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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바이러스기초연구소 설립 논란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가 바이러스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러스기초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바이러스 전문 과학자들을 모아 기초연구를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감염병 대응을 위한 국가의 과학기술적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나온 당연한 행보다.

그런데 설립방식을 놓고 과학기술계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백지화 또는 전면재검토 요구까지 나온다. 왜 그럴까?

시작은 지난 6월3일 보건복지부와 과기정통부가 바이러스연구소를 각각 설립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이공주 前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이 2월20일 청와대를 떠나면서 처음 밝힌 '국가바이러스연구소' 설립구상이 오랫동안 진통을 겪는가 했더니 보건복지부의 '바이러스감염병연구소'와 과기부의 '바이러스기초연구소' 복수설립안이 정부안으로 발표된 것이다. 바이러스연구소를 부처별로 각각 설립한다는 이같은 계획은 실효성없는 부처간 밥그릇싸움일 뿐이라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바이러스연구소는 기초연구에서부터 임상시험과 치료제 백신 개발에 이르기까지 통합된 연구체계가 필요하다는 게 과기계의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기부는 '바이러스기초연구소'설립을 계속 밀어붙여 왔다. 독립적인 연구소 설립이 어렵게 되자 생명공학연구원 부설기관으로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그마저도 쉽지 않자 이제는 과기부 직할 연구소인 기초과학연구원(IBS) 부설기관으로 설립한다는 방안이 전해져 논란은 증폭, 다양화되는 모습이다.

과기정통부는 바이러스 관련 연구소를 어떻게든 만들겠다는 태세다. 답은 이미 정해놓고 적절한 모양새를 찾기 위해 골몰하는 모습으로도 비쳐진다.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기초연구는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부처간 밥그릇싸움'으로 치부하고 말 일은 아닌 것 같다. 과기부 공무원들이 코로나19 사태 해결의 과학기술적 지원을 위해 땀나게 뛰어다니고 있는 건 사실이다. "코로나19가 터진 후에 연구개발 현황을 파악해 보니 우리나라에 바이러스 기초연구 기반이 너무 열악하더라. 이번 기회에 기초부터 확실하게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정병선 차관의 말은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방법과 절차, 추진과정, 실효성과 관련해 끊임없이 뒷말이 나오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바이러스기초연구소의 자세한 설립방안은 과기부의 공식 발표를 기다려봐야겠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소식들을 바탕으로, 주로 과학기술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바이러스기초연구소 설립의 문제점을 정리해 본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6월3일 코로나19 치료제·백신개발 범정부 지원단 제3차 회의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6월3일 코로나19 치료제·백신개발 범정부 지원단 제3차 회의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기초연구와 응용·개발 연구의 구분, 바람직한가?

정부는 6월3일 국가 바이러스·감염병 대응 연구기관 설립에 대한 브리핑에서 "보건복지부의 바이러스감염병연구소는 백신이나 치료제 같은 감염병에 관한 포괄적인 응용연구를, 과기정통부의 바이러스기초연구소는 바이러스에 관한 포괄적인 기초·원천연구를 맡는다"고 밝혔다. 최기영 과기부 장관은 "기초연구는 과기정통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일견 그럴듯한 역할분담으로 보인다. 과기부의 기초연구에 대한 의지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관련 분야 연구자들은 "바이러스 분야는 그렇게 구분해서 연구하기도 어렵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연구소의 중복설립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숱하게 지적한 사항이니 이 글에서는 주로 과학기술정책의 관점에서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구분이 가진 문제는 단지 바이러스 연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초연구진흥 및 기술개발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기초연구법')제2조(정의) 이 법에서 "기초연구"란 기초과학(자연현상에 대한 탐구 자체를 목적으로 하며, 공학ㆍ의학ㆍ농학 등의 밑바탕이 되는 기초 원리와 이론에 관한 학문을 말한다) 또는 기초과학과 공학ㆍ의학ㆍ농학 등과의 융합을 통하여 새로운 이론과 지식 등을 창출하는 연구활동을 말한다.[전문개정 2020. 6. 9.]

우선 '기초과학'과 '기초연구'의 의미를 구분하자. 우리가 일상에서 주로 쓰는 '기초과학'이라는 단어는 '물리학·화학·수학·생물학·지구과학' 같은 기초 학문을 뜻한다. 반면 '기초연구'는 주로 과학기술 또는 연구개발정책에서 기초-응용-개발 같은 연구단계를 구분할 때 사용하는 '정책용어'다. 위의 법조문에서 보듯이 기초연구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때로는 순수기초연구와 목적기초연구로 구분하기도 한다. '한반도 중생대 곤충화석 연구'는 순수기초연구지만, '감염병 대응을 위한 바이러스 기전 연구'는 목적기초연구에 속한다.

두 단어가 흔히 혼용되기는 하지만, 기초과학은 학문 분야(성격)의 구분을, 기초연구는 연구단계의 구분을 할 때 주로 사용되며 외연상 겹치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 의미는 다르게 사용된다.(사소해 보이는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기초'와 같은 두루뭉술하면서도 멋진 말이 정책용어로 사용될 때 정작 정책의 진짜 내용은 흐릿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초에 투자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있단 말인가!)

