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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릴레이 인터뷰]김준영 엔트리브소프트 사장


안녕하세요, 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 입니다. 복고게임인 아케이드게임과 오락기전문개발업체인 펜타비전 차승희 대표의 게임사업이야기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차승희 사장이 바통을 넘긴 129번째 릴레이인터뷰 주인공 역시 차 사장과 마찬가지로 게임분야에 10년이상 한우물을 판 끝에 성공반열에 오른 엔트리브소프트 김준영(40) 사장입니다.

"게임산업계에 손꼽히는 전문가입니다. 사람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경영인으로 본받을만한 기업가입니다. 숱한 인수합병속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이뤄낸 CEO입니다."

두 사람은 동종업계에 있으며 서로 알게된 사이라고 합니다.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고 자문을 구하는 절친한 파트너 같은 관계라고 합니다.

엔트리브소프트(이하 엔트리브) 김준영 사장의 게임창업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가 어떤 사업역경을 거치며 성공반열에 올랐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강남 테헤란로 역삼역 인근에 위치한 엔트리브 사무실 빌딩입구에는 층별 입주사 이름을 적어놓은 안내판이 명찰처럼 밑에서부터 높다랗게 설치돼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안내판 1층부터 10층까지 모두 똑같은 '엔트리브소프트'란 회사명이 주르륵 적혀있다는 점. 입주 이후 조금씩 늘리다보니,어느덧 직원 360여명의 엔트리브는 이 빌딩 건물 전층을 점령하고 있다.

김 사장은 매우 반듯한 느낌을 준다. 개발자출신답지 않게 커뮤니케이션능력이 매우 뛰어나고,어떤 상황에서도 잘 적응해내는 뛰어난 생존형이다.

불과 창업 6년차임에도 불구하고 김준영은 매우 완숙한 경영능력을 자랑한다.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물론, SK텔레콤 자회사로 편입된후 대기업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360명이 넘는 조직을 탄탄하게 관리하며 움직이게하는 조직관리에 대한 노하우 등 자신감이 넘친다.

그에겐 프로그래머출신, 창업 6년차 벤처기업 CEO수준에서 쉽게 볼수 있는 '우물안 개구리' 같은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창업 6년차면 모든 것을 사장 혼자서 떠맡은채 현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좁은 시야, 여전히 자본시장과는 동떨어서 살아가는 '나홀로 경영'에 한참 심취해있을 법한데, 그는 남다르다. 마치 경영학석사 출신 해외파 같은 느낌을 준다.

김준영은 실제 창업 10년차가 넘는 베테랑 CEO분위기다.

골프캐주얼게임 '팡야'로 유명한 엔트리브는 2003년말, 플레너스에서 분할후 독립한 게임개발사. 현재 SK텔레콤 자회사로, 전세계 30여개 나라에서 팡야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연간 250억원대의 매출규모를 보이고 있는 중견 게임개발사.

◆ 우연히 찾아온 게임

1993년초, 대학졸업을 앞둔 김준영은 학과 사무실게시판에 붙은 채용안내 공고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병역특례혜택에 주문형반도체(ASIC) 설계 엔지니어를 구한다는 채용공고 안내문이 김준영 자신의 인생항로를 결정지을 거라고 그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수출포상까지 받은 잘나가는 회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입사를 결심한다.하지만 그가 연락을 했을때는 이미 채용이 끝난 상황. "이 회사에 꼭 들어가고 싶습니다. 내년 상반기 채용공고때 꼭 연락을 주셨으면 합니다."

내년에도 기회를 주면 면접을 보고싶다는 전자공학도 김준영의 제안에 그 회사 인사담당자는 뜻밖에 임원면접을 제안했다. 1993년초, 우여곡절끝에 입사한 회사가 바로 유명한 '그라비티'의 전신인 '윈디얼'이란 아케이드게임기 제작회사였다.

그라비티는 '라그나로크'란 온라인게임으로, 국내 기업 최초로 나스닥에 직상장해 일약 스타기업으로 떠올랐던 벤처기업으로, 창업자 김정률 회장이 2005년, 일본 소프트뱅크에 회사를 4천억원에 매각, 화제를 뿌렸던 게임회사였다.

당시 윈디얼이란 회사는 아케이드게임기에 들어가는 전자회로기판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전자공학도로서 반도체개발을 꿈꾸던 그였지만, 그는 오락실 게임기용 기판을 만드는 일에 금새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일종의 아케이드게임의 하드웨어 플랫폼을 개발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는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하던 때였거든요. 롬에 게임을 심는 작업인데,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는 그래픽영상과 사운드,게임영상 신호를 롬에 입력한후, CPU 전원이 커자마자 화려한 게임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땐 정말 신기했습니다. 게임프로그래밍까지 하면서 화려한 오락실 게임기가 돌아가는 순간을 맛보면서 개발에 거의 푹빠졌습니다. 회사에서 거의 살다시피했죠."

