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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法] 강제 키스 피해자가 자른 우리사회의 독설


사례 1. 1964년 5월 6일 20:00경.

당시 18살이었던 최 할머니는 좁은 골목길에서 자신을 넘어뜨리며 성폭행하려던 가해자가 강제로 키스를 하자 이에 저항하여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다. 다행히 더 이상 성폭행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가해자의 혀는 1.5cm 잘려나갔고 오히려 최 할머니가 중상해의 피의자가 되어 구속 수사까지 받았다. 최 할머니는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 할머니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사례 2. 1988년 2월 26일 01:10경.

당시 32살이었던 피해자는 느닷없이 달려든 가해자들에게 붙잡혀 어두운 골목길로 이끌려 갔다. 이후 피해자가 담벽에 기대어 주저앉자 피해자의 오른팔을 잡고 있던 가해자 중 1인은 피해자의 음부를 만지며 반항하는 피해자의 옆구리를 무릎으로 차고 억지로 키스를 하였다. 이에 피해자는 반항하며 엉겁결에 혀를 깨물어 가해자의 혀를 잘랐다. 이후 피해자 역시 가해자 1인의 혀 절단에 대한 범죄혐의로 공소가 제기되었으나, 피해자의 주장대로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례 3. 2013년 6월 04:00 경.

당시 23살 피해자는 술에 만취하여 술집 인근 주차장에 쓰러졌고 이를 지켜본 지인인 가해자는 부축을 가장하여 피해자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였다. 피해자는 이를 피하기 위해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고 가해자의 혀는 2cm 잘려나갔다. 이후 피해자 역시 가해자의 중상해 결과에 대해 수사와 재판을 받았고 동일하게 자신의 정당방위를 주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사례 4. 2020년 7월 18일 밤.

당시 20대 대학생이었던 피해자는 술에 취한 상태였고 이를 발견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드라이브를 가자는 제안을 했다. 이에 피해자는 가해자의 차량 조수석에 탑승하였는데 피해자가 취기를 못 이겨 잠이든 사이 가해자는 피해자를 청테이프로 묶고 강제로 키스를 하였다. 이에 피해자는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고 가해자의 혀는 3cm 잘려나갔다. 이후 피해자 역시 중상해로 수사를 받았으나 이 사건은 경찰 수사단계에서 피해자의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불기소의견으로 송치되었다.

위 네 가지 사례들은 모두 피해자가 가해자의 성폭력 범죄에 수반하는 혹은 그 자체가 강제 추행 행위인 ‘강제 키스’를 대항하기 위해 가해자의 혀를 절단했다는 점, 그리고 그 이유로 피해자가 수사 또는 판결을 받았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그 과정과 결과, 이에 따른 여론의 행방과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각기 달랐다.

<사례 1>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언론은 ‘키스 한 번에 벙어리’, ‘혀 자른 키스’등의 자극적인 타이틀로 오히려 피해자 여성의 행실을 지적하고 비난하는 뉘앙스의 독설같은 기사들을 쏟아냈다. 재판부 역시 “피고에게 호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 “피고와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는가” 되묻기도 하여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극히 남성 편향적 시각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언론과 법원의 모습은 1960년대 여성의 지위와 사회적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나 <사례 2>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언론은 더이상 20년전과 같은 기사를 쏟아내지 않았고 재판부의 시각 역시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각은 고등법원의 판결문상 “피고인 1(피해자)이 당시 술을 먹었다거나 식당을 경영한다거나 밤늦게 혼자 다녔다거나 하는 등의 사정이 정당방위의 성립을 저해하지 않음은 물론이다”는 문구로 남성 중심적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여 희석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다시 20여년이 지난 <사례 3>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피해자가 남성인 관계로 오히려 역차별의 문제가 제기되었을 뿐 더이상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 남성 중심적 사고는 이슈거리 조차 되지 못했고 <사례 4>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증거와 정당방위에 대한 수사기관, 법원의 해석만이 피해자의 행위 평가의 잣대가 되었다. 더이상 여성의 행실을 문제 삼는 이는 없었다.

2021년 2월 18일, 사례 1. 의 재심

<사례 1> 의 피해자인 최 할머니가 자신의 행동이 정당방위임을 인정해 달라며 제기한 재심 청구의 결정이 있었고 결과는 기각이었다. 기각의 이유는 재심의 경우 법률의 해석이나 적용의 오류를 재심사유로 삼지 않으므로 정당방위에 대한 해석 적용의 문제는 재심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판결문 말미에 “재판부 법관들은 청구인의 재심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최씨의 용기와 외침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공동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커다란 울림과 영감을 줄 수 있도록 성별이 어떠하든 모두가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선언한다” 판시하여 이례적으로 해명문을 덧붙였음은 물론 남녀의 성별은 더 이상 사람의 가치를 규정하는 잣대가 아님을 명시했다.

위 사례들과 비슷한 사건들은 앞으로도 계속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정당방위 성립의 문제는 성별의 차이와 여성의 행실이 아닌 그때마다 밝혀진 사실관계에 따라 검토될 것이다.

비록, 피해자 최 할머니의 재심결정은 기각되었지만 1964년 5월 6일 그날 피해자가 자른 혀는 성폭력 가해자의 혀뿐만이 아니라 불평등을 당연시하고 오히려 피해 여성의 행실을 지적한 우리사회의 독설(毒舌)은 아니었을까.

/이원우 변호사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원우 변호사는?

충남 인생이모작지원센터 정책자문위원으로 법률사무소 삼흥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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