정부출연연구소 중에서 연구단계를 구분해 설립한 곳은 없다. 한국화학연구원이 기초과학인 '화학'을 이름붙이고 있다고 해서 기초연구를 주로 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기계연구원이 응용공학인 '기계'를 다룬다고 기초연구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정부 출연연은 대부분 연구분야별로 분리 설립돼 왔을 뿐 연구단계별로 구분해서 설립하지는 않는다.

정부가 개별 연구소를 설립할 때 연구단계를 구분해 '기초연구'를 하겠다고 제시한 것은 출연연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정책은 그 반대방향으로 흘러왔다고 할 수 있다.

연구소를 관리하는 상위기관으로서의 '연구회'는 김대중 정부에서 기초기술연구회-공공기술연구회-산업기술연구회 체제를 처음 구축한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통합돼 2014년 현재의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체제로 일원화됐다. NST로 통합할 때의 핵심 명분은 '융합'이었다. 학제간 수평적 융합, 분과내 수직결합은 갈수록 강조되는 추세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신약개발까지 파이프라인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생명과학 분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NST 산하 25개 출연연을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이러스기초연구소'가 그동안의 출연연 정책에 역행하는 발상인 이유다.

다른 부처와 상관없이 과기부가 혼자 연구소를 설립한다고 해도 그럴진대 하물며 타 부처와의 관계설정에서 과기부가 '기초연구부처'를 자임하고 이를 중복 설립의 핵심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그 자체로도 나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 갑작스레 과기부가 기초연구는 우리 담당이니 전담부처가 있다 해도 기초연구는 우리가 따로 하겠다고 나선 데 대한 부작용은 없을까? 있는 칸막이를 허물어도 모자랄 판에 새 칸막이를 또 만들겠다는 것은 아닌가?

만약 한국화학연구원을 기초화학연구소와 응용화학연구소로 나누어 응용화학연구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맡겠다고 한다면? 기초연구의 또다른 중요부처인 교육부가 바이러스기초연구소는 교육부에 두자고 한다면? 이를 반대할 근거가 있을까?

◆뜬금없는 IBS의 등장, 왜?

기초과학연구원(IBS)이 바이러스기초연구소 설립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은 이같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초과학연구원이니까 기초연구를 하는 게 당연하다?

'기초과학'과 '기초연구'가 정책적으로 다른 의미라는 것은 위에서 언급했지만 IBS의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비슷한 의미를 띤다고 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문제는 IBS의 설립취지가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바이러스기초연구소에 걸맞지 않다는 점이다.

IBS는 여타의 정부출연연구기관과는 설립취지와 운영방식이 판이한 조직이다. IBS는 이명박 정부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연구소를 만들겠다며 2011년 설립한 과기정통부 직할 연구소다. 이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계적인 석학들을 연구단장으로 모셔왔다. 핵심은 '연구주제'가 아니라 '연구자'다. 매년 100억원씩의 연구비를 연구단장에게 주고 연구주제든 수행방식이든 연구비 지출이든 권한을 몰아주었다. 이런 연구단이 현재 30개다. 세계적인 석학이,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함으로써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내겠다는 게 기본철학이다. 이같은 특유의 운영방식 때문에 권한남용으로 인한 문제들이 걸핏하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과기부가 지난해 1년 내내 감사를 한다며 들들볶았던 게 IBS다.

따라서 감염병 대응이라는 문제해결을 목적으로 설립할 바이러스기초연구소를 IBS에 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순수기초연구 수행연구기관에 목적기초연구를 하라고 강요하고, 자율적 연구로 인류의 지식 확장에 기여한다는 연구소에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해결하라는 것이다. 설령 그게 맞다면 IBS의 정체성부터 다시 정립해야 할 일이다.

이 때문에 IBS의 '연구단' 체제가 아니라 '부설 연구소'로 설립하겠다는 구상이 등장한 모양인데, 이것은 자영업자들이 법인 설립하기 귀찮다고 친구 회사 이름만 빌려서 따로 운영하는 격이나 다름없다.

◆솔직하고 투명한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과기부가 연구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하는 형식적인 토론회도, 공청회도, 실태조사도 없다.

이공주 前보좌관이 국가바이러스연구소 구상을 밝혔을 당시는 코로나19가 막 긴급한 상황으로 진입하는 시점이었지만 그가 거론한 감염병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이었다. 정부 내에서 바이러스연구소의 필요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코로나19가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였다는 뜻이다. 그랬던 것이 코로나19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긴급하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졸속으로 연구소 설립이 이뤄진다면 한국과학기술정책사에 또하나의 흑역사를 기록할 수도 있다. 설립은 쉽지만 없애기는 정말 어려운 게 공공기관 아닌가? 과기정통부는 바이러스기초연구소를 설립하려고 하는 진짜 이유를 투명하게 밝히고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지금은 코로나19 방역 전쟁 중이다. 관련된 연구자들은 모두 시급한 문제해결에 매달려 있다. 독립적인 연구소 설립은 천천히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최상국 기자 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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