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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누구를 위한 유통법 개정안 인가


[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 한 해 어려운 시기를 보낸 유통업계에 더욱 큰 시련이 닥쳐오고 있다. 대형마트 등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돼 왔던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의 개정 및 적용범위 확대가 예정돼 있어서다.

최근 국회는 백화점, 복합쇼핑몰, 이커머스, 식자재마트 등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규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발의된 법안들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이들 업계에도 '의무휴업일' 등으로 대표되는 규제가 적용되게 된다. 이에 따르면 쿠팡, 배달의 민족 등 플랫폼들도 특정 일자에는 로켓배송을 비롯한 서비스들을 제공할 수 없게 된다.

국회는 이 같은 규제를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및 전통시장을 살려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업계는 유통법이 '발전'이 아닌 '퇴보'의 길을 가고 있다고 반론한다. 시장이 급변하는 가운데 난립하는 시대착오적 규제는 결국 양측의 '공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진=아이뉴스24 DB]
[사진=아이뉴스24 DB]

국민들은 업계의 주장에 무게를 싣는 모양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시장조사업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발표한 '유통규제 관련 소비자 인식'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8.3%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를 반대했다. 또 대형마트에 못 갈 경우 전통시장을 방문했다는 소비자 응답률은 8.3%에 그쳤다.

대기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전경련이 조사한 만큼 이는 유통업계에 편향적인 조사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유통법을 통해 '편의'를 느끼기보다는 '불편'을 느끼는 국민이 보다 많다는 것이다. 또 시장 급변 속에서도 살아남은 전통시장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유통법이 전통시장 살리기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다.

현재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젊은 층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잡은 전통시장은 모두 공통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시장에서만 즐길 수 있는 분위기와 먹거리 등을 자체 콘텐츠 삼아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일부 전통시장에는 신세계의 '노브랜드'가 입점해 젊은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돌리는 등 '상생'의 모범 사례를 창출해내는 모습도 이어지고 있다.

이커머스 플랫폼은 최근 우수 소상공인들의 '등용문'으로 자리잡으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고 있다. 플랫폼 역시 이들의 가치를 인식하고 우수한 소상공인 셀러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아직 갑을관계 등 여러 부분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으나, 이는 영업을 강제로 쉬게 하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 같은 '성공 사례'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아이템'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유통법의 보호 아래 생명을 연장하기보다 스스로 제시할 수 있는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며 일어섰다. 이 과정에서 유통법이 한 역할은 미미하거나 없었다. 결국 유통법은 정치권이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며 시장에 들이밀고 있는 '무딘 메스'이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의 '프로파간다'에 불과한 셈이다.

공룡 대기업의 시장 진출에 따른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은 당연히 법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유통법은 이 같은 역할보다는 시장 전체의 성장을 억제하는 악법으로 변화하고 있다. '백화점을 못 가게 하면 전통시장에 가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이 골자를 이루고 있는 법안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각 업계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담은 방향으로 유통업계에 접근해야 한다. 규제를 통해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을 보호하려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새로운 산업이 떠오를 때마다 또 다시 규제하는 것 외의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서비스들의 몰락이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국민이 누릴 수 있는 편의가 저해되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물론 이는 규제를 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다양한 산업들이 유통업계를 이루고 있는 만큼 규제하는 것에 비해 훨씬 긴 연구 기간이 필요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사회 전반에서 논쟁도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지혜롭게 풀어나가는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정부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편의'를 위해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정부가 되지 않길 바란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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