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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의 IT 경제학] 아이러니 월드컴


 

사상 최악의 기업 도산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바로 월드컴입니다. 우리 돈으로 무려 120조원짜리 기업이 공중에 날아갈 처지에 놓였습니다. 아직 파산보호신청에 대한 심사가 진행중이어서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어마어마한 액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월드컴의 도산은 일개 미국내 장거리전화회사가 망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난 90년대 이후 꽃피어온 전세계 디지털 신경제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며 기존 기업에 도전적으로 나온 신규진입 기업들의 패망이기도 합니다.

제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월드컴 그룹안에 MCI, MFS, 유유넷 등이 포함돼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이들 기업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잘 모르시겠지만 이들 기업이 바로 AT&T로 표현되는 역사상 최고의 독점기업인 벨시스템을 붕괴시킨 장본인이며 미국내에서 인터넷 시대를 열도록 만든 인프라를 제공한 기업입니다.

월드컴의 버나드 에버스 회장. 그의 백그라운드는 정보통신 또는 기업경영과는 거리가 멀지요. 에버스회장은 원래 농구 특기생으로 미시시피대학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한 인물로 한때 고등학교 농구팀 코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것은 모텔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입니다.미시시피호텔이란 체인을 통해 떼돈을 번 그는 83년 LDDS라는 장거리전화회사를 세웁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96년까지 미국내 장거리전화시장에서 5위밖에 안됩니다. 결국 그는 당시 2위인 MCI를 인수하고 초고속망서비스업체인 MFS를 흡수 합병해 미국 통신시장에서 2위에 뛰어오릅니다. 에버스는 항상 작은 덩치로 더 큰 기업을 인수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70건이 넘는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가치를 뻥튀기시킨 명수이자 자산증식의 마이더스 손입니다. 여기에 월가의 금융전문가를 항상 배석시킨 것은 물론이고요.

자, 그럼 MCI란 회사를 봅시다. Microwave Communications, Inc.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회사는 지난 63년 유선이 아닌 무선통신기술로 전용회선사업에 뛰어든 업체입니다. 통신전문가들이 꼽는 20세기 가장 큰 사건은 MCI의 설립입니다. MCI는 세인트루이스와 시카고를 연결하는 전용회선망을 구축, 사업에 들어가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곧 AT&T의 반발을 사 미연방통신위원회(FCC)와 법원을 오가면서 결국 7년간의 소송끝에 겨우 사업을 시작합니다.당시 실제 망 구성은 7개월밖에 안걸렸고 비용도 200만달러만 소요됐지만 실제로 사업하기에는 7년의 소송기간과 1천만달러 이상의 재판비용을 물어야 했던 것이지요.

이때를 기점으로 미국의 통신시장은 경쟁체제의 단추가 채워지기 시작합니다.이후 MCI가 시작한 것은 73년 엑시큐넷서비스입니다.이것은 사실상의 장거리전화서비스로서 당시 독점기업인 AT&T는 극심히 반대하지요.이에 FCC는 AT&T의 견해를 중시, 이를 중지시키지만 곧 이어 열린 법원의 판결은 이를 뒤집어 결국 MCI는 76년 본격적인 장거리서비스를 시작하기에 이릅니다.

한편 이와 함께 MCI는 AT&T의 독점적 지위가 통신시장에서 남용되고 있음을 들어 법무부에 고발하게 되고 결국 74년부터 82년까지 지리한 벨분할을 위한 소송에 들어갑니다.결국 MCI는 원하는 것을 얻게 되고 84년 100년 이상 지켜온 벨시스템은 AT&T라는 장거리전화회사, 팩텔과 나이넥스, 아메리테크, 벨아틀랜틱, 사우스웨스턴벨, 벨사우스, US웨스트 등 7개의 지역전화회사, 루슨트테크놀로지스라는 장비업체로 쪼개지게 됩니다.

투쟁과 소송으로 점철되어온 MCI의 역사는 미국 통신시장내 구조조정의 시발탄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얻어진 벨분할은 전세계 통신시장의 핵분열 뇌관으로 작용하기에 이르릅니다.우리나라를 포함해 영국, 일본, 독일 등도 미국의 통신시장 구조조정을 벤치마킹해 통신분야의 규제완화, 경쟁도입, 국제화의 이슈를 가시권에 들게 했음은 물론입니다.

게다가 이때 얻어진 경쟁가능시장이론(Contestable Market Theory), 자연독점론, 공공요금이론, 기술경제이론 등 각종 정보통신 경제논리는 향후 디지털경제이론의 초석이 되었으며 급기야 WTO체제가 출범하면서 정보통신분야가 세계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등장하게끔 만든 것이지요.

MCI의 운명은 97년 월드컴으로의 인수를 통해 결정됩니다. 당시 이 회사는 미국과 유럽연합(EU)간 통상협상의 일환으로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콤(BT)으로의 인수합병이 추진되고 있었지요. 그러나 갑자기 뛰어든 월드컴이 BT보다 25% 비싼 조건을 제시하면서 결국 월드컴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됩니다.

월드컴의 인터넷 전략도 아주 특기할만 했어요. ISP업체인 유유넷을 인수하고 미국내 가장 훌륭한 시내 광통신망을 가진 MFS를 인수하면서 인터넷 서비스 하부구조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지배하게 되지요.

여기서 눈길을 끄는 회사가 바로 MFS입니다. 이 회사는 전형적인 시내전화 바이패스사업으로 시작한 기업입니다. 장거리전화회사가 자신의 통신서비스를 가입자에게 제공하려면 반드시 시내전화망을 거쳐야 하지요. 즉 데이콤이 장거리전화서비스를 하려면 반드시 한국통신의 시내망을 거치는 것과 동일합니다. 이때 데이콤은 한국통신에게 비싼 시내망접속료를 내야 합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MCI가 아무리 훌륭한 장거리전화망을 가지고 있어도 시내전화회사가 이를 잘 연결해주지 않으면 서비스가 제공될 수 없지요. 시내전화 바이패스사업자란 이 같은 시내전화망을 우회하도록 해주는 별도의 네트워크를 구성, 장거리전화회사에게 새로운 접속의 기회를 주는 기업입니다.

MFS는 주로 뉴욕이나 LA와 같은 대도시에서 별도의 광통신망을 만들어 데이터와 음성서비스를 결합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해서 히트친 기업입니다. 워낙 회선품질이 좋아 기존 벨계열의 시내전화회사와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성공한 것이지요. 월드컴이 이 같은 MFS를 놓칠리 없지요.그는 이를 인수해 여기에 유유넷을 붙혀 미국내 최강의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보면 월드컴은 과거 시내,장거리전화망을 모두 독점한 벨시스템의 복사판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군요.벨시스템을 붕괴시킨 장본인이 결국 지향한 기업모델이 벨시스템이었다니.

경위야 어찌되었든 간에 월드컴의 몰락은 미래지향적 정보통신산업의 큰 축이 무너져버리는 격이 되었습니다.정보통신업계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민호 티지랜드 사장 mino@tg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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