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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미의 명랑한 경제]작고 놀라운 '접대의 기술'


'박스권 내 공방', '적자생존', '게임의 법칙'…

날마다 메일함을 열면 제목도 경제적인 편지들이 수북히 와 있다. 증권사와 정부, 각종 협단체가 쏟아내는 정보들이다.

이틀 전 아침. 그 속에서 따뜻한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내일은 좋은 소식 있을 겁니다.'

흔치 않은 제목이었다. '요즘 경기가 무척 힘드시죠'로 운을 뗀 글은 '오늘 저녁 미국 상원의회에서 8천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며 '주식 사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신 분들 내일 아침에 희망을 갖고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란다'고 다독였다.

나도 주주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법안에 알맹이가 없으면 되려 악재가 되리란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반전은 그 다음. '참! ooo나이트 오시면 ooo 꼭~ 찾아주시는 것 잊지 마시구요~ 화이팅!'

실소가 터졌다. 미국의 구제금융법안까지 들먹인 희망가는 결국 유흥업소 홍보를 위한 전조였다. 낚시 메일에 위안을 얻는 일상이라.

그러나 곧 생각이 달라졌다. 편지를 보낸 웨이터는 기사를 보고 이메일 주소를 얻었을 터. 핵심은 그가 경제기자의 관심사를 염두에 두고 홍보 편지를 썼다는 점이다. 만약 글의 순서가 '증시→나이트 클럽'이 아닌, '나이트 클럽→증시'였다면 어땠을까. 볼 것도 없이 '삭제'다.

'공감'. 지방의 한 유흠업소에서 날아온 메일은 접대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

메일을 닫으며 '접대(接待)'의 기술을 새겨본다.

정부와 기업에서 인사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은 접대 중이다. 연상되는 단어는 회원권, 골프채, 명품, 고가 그림.

그런데 가까이서 본 '접대의 달인'들은 꼭 풍악을 울리고 폭탄주를 젓지 않고도, 그린에 나가 '나이스 샷'을 외치지 않고도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비용대비 산출이 놀라운 접대 필살기를 귀띔해볼까.

#1. "아, 예. 아니 정말요? 형님, 아이고 진짜 고맙습니다"

지금은 청와대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긴 한 관료와 점심을 먹을 때다. 수더분한 인상에 느릿한 말투, 좀체 격앙되거나 흥분하는 법이 없던 그가 식당이 떠나가라 목소리를 키웠다.

로또 복권에라도 당첨된 건가.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그가 던진 대답은 싱거웠다. "아, 자식놈 학교 때문에 아는 분께 작은 일을 좀 부탁했는데 그게 잘 됐어요."

듣고보니 별 일 아닌 얘기였다. 고마운 일인 건 맞는데 고마워 마땅한 정도는 10점 만점에 3점짜리나 될까. 그런데 그의 반응은 10점 만점에 10점 그 이상이다. '경량급 사안'에 그렇게까지 과하게 기쁜 마음을 표현할 필요가 있나 슬쩍 비위가 상하려는 찰나, 그가 눈을 찡긋하며 하는 말.

"아, 작건 크건 고마운 건 고마운 거 아닙니까. 상대가 생색을 내고 싶어하면 또 생색을 크게 낼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기민한 일처리로 사무관 시절부터 능력을 인정받아온 그다. 선배들의 사랑과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데는 '능력 플러스 알파'가 있었다.

#2. "공장장님과 함께 먹은 자장면 잊지 못할거예요…"

지난 달 불의의 사고로 숨진 故 장병조(55)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부사장. 장 부사장은 뭉클한 일화를 많이 남긴 리더로 유명하다.

빈소에서 만난 조문객들은 그를 "1만 명 남짓한 직원 하나하나를 적어도 한 번씩은 따로 만나 고민을 물어준 분"으로 기억했다.

생산라인 여직원들은 "누구보다 갈매기(구미공단 일대 여러 기업을 오가며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어린 여직원들)의 꿈을 잘 헤아려 주셨던 분"이라며 울먹였다.

집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는 어린 직원들에게 마음을 붙이라며 사업장 내에서 강아지를 기를 수 있게 해 준 것도 그였다. 여공들과 함께 자장면을 먹으며 밤을 새웠고, 사원 하나하나를 따로 만나 자판기 커피를 나눴다.

그런 그가 숨졌다. 사망 소식에 첫 날에만 2천500명이 빈소를 찾았다. 최지성 사장처럼 얼굴만 보면 누군지 알 수 있는 사람보다 비통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는 현장의 근로자들이 더 많았다.

서울과 수원사업장은 물론 구미에서도 수많은 직원들이 매일 밤 상경했다. 왕복 6시간 반. 구미 공장의 숱한 직원들이 4일장 내내 그 길을 달려오겠다고 했다.

생전 장 부사장은 삼백원짜리 자판기 커피 한 잔, 삼 천원짜리 자장면 한 그릇으로 1만 명 부하직원들을 접대했다. 그리고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박연미기자 chang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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