"정말 그때는 새벽 2시까지 일하고도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다릴만큼 개발에 심취했었습니다.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더라구요."

순식간에 디지털세계로 빠져든 김준영은 불과 3년남짓한 기간동안 아케이드게임의 세계를 완벽하게 섭렵하게 된다.

1994년 당시 회사는 '로직프로'란 아케이드게임을 개발, 일본에 수출하는게 성공한다. 아케이드게임의 본고장인 일본시장에 국산 아케이드게임이 수출된 것은 로직프로가 국내 최초였다.

보드 한장당 60만원을 받고 수출했다. 1997년 여름, 김준영은 퇴사를 결심한다. 이미 아케이드게임과 PC게임은 급격한 쇠퇴기에 접어든 상태였고, 온라인게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였다.

그는 과감하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 중견통신장비회사인 성미전자에 입사한다. 하지만 그는 1년만에 퇴사한다. "다른 분야를 경험하고 싶어 당시 잘나가는 통신장비업종에 취직했는데,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이를통해 오히려 게임이 적성에 맞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개발한 게임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빅히트를 치는 짜릿한 게임의 흥행적 매력을 잊을 수가 없었다. 1999년초,사표를 던진다.

◆ 이원술, 손노리와의 만남

"손노리를 같이 키우시죠. 저는 개발을 맡을 테니, 팀장님이 전체 관리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창업이냐, 아님 손노리 부사장으로 옮기느냐의 기로에서 그는 과감히 손노리행을 결행한다. 김준영과 손노리 이원술 사장과의 인연은 첫직장 윈디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원술이 대학생 신분으로 윈디얼에 아르바이트생으로 합류한 것은 94년. 이원술은 이미 그전에 손노리팀을 만들어 PC패키지게임을 개발, 10만장이상 팔 정도로 잘나가던 게임개발자였다.

하지만 게임을 출시하기가 무섭게 불법복제품이 나도는 통에 패키지게임은 늘개발비조차 건지기 힘든 상황이었다. 게임은 하고싶고,자금은 늘 부족하던 이원술은 윈디얼에 전격 합류하며 둘은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난다.

옛직장에서 자신의 밑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이원술을 사장으로 모셔야하는 상황이었지만, 김준영은 손노리행을 결행한다.

팀에서 법인으로 별도 창업한 손노리의 개발인력이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2000년 6월이었다. 이때부터 김준영의 CEO로서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동시에 격동의 세월을 맞게된다.

2000년말, 김준영과 이원술은 창투사로부터 10억원 규모의 투자유치에 나선다. 그리고 정확히 6개월후인 2001년 6월, 손노리는 당시 벤처신화의 주역으로 떠오르며 승승장구하던 로커스홀딩스(이후 플래너스,CJ인터넷으로 사명변경)사에 전격 합병된다.

"당시 10억원을 투자받았지만, 또 다른 성장동력을 만들지 못하면 금새 어려워질 게 뻔했습니다. 창업초기라 합병은 좋은 기회였죠."

하루아침에 상장사에 합병된 김준영은 이때부터 변화무쌍한 인수합병과 금융기법, 금융투자에 서서히 눈을 뜨게 된다.외부환경은 숨돌릴 틈도없이 돌아갔다.

로커스에 합병된지 불과 5개월만인 2001년 11월, 로커스홀딩스는 넷마블을 전격 인수했다.

팡야, 트릭스터, 그리고 케주얼게임인 카툰에이서, 꾸리꾸리 등이 이때부터 개발돼 2002년 넷마블을 통해 본격 유료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넷마블이 퍼블리싱을 맡으면서 2003년부터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넷마블은 당시 월 40억원규모가 넘는 매출을 올리기 시작했다.

회사를 둘러싼 환경은 6개월이 멀다하고 바뀌기 시작했다. 2002년 봄, 로커스홀딩스와 넷마블이 전격 합병, 회사 이름이 플레너스로 바뀌고, 대주주가 로커스에서 방준혁 넷마블 창업주로 바뀌었다.

김준영의 운명 또한 또다시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 절체절명의 위기, 결단의 순간

방 사장 체제로 바뀌면서 플레너스는 자회사를 하나씩 분리, 매각하는 수순을 밟기 시작한다. 플레너스는 손노리개발팀의 분리를 결정한다. 적자사업을 떼내는 사실상 구조조정이었다.

