근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30대 김씨는 "인근 직원들이 이용하는 e식권은 사용하면 바로 문자가 오는데…."라고 갸우뚱거렸다. 앱을 확인하면 된다고 일러주자 "앱을 깔아야 한다는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결제를 하지 않고 했다고 하면 어쩌느냐고 묻자 "앞에서 환불을 한번 시현해봐달라"는 요청이 돌아왔다.

대형 프랜차이즈도 제로페이 쓰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서울시는 파리크라상·bhc·롯데리아·엔제리너스·크리스피크림도넛 등 26개 프랜차이즈에서 제로페이 사용이 가능하다고 안내했지만, 실제로 해당 매장들에서 제로페이를 사용하려면 근처 가게가 직영점인지 아닌지부터를 파악해야 했다.

시청 인근 가게들은 오늘 하루 제로페이 이용 자체가 없어 공무원 사용률도 알 수 없다고 답했다. 공무원들 조차 시청, 정부청사 인근 가게에서 제로페이를 사용하지 않은 셈이다.

서울지역 공무원 B씨는 "서울지역 공무원들은 홍보 브로셔와 현수막을 보고 내용을 알지만 지방의 공무원들은 제로페이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공무원들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국 확산이 쉬울지 걱정스럽다"고 답했다.

◆강남 고속터미널, 제로페이존? "한 명도 안 쓰고 안 묻는다"

같은 날 오후 강남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의 제로페이 가동률은 0%였다. 지하상가 매장 70곳을 무작위로 돌았지만 제로페이로 결제하거나 제로페이를 찾는 손님이 있었던 매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 곳은 서울시가 제로페이존으로 지정한 제로페이 특화 구역이다.

물건을 사기도 어려웠다. 제로페이 교육이 다 이뤄지지 않은 데다 상인들도 제로페이 QR코드를 붙여두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제로페이 구매가 이뤄지려면 상인이 손님에게 QR코드 패키지를 풀어 보여주고, 결제 금액을 고지한 뒤 결제 금액이 제대로 들어왔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만약 앱이 깔리지 않았거나 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시간은 훨씬 오래 걸린다. 그마저도 직원 등록이 돼 있지 않으면 무조건 가게 명의자가 자리에 붙어있어야 결제 여부를 볼 수 있다.

상인들은 "한 명도 제로페이로 결제하지도, 찾지도 않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자를 공무원으로 오해한 한 상인은 "홍보 좀 똑바로 해요!"라고 큰 소리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지하상가 인근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점도 제로페이가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맹점임을 확인하고 방문한 한 대형 카페에서는 "제로페이가 되지 않고, 되는 지를 묻는 사람도 손님이 처음"이라고 답했다.

여의도 일대와 영등포 지하상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여의도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박새롬 씨는 "제로페이가 오늘부터 시행된다고 해 호기심으로 커피숍과 편의점 결제를 시도해봤지만 편의점에서는 이야기를 못 들었다, 커피숍에서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거절했다"고 전했다.

◆자영업자 "시현도 없이 공문만 달랑…장사도 안 되는데 행정낭비" 불만

자영업자들은 제로페이가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다 교육도 부족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전통시장이나 먹자골목 등 소상공인 지역에 제로페이가 정착할 가능성도 낮게 봤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 C씨는 "홍보차 오긴 했는데 제로페이만 일러주고 어떻게 쓰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교육을 온다더니 감감무소식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상인 D씨는 "비트코인이 뜰 때는 비트코인 결제를 하라더니, 또 중국인 관광객이 온다고 알리페이를 쓰라고 하고 이번에는 제로페이다"라며 "정부에서 나와서 하라고 유도했던 결제 방식으로 실제 구매가 이뤄진 적은 손에 꼽는다"고 성토했다.

고령의 상인들은 제로페이의 개념부터 어려워했다.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 E씨는 "어머니와 가게를 운영하는데 어머니가 칠순이 넘으셨다. 어머니 혼자 있을 때 누가 제로페이로 결제한다고 하면, 카드결제도 어려워하는 분이 제로페이를 쓰겠느냐"고 반문했다.

소비자 불편도 컸다. 제로페이가 구동되는 앱을 찾아 깔아야 할 뿐 아니라 포인트 적립이라도 하려면 이중 결제를 진행해야 했다. 중구의 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직원 F씨는 "본사에서 정확한 지침이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포인트 적립을 하려면 우선 제로페이로 결제하고 카드에 다시 한번 포인트를 입력하는 방식 같다"고 전했다.

경복궁역 인근에서 커피전문점 운영하는 30대 정씨는 "카카오톡은 대부분 필수 앱으로 깔린 반면 제로페이는 관련 앱을 내려 받아야 하는 등 소비자 불편이 많다"며 "손님들이 편안하고, 그래서 수요가 많아야 자영업자들에게도 제로페이가 정착할 텐데 아직까지는 시스템도 홍보도 미미한 상황"이라고 평했다.

허인혜기자 freesi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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