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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실학과 21세기 디지털이 만나면…


 

200년 전 조선 후기의 시대적 코드였던 '실학'과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비교 분석하는 이색 컨퍼런스가 열려 관심을 끌었다.

경기도와 사단법인 신규장각이 17일 오전 코엑스에서 '디지털과 실학의 만남'이란 주제로 개최한 컨퍼런스가 그것. 이날 컨퍼런스는 커뮤니티, 마니아, 한류 등 세 가지 측면에서 18세기와 오늘을 견주는 방식이었다.

짐작대로 시대의 간극은 부정할 수 없었으며, 주제 소화도 녹록치 않았다.

인터넷 세상의 '유식대장'과 디시인사이드가, 사회를 맡은 노교수에게 '디자인 사이트'로 읽혔듯, 200년 전 '실학'과 21세기의 '디지털'이 그리 친숙한 대상일 수는 없었던 것.

그러나 '도대체 왜, 지금 우리가 이러한가?'에 대한 자문의 답을 역사 속에서 탐구해보는 작업은, 참신하고 의미심장했다.

컨퍼런스의 첫번째 주제인 '커뮤니티'에 대한 발표는 한국학중앙연구원 박현모 교수가 맡았다.

박 교수는 "18세기 실학시대는 다양한 지식커뮤니티라는 인프라를 바탕으로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규장각이라는 엘리트들의 지식커뮤니티를 구성해 정학(正學)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국왕 중심 정치를 실현하려했던 정조의 통치방식은 당대 지식인들의 반발을 샀으며, 환경 변화에 따른 사회 구성원들의 역할 재설정과 토론의 장을 막는 요인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18세기와 현재의 디지털 세상은, 여러 지식커뮤니티들이 문예부흥을 낳는 기초를 쌓고, 이를 통해 각 분야 전문가가 등장하며 풍부한 문화콘텐츠가 생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드러내며, 현재의 한류 역시 이런 구조속에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토론 패널로 참석한 유현오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과거 규장각이라는 형태의 정부 개입이 본 의도와 달리 실학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 부분이 있었다"며 "커뮤니티의 조직과 활동은 민간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도 "시장이 스스로 자율 조정하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돌려줬다.

두번째 주제인 '마니아'에 대한 발표는, 명지대학교 안대회 교수가 진행했다. 안 교수는 "탈 성리학 움직임이 일면서 마니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당대의 문인들이 글을 통해 이를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18세기 마니아 문화가 오늘에 전해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요절한 독서광 남극관과 이조판서의 아들로 세간의 눈초리를 개의치 않고, 고서화 수집에 몰두했던 김광수 등 당대의 마니아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당시 마니아들은 골동품, 고서화, 도서 등을 수집하는 '수집벽'을 지닌 이들과 전문 기능을 가진 예술가, 그리고 나만의 취미에 목숨을 걸었던 세 부류로 대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마니아들이 새로운 학문과 직업을 만들어냈으며, 반상의 구분 없이 다양한 계층에서 마니아들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 마니아들을 통해 열광하는 주제, 즉 '벽(癖)'의 주제가 모아졌고, 집단이 형성되었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의 발표 이후 의견을 전한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대표는 "18세기와 디사인사이드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의아했으나, 자신이 열광하는 분야를 드러내고, 집단을 형성하는 등 당대 마니아들의 모습이 '폐인'이라 불리는 현재의 마니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다만 타 마니아 집단을 격하하고 배척함으로써 스스로의 우월과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일부의 왜곡된 인터넷 문화가, 우리 민족의 뿌리깊은 배타성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고, 우려되기도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어 토론에 나선 인터넷기업협회 허진호 회장은 "21세기의 우리가 18세기 마니아를 재조명하는 이유는, 이것을 현 사회에서 어떤 선순환 고리의 단초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라며 "발상의 전환과 마니아들이 내놓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꺼이 주류 사회에 편입시킬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허 회장은 최근 세계적인 인터넷 상거래 업체 이베이에 인수된 다국적 인터넷 전화업체 '스카이프'를 예로 들며, "이베이 측은, 저작권 침해 문제 등으로 지탄받았던 P2P업체 카자의 창립자 니클라스 젠스트롬이 만든 스카이프를 조건 없이 4조원에 사들였다"며 "이런 거래가 가능했던 것은, 스카이프 창립자의 발상의 전환과 함께 비주류의 튀는 아이디어를 가능성으로 인정하고, 주류 시스템에 기꺼이 편입을 허용하는 사회 환경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한류'를 주제로 진행된 마지막 소회의에서 발표한 경희대학교 이동수 교수는 "한류에 대한 과대해석과 평가절하 모두 옳지 않다"며 "서구문화와 아시아적 전통의 세련된 조화, 즉 총체성과 한국적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타 문화권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소통성이 아시아를 흐르는 한류의 원천"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18세기에는 청과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조합하되, 우리가 주체가 되어 '실학'으로 재가공해 낸 반면, 현재의 한류는 한국이 아니라, 수용국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에 나선 우중구 디지털웨이 대표는 "드라마로 대표되는 문화 한류의 흐름에, 디지털 기기 수출 신장 등 각 분야 한류를 뭉뚱그려 수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국의 디지털 기기가 세계 시장에서 각광받는, '디지털 한류'는 한국인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그에 소요되는 기기에 세계인들이 매력을 느끼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박연미기자 chang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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