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성]애플 무시하기와 따라잡기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보여주는 혁신의 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추격자의 입장으로서는 사실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다. 그보다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격차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 점에서 오히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수많은 추격자들을 두려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1등을 하기는 쉽지만 지키기는 어렵다는 명제를 애플이라고 영원히 비켜갈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 언론 또한 그렇게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2일(현지시간) 제품 리뷰를 통해 "삼성 갤럭시는 아이폰의 적수가 될 가치가 있다"고 보도했다. 본격적인 의미의 스마트폰 개발에 착수한 뒤 불과 1년만에 강력한 '아이폰 대항마'를 출시할 만큼 우리 기업의 기술력은 간단하지 않다. 휴대폰 시장의 거함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1위 노키아를 턱밑까지 추격했던 저력을 우리 기업은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로 경계해야 할 존재는 애플이라기 보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혁신 방법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범 중국계 기업들이다. 그들은 거의 모든 것을 가졌다. 튼튼한 기초과학기술에서부터 대규모 자본과 저렴한 인건비, 그리고 막대한 시장. 게다가 지금은 혁신의 대가인 애플의 파트너로서 상업화 기술과 디자인에서도 상상을 초월한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쾌속으로 질주 하고 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산은 싸구려의 대명사였다. 상품화 기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변한 중국은 수준 높은 기초 과학기술에 덧붙여 세련된 상품화 기술까지 완비해가고 있다. 전자 분야의 약진은 눈부시다. 주지하듯이 애플의 상품 대부분은 ‘자살 논란’을 불렀던 중국 팍스콘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더 이상 촌스러움은 없다.

아이폰4는 안테나게이트에 휩싸이기는 했지만 마무리 공정을 보면 사실 제품이라기보다 예술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각이 진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앞면 강화유리가 손에 감기는 촉감은 전자기기를 만지는 느낌이 아니다. 그보다 잘 깎아놓은 유리 예술품을 대하는 기분이다. 이음새 없이 마무리한 그 깔끔함도 탄복할만하다. 나는 추후 이 디자인을 모방한 제품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애플의 창의적 발상도 주효했지만 그것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제조라인의 섬세한 장인(匠人) 정신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제조 과정에서 애플의 지도와 감시가 엄격했겠지만 중국 기업은 훌륭히 그 일을 해냈으며 특히 그 노하우가 그대로 중국 기업에 흡수됐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시간이 갈수록 그 노하우는 쌓일 것이고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인의 손재주도 대단하지만 중국인의 그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중국은 이미 짝퉁의 천국 아닌가. 이름 없는 작은 공장에서 보고 베끼는 재주가 그렇게 세계의 눈을 멀게 할 정도인데, 수십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대규모 기업이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해 따라붙는다면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할 지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그들은 지금 애플마저 속으로 비웃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만 기업 HTC는 향후 팍스콘 같은 중국 전자 기업의 이정표가 될 지도 모른다. HTC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름 없던 회사였다. 지금의 팍스콘처럼 해외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위탁 생산해주던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HTC는 여기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자체 브랜드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제품은 빅히트였고, HTC는 지금 스마트폰 업계의 기린아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미국 체인지웨이브리서치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HTC 스마트폰은 미국 시장에서 애플 아이폰(52%)에 이어 선호도 2위(19%)를 달리고 있다. 미국의 강자 모토로라(9%)와 RIM(6%)를 이미 추월한 것이다. 제품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39%)도 애플에 이어 2위다. ‘드로이드 인크레더블’과 ‘에보 4G'로 대표되는 이 회사의 스마트폰이 미국 시장에서는 이미 탄탄하게 뿌리내렸다는 증거이다.

중국에서 ‘제2의 HTC’가 출현하지 말란 법은 없다. 아니 향후 수년 사이에 HTC를 능가할 기업이 나올 가능성이 다분하다. 삼성전자 같은 한국 기업으로서는 애플의 혁신을 뛰어넘으면서도 중국 기업의 지속적인 추격을 뿌리쳐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더욱 분명한 것은 애플을 따라잡지 못해 당하는 손해보다 중국 기업의 추월을 허용함으로써 겪게 될 피해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한국 산업계로서는 그야말로 재앙이다.

/캘리포니아(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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