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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의 엔트로피]지금 대한민국은 저작권 열공중…


지난 9월11일 용산전쟁기념관. 이문세 콘서트가 열렸다. 수천 명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섰다. 입장이 늦어지면서 공연은 예정시간인 8시를 훌쩍 넘어 8시30분에 시작됐다. 기다리는 중에 특이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쟁기념관 곳곳에는 콘서트가 열리는 공연장 안을 볼 수 있는, 높게 설치돼 있는 조형물이 군데군데 있었다. 이 조형물 꼭대기에 몇몇 사람들이 위태위태하게 올라가 공연장 안을 넘겨다 보고 있었다. 불안하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들은 표를 구하지 못해 어깨 너머로 공연을 보기 위한 목적인 것 같았다.

'저 사람들도 저작권법을 어기고 있을까.'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용산전쟁기념관 공연장은 야외 무대였다. 바깥에서도 공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간에 가림막이 설치돼 온전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야외이기 때문에 바깥으로 음악소리가 들릴 수밖에 없다. 높은 조형물 위에서는 공연장 안을 볼 수 있었다.

최근 다섯 살 배기 여자아이가 손담비의 '미쳤어'를 따라 부른 동영상이 네이버에 올라 왔다. 저작권 위반으로 임시조치(블라인드 처리) 당했다. 저작권법이 어디까지인지…. 조형물 위에 불안하게 서 있는 이문세 팬들을 보며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은 지금, 저작권 열공중…

저작권법이 대한민국의 면학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지난 3월부터 대검찰청은 '저작권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저작권 침해 사범 중 전국 검찰청으로부터 의뢰받은 침해자들이 교육받는 것을 조건으로 기소유예해 주는 제도이다.

지난 16일에도 120명의 교육생들이 서울역 앞에 위치한 저작권교육원에 속속 도착했다. 이들은 8시간 동안 올바른 저작물 이용방법, 저작권 바로 알기 등 저작권과 관련된 교육을 변호사, 교수 등으로 부터 받았다.

지금까지 교육받은 인원은 4천783명에 이른다. 저작권 교육을 의뢰받은 수가 8천47명에 이르기 때문에 올해 연말까지 매주 교육이 실시될 전망이다. 꼬박 하루를 교육원에 있으면서 저작권과 관련돼 집중 교육을 받는 셈이다. 저작권 열공(열심히 공부)중이란 말이 적당할 듯 하다.

지금까지 교육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

성별로 보면 남자 73%, 여자가 27%를 차지했다. 연령대를 보면 놀랍다. 기소유예 제도는 말 그대로 초범이나 혹은 교육을 받으면 처벌을 면해주는 조건이지만 이들이 저작권을 위반했다는 점에서는 달라지지 않는다. 자칫했다 전과자 신분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장 많이 저작권을 위반하는 연령층은 20대의 젊은 층이었다. 52%에 이르렀다. 다음으로 ▲30대 25% ▲40대 11% ▲50대 6% ▲10대 4% ▲60대 2% 순으로 나타났다. 10명중 5명 이상은 20대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이들이 저작권을 위반한 콘텐츠는?

인터넷 시대에 맞게 음악과 영화, 드라마 등 영상물이 무려 72%를 차지했다. 위반 콘텐츠를 보면 ▲음악 38% ▲영화, 드라마 등 영상물 34% ▲소설, 교재 11% ▲사진과 미술 저작물 6% ▲게임 2% 등으로 나타났다.

불법 콘텐츠를 이용한 공간은?

블로그와 카페가 45%로 가장 높았다. 교육받는 층이 20대가 절반 이상이라는 통계에서도 보이듯 블로그와 카페에 자신도 모르게 저작권을 침해하는 콘텐츠를 올려놓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P2P와 파일공유 사이트 26% ▲웹하드 21% ▲포털 6% 순이었다.

저작권을 위반해 교육받은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 20대 남성이 블로그와 카페를 통해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불법으로 이용한 경우가 가장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시간의 교육이 끝나면 이들은 교육 이수 소감을 의무적으로 적게 되는데 "평소에 전혀 몰랐던 저작권법을 알게 돼 많은 도움이 됐다" "주입식 교육 뿐만 아니라 질의응답식 시간도 있어 강사에게 물어볼 수 있어 좋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어떤 교육생은 "저작권 위반으로 기소됐다는 검찰청의 통보를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며 "이번 교육을 통해 저작권법을 잘 알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을 받고 자신의 블로그 등에 솔직한 소감을 올린 이들의 반응을 달랐다. 포털 카페나 블로그 등에는 '저작권 교육 후기'에 대한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와 있다.

이들은 "한마디로 인터넷을 하지 말라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며 "저작권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네티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없다는 소리나 다름 없었다"고 일침을 놓았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교육컨설팅팀 한호 팀장은 "저작권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사소한 잘못으로 처벌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쳤어' 동영상이 불러온 공정이용 잣대

다섯 살 아이가 손담비의 '미쳤어'를 따라 불렀다. 아이의 아빠가 이 모습을 촬영해 53초 분량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해당 동영상이 저작권 위반이라며 네이버에 조치를 요구했다.

네이버는 즉각 블라인드 처리(보이지 않게 하는 임시조치)했다. 아이의 아빠는 변호사의 자문을 얻고 "해당 동영상은 공정이용에 해당된다"며 "즉각 복구해 달라"고 네이버에 요구했다.

네이버측은 이에 대해 "업체로서 공정이용의 잣대가 어디까지 인지 알 수 없고 저작권자의 요청이 있어 복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참여연대 등이 네이버를 대상으로 손해 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현재 소송이 진행중이다.

네이버측은 "국내 저작권법은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을 뿐 포괄적인 공정 이용 조항을 갖고 있지 않다"며 "이번 소송 건처럼 저작권의 범위에 대해 혼란스런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번 소송을 통해 공정 이용에 대한 잣대를 가려보자는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박경신 소장(고려대 법대 교수)은 "누가 봐도 해당 동영상은 공정 이용에 해당된다"며 "이를 호소하면서 게시물을 복원시켜 달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거부한 네이버는 분명 책임이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박 소장은 "법원의 판례를 보면 예측가능한 공정 이용의 기준을 누구나 판단할 수 있다"며 "포털이 저작권자의 눈치를 너무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vs 이용자, 철학의 차이

UCC 비즈니스가 성장가도를 달리다 최근들어 주춤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저작권에 있다. 저작 권리자들이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면서 서비스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최근 UCC 사이트들이 저작권자와 합의를 보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저작권자들은 자신의 콘텐츠에 대해 돈을 내고 볼 수 있게끔 하고 이용자가 재가공, 재창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저작권자와 이용자간의 저작권을 바라보는 철학에 그 원인이 있다.

저작권자들은 자신들의 창작물이 무단도용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자 범죄라는 인식이다. 즉 저작권자들은 '적당한 비용'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이용자들은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이용자들은 금전적 보상이나 수익의 기대보다는 자신을 표현하거나, 명성을 얻거나,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또는 단지 즐거움을 위해 창작 하는 경우가 많다.

윤종수 판사는 "디지털 시대에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폐쇄적인 관리보다는 다른 이들의 접근과 활용에 너그러운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현행 저작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은 디지털 시대의 이념을 두고 저작권자와 이용자 사이에 틈이 벌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종오기자 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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