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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vs 애플 전선(戰線)' 깊고 넓어진다


수년전만해도 삼성전자와 애플이 지금처럼 심하게 부닥칠 것이라고 예측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애플과 삼성의 전쟁은 일부 품목에서 벌어지는 국지전(局地戰)에 지나지 않았다.

애플의 제조라인이 매킨토시 하나로 단조로웠을 때 오히려 둘 사이는 협력관계에 가까웠다. 애플로서는 반도체 등 삼성전자의 부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01년 10월 애플이 아이팟을 추가하고, 애플 최대 히트작 아이폰이 처음 나온 2007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아이폰의 위력이 배가되고 모든 휴대폰 제조업체가 위기를 실감한 지난해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그전부터 삼성으로서는 위기를 느꼈겠지만 애플과 싸울 무기조차 없던 상황이었다. 하여, 지난해까지만 해도 애플과의 전쟁은 삼성 마음속에만 있었을뿐, 겉으로 드러나지 못했다. 그건 전쟁도 아니었다.

삼성과 애플의 전선(戰線)이 또렷하게 드러나고 확대된 건 올해부터라고 봐야 한다. 특히 애플의 아이폰이 지난해말 한국 시장에 상륙하면서 그 실체와 위력을 삼성 경영진이 목도한 뒤부터라고 볼 수 있다. 아이폰이 모든 이유였다고 할 순 없지만 한국 두 전자 업체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삼성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복귀하고 LG도 오너 체제로 바뀌었다.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지 않으면 소니를 딛고 세계 최대 전자 업체로 부상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릴 위기로 판단한 것이다.

이후 삼성과 애플의 전선(戰線)은 더욱 더 깊고 넓어지고 있다. 두 회사 사이에 부닥치는 제품의 수가 더 많아지고 싸움의 내용도 한층 더 복잡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는 국지전이 아니라 세계 최대 전자 업체 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루는 본격적인 전면전(全面戰)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싸움의 양상은 곳곳의 전장(戰場)에서 애플이 선점한 고지를 삼성이 탈환키 위해 반격하는 모습이다. 그 고지는 사실 애플이 나타나기전까지만 해도 삼성이 차지하던 곳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애플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그 고지를 차지했다. 공격을 하고 있다는 낌새조차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빨랐다. 혁신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애플은 가는 곳마다 거의 무혈입성(無血入城)하곤 했다.

스마트폰 시장의 싸움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애플은 하나의 나라에서 한 이동전화 사업자를 통해 아이폰을 공급하는 정책을 펴왔다. 독점 공급을 통해 이동전화 사업자에 대한 통제력을 갖으려는 게 애플의 의도였다. 이 의도는 적중했고, 애플 중심의 유통구조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이는 각 나라에서 경쟁 이동통신 사업자를 자극해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안드로이드 진영이 반격을 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줬다. 미국의 버라이즌이나 한국의 SK텔레콤처럼 각 나라 1위 사업자가 안드로이드폰 공급에 주력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결과로 올들의 '구글-1위 이통사업자-제조업체'가 혈맹은 맺은 안드로이드 진영이 대약진할 수 있었다. 삼성 또한 이 물결을 타고 '갤럭시S'를 확실한 아이폰의 대항마로 자리매김시켰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통 시장 유통 구조를 어느 정도 바꾸었다고 확신하는 애플이 이제 안드로이드의 공세에 맞서 공급 채널을 다양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그동안 안드로이드 진영의 충실한 지원자였던 버라이즌이 내년초부터 아이폰 공급에 나설 전망이다. 이제 피아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전면전이 시작되려는 찰나인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태블릿 PC 시장에서 먼저 나타났다. 미국 1위 사업자인 버라이즌이 사상 처음으로 애플 모바일기기를 공급키로 한 것이다. AT&T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애플 제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고, 아이폰에 앞서 아이패드를 공급함으로써 애플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셈이다. AT&T는 이에 맞서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이나 갤럭시S를 비롯해 안드로이드 진영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수급하며 대응하고 있는 중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시장이 이처럼 대혼전으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애플의 또 하나의 히트작인 ‘아이팟 터치’ 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곧 미국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 전선을 더 넓힌 것이다. 이번에 내놓는 '갤럭시 플레이어 50'은 안드로이드2.1 OS를 채택한 것으로 전화 기능을 빼면 갤럭시S보다 크기는 조금 작지만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다. '아이팟 터치'가 전화 기능을 뺀 아이폰과 비슷하다는 점까지 닮아 있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또 스마트 TV 시장에서도 격돌할 수밖에 없다.

지난 9월초 애플은 99달러 짜리 '애플TV' 새 제품을 내놓았다. 이 제품은 TV를 인터넷에 연결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셋톱박스다. 애플은 또 99센트에 비디오를 대여해볼 수 있는 서비스도 선보였다. 아이폰과 앱스토어의 조합처럼 가정에서도 TV와 TV 앱을 결합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발판을 강화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애플이 이를 조금 더 담금질할 뒤 TV 세트 사업에도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는 편이다. 이는 역시 삼성 가전 사업의 핵심 영역이기도 하다. 삼성 또한 애플TV가 발표되기 직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발자들을 상대로 TV 앱 개발 툴 및 앱 스토어를 소개했다. 세계 1위 TV 제조업체로서, 인터넷 TV와 앱을 연결한 사업 모델에서만큼은 앞서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노트북 시장 또한 머잖아 애플과 삼성전자의 격전지가 될 전망이다. 애플은 지난 20일 과거보다 훨씬 저렴한 요금의 '맥북 에어'를 내놓았다. 그동안 디자이너 등 얼리어덥터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맥의 대중화'를 선포한 것이다. 애플은 특히 맥에도 앱 스토어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아이폰과 앱스토어의 모델을 노트북 컴퓨터 분야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이에 대한 삼성전자의 반격 조치는 아직 나온 바 없다. 그러나 노트북 사업이 삼성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삼성 또한 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추후 비슷한 제품과 사업모델을 바탕으로 한 추격전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애플의 장기 사업 구상이 자사 운용체계(OS)를 기반으로 폐쇄적이지만 어마어마하게 큰 애플리케이션 장터를 구축하고 가정(TV, PC)과 직장(노트북, 태블릿) 그리고 이동 중일 때(스마트폰, 포터블 멀티미디어 기기), 즉 언제 어디서든 이에 접속케 하는 'IT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볼 때 그 모든 영역에서 삼성과의 일대 결전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언급된 그 모든 영역에 걸쳐 사업을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두 회사 각기 장단점이 있을 것이으므로, 누구라도 이 큰 승부를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싸움이 2010년대 세계 IT 산업계 최대 전쟁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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