분리독립은 손노리게임팀, 그리고 김준영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사실상 회사에서 분리되면 순식간에 숨통이 끊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분할이 결정된 2003년 4월, 김준영은 이때부터 피말리는 100일을 보낸다. 매일하루 담배 3갑씩 필만큼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을 되돌릴수는 없었다. 그해 8월, 회사는 이사회를 통해 개발팀을 손노리와 엔트리브 두 회사로 분할키로 전격 결정했다.

김준영은 어쩔수 없이 직원 55명을 책임지기로 하고, 임원과 함께 지분 54%를 인수한다. 인수자금은 로커스홀딩스 주식을 매각해 몽땅 털어넣었다.

2003년 12월,김준영은 어쩔수 없이 엔트리브소프트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남은 자금은 한달 운영비도 안되는 1억원이 전부였다.

한달 회사운영비만 1억5천만원이 들어가는 구조였지만, 당시 엔트리브는 상용화중인 게임이 하나도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분할전에 이미 트릭스터를 70만달러를 받고 대만에 수출해버린 상태였다. 매우 불리한 조건에 수출한 트릭스터를 대만은 물론, 일본, 중국 3개국 현지 상용서비스를 신생법인 엔트리브에서 다 해줘야하는 상황에 처했던 것.

수출대금은 전 회사에서 이미 받아 챙기고, 이후 상용서비스를 엔트리브가 책임져야하는 기막힌 상황앞에 김준영은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수없는 고민과 번민을 거듭하던 김준영. 그는 놀라운 해결책을 찾아낸다. 그가 훗날 CEO로서 성공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이때의 눈부신 문제해결능력에서 출발한다.

그가 내놓은 방법은 프로젝트파이낸싱방식으로 회사에 투자한 창투사 주주에게 수출대금중 배당형태로 챙긴 금액을 다시 토해내라고 요청한 것.

"투자사에서 정말 황당해하더라구요. PF방식으로 투자한후 가져간 수익금을 다시 되돌려달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겠죠. 하지만 저는 그것말고는 달리 운영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무조건 토해내라고 밀어부쳤죠."

수익금반환대신에 결국 7억원 규모를 창투사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차입하는 데극적으로 합의한다.

두번째 김준영이 준비한 깜짝 카드는 대만 파트너사를 설득, 수출계약을 파기, 판권을 해지하는 것이었다. 초기 최소개런티 금액이 워낙 큰 불합리한 수출계약을 도저히 이행할수 없었다. 김준영은 그야말로 ‘배짜라식’협상에 나섰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그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놀랍게도 받아들여졌다. 김준영은 70만달러를 대만회사에 상환한후, 계약을 해지하는데 성공한다. 믿기어려운 반전 그 자체다.

그의 기막한 문제해결능력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두가지 난제를 끝내 해결한다. 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김준영의 사업가적 기질은 이때부터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 끝없는 변신, '위기를 기회로'

해외판권과 4,5개월간의 운영자금문제를 해결한 김준영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게임상용화에 승부를 건다.

2004년초,한빛소프트와 퍼블리싱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해 4월, 그 유명한 골프캐주얼게임 '팡야' 오픈베타서비스에 나선다.

여기서 잠깐 골프게임 '팡야'의 탄생 비밀을 알아보자.

엔트리브가 게임전문 개발사로 자리잡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캐주얼 골프게임 '팡야'의 탄생 역시 김 사장의 사업가적 감각에서 시작된다.

2002년 당시, 무슨게임을 개발할까 고민하던 김준영은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것을 TV중계로 접하면서 골프룰이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특히 소니, EA 사의 골프게임이 모두 PC패키지 시뮬레이션게임으로 골프를 치는 골퍼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뮬레이션 이미지가 나지 않도록 캐릭터를 귀엽고, 즐겁게 플레이할수 있도록 기획했죠.심지어 게임이름에 골프란 말도 뺐어요."

2년여간의 개발기간을 거쳐 결국 2004년 6월 상용서비스를 시작했고, 그게 바로 엔트리브의 첫 상용게임이 된 것이다.

2004년 10월 아이템유료화이후 동접자수가 급증, 월 3억5천만원대의 매출을 기록하며 대박행진을 시작했다. 그 해말인 12월, 엔트리브는 순식간에 월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며 서서히 안정 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한다.

팡야는 다음해 동접자수가 5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몰이에 성공하면서 급기야 월매출 10억원을 기록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2004년 30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2005년 70억원, 2006년 105억원, 2007년에는 152억원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간다.

지난해에는 200억원, 올해 역시 250억원대의 안정적인 매출을 낙관할만큼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신규 게임개발을 중단하고 해외사업에 집중한 것도 주효했다.

그는 사업리스크를 감안, 무조건 해외에서 로열티를 받는 구조를 만드는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해외수출에 모든 것을 걸었다. 30대 중반 김준영의 놀라운 사업감각이었다.

2004년 1월, 대만에 이어 4월에는 팡야의 일본 수출에 성공한다. 6월 중국, 11월 태국과도 수출계약을 맺었다. 이어 2004년 11월 일본에서 팡야 정식서비스를 개시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 2월 대만,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정식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어 브라질, 미국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팡야와 트릭스터의 해외 상용서비스 지역은 2007년 5월 유럽 32개국에서 정식서비스를 시작하며 무려 44개국으로 늘어났다.

특히 팡야에 대한 일본유저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본은 해외 전체매출의 70%를 차지할만큼 독보적이다.

전세계 44개국 게임마니아들이 ‘팡야’에 열광하는 것은 게임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특히 섬세한 캐릭터에 대한 일본 게이머들의 반응은 '중독' 수준이었다.

팡야가 4년넘게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은 PSP 등 포터블기기에도 적절히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닌텐도의 '위' 포터블 게임기는 물론, 모바일게임, 플레이스테이션 등 다양한 플랫폼용으로도 팡야가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게임은 끝없는 업데이트를 통해 계속해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그는 콘텐츠만 좋으면 라이프사이클은 4,5년이상 길게 갈수 있다고 장담한다.

◆ 김준영의 성공론

엔트리브는 플레너스에서 분리독립한지 1년만에 2005년 1월, 전지현소속사로 유명한 사이더스HQ(IHQ)와 주식스와핑을 통해 지분 51%를 넘겨주며 IHQ 계열사로 편입된다.

종합엔터테인먼트사업을 추구하는 사이더스HQ와의 사업적 시너지를 위해 전격 합의했다. 이미 로커스홀딩스시절 인연을 맺으며 쌓은 양사 경영진간의 두터운 신뢰덕에 두 회사는 쉽게 물리적 결합에 성공할수 있었다. 홀로서기 1년만이었다.

이후 2006년, SK텔레콤이 사이더스HQ를 전격 인수하게 되고, 2007년,SK텔레콤은 엔트리브에 331억원을 투자, 엔트리브를 전격 인수한다.

김준영은 창업 4년만에 SK텔레콤과의 빅딜에 성공한다. 놀라운 사업수완이다. 그는 이를 통해 엔트리브를 직원 360명, 연매출 250억원규모의 중견 게임퍼블리싱 전문회사로 키워내는데 성공한다.

엔트리브는 현재 블랙샷 등 퍼블리싱사업은 물론 자체 5개 게임을 개발중이다.

게임분야 15년차 김준영의 성공론이 궁금하다. "절박한 상황에서 집중해야 합니다. 뒤로 물러설수없는 절벽위에서 떨어지지 않기위해 집중하는 거죠."

문제는 야성이란다. "벤처기업은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1차 성공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성공이후 야성을 잃어버리면서 도퇴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리더의 열려있는 '오픈마인드'를 두번째 성공요소로 꼽는다. "리더는 스스로 비울줄 알아야한다고 봅니다.열린 인사이트(insight)가 중요합니다."

다양한 기업과의 합병과 분리,투자유치 등 비즈니스파트너쉽에 대한 남다른 그의 감각을 들어보자. "특정기업과 파트너십을 갖기위해서는 무엇보다 CEO간의 신뢰가 중요합니다."

김준영의 꿈은 3년내 5위권 게임포털을 만드는 것이다. 올해 오픈할 SKT의 게임포털 '짜릿(가칭)'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다.

게임개발사로서 '팡야'를 성공시킨 김준영은 이제 퍼블리셔로서의 성공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야심차게 퍼블리싱한 족구게임 ‘공박’의 참패를 딛고 올해 클로즈베타서비스예정인 말(馬)을 소재로 한 '프로젝트 앨리스'를 통해 다시한번 비상을 준비중이다.

엔트리브 김준영은 개발자출신 CEO들이 어떻게 해야 회사를 키우며, 성공의 반열에 오를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성공케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그의 메이저 게임포털 도전기에 게임업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준영 사장은 인터뷰후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라고 적힌 한문 문구를 내놓았습니다. 코팅처리해 아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뜻의 이 문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동굴속에서 잠결에 목이 말라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큰 깨달음은 얻은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문 문구는 2004년 힘든 어느날,아침 출근길에 얘기를 나누던 택시기사가 내릴 때 즉석에서 써준 글귀라고 합니다. 한문서체를 전문적으로 써왔다는 택시기사가 써준것인데, 너무나 자신이 해야할 상황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해 그이후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직원 여러명에게도 빌려준바 있다고 하네요.

코팅처리해 간직하며 어려울때마다 꺼내 본다고 합니다.

/김광일 객원칼럼니스트(GCM 대표이사) goldpar@gc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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