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절필 4년 값진 휴식기…작고 느린 가치에 관심”


신작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출간

안도현 시인. [창비]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좀 더 작고 느린 것의 가치를 시로 써보는 것도 중요하단 생각을 합니다.”

8년 만에 신작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를 펴낸 안도현 시인은 22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30여 년간 시를 써오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그는 “20대 초반부터 시를 쓰면서 스스로 세상에 대해서 바라는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며 “혼자 조바심내고 시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시간이 길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80년대 시를 쓰는 동안 민주화·통일·노동해방 등의 개념이 머릿속에 있었다”며 “시인으로서 세상의 큰 움직임들을 만들어가야 된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22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신작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안도현 시인과 진행을 맡은 유병록 시인이 환하게 웃고 있다. [창비]

안 시인은 “그 열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라며 “시간을 살아보니까 시가 해야 될 일은 작은 것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더라”고 강조했다.

또 “4년 넘게 시를 쓰지 않고 휴식시간을 보내니까 시에 대해서 욕심도 덜 부리게 되고 시 비슷한 게 나한테 오면 뭐든지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2013년 절필을 선언했던 안 시인은 2017년 월간 ‘시인동네’ 5월호에 신작시 ‘그릇’과 ‘뒤척인다’를 발표하며 창작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20대 땐 불의한 권력에 시로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박근혜 정부 땐 시를 포기함으로써 맞서는 자세를 보여주고자 몇 년 동안 시를 쓰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괜히 혼자 오기부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뭔가 달라진 것을 보여줘야 되는데’ 이런 부담감도 굉장히 많았다”며 “다행히 그 4년 동안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돼서 좋았다”고 소회를 보탰다.

22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신작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안도현 시인. [창비]

안 시인은 “코로나19 상황이 끝나지 않은 때 시집을 낸다는 게 약간은 망설여지기도 했는데 첫 시집 내는 마음으로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출간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번 시집에 식물에 관한 짧은 시들을 모아서 연작시처럼 쓴 ‘식물도감’이 있다”며 “그 중에서 거의 시 한편이라고 할 수 있는 한 문장을 제목으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변산반도에 있는 한 펜션에 갔을 때 능소화가 2층 창가까지 올라와서 꽃이 핀 걸 봤다”며 “내가 마치 작은 악기 하나를 창가에 걸어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제목에 대해 부연했다.

안 시인은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 특히 식물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그래서 그 시를 쓰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또 “시간이 갈수록 식물이 사람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람보다 시간을 빨리 알아채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 같다, 때로는 식물에 영혼이 있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식물도감’에 대해 묻자 그는 “갈수록 시인이 지향하는 의식이나 내용보다 형식에 매료돼보라고 얘기를 하게 된다”며 “특히 짧은시 형식이 우리한테 주는 장점들이 있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시대는 더욱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첫 번째는 5줄 이내 짧은시를 여러 편 써보고 싶었다, 그 대상으로는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식물들”이라며 “식물에 대한 느낌과 내 체험 등을 시라는 이름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22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신작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안도현 시인. [창비]

시집에는 고모들의 삶을 담은 ‘고모’와 어머니의 삶을 정리한 ‘임홍교 여사 약전’ 등도 있다. 여성 가족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에 대해 안 시인은 “어떻게 보면 비시적인 것을 시적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한데 당분간 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평전이나 전기의 뒤에 연도별로 일생을 정리해놓은 게 본문보다 더 재밌을 때가 있다”며 “어머니 칠순 때 형제들끼리 어머니가 태어났을 때부터 살아오신 길을 최대한 조사를 해서 기록해보자고 한 적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써놓고 보니까 이 속에 시적인 것이 있더라”며 “평범하게 살아온 우리 어머니나 고모 같은 분들의 삶속에 오히려 수사보다 더한 시적인 게 들어있지 않나 싶었다”고 말했다.

또 “보통 시라고 하면 지어내고 꾸며내고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데 이 세상을 오랫동안 살아온 분들의 삶 자체, 팩트 자체가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안 시인은 지난 2월 40여년 간 거주하던 전북 전주시를 떠나 고향인 경북 예천군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의 활동을 묻는 질문에 그는 “경제적·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이라 더 알리기 위해서 ‘예천산천’이라는 개간잡지를 하나 만들었다”며 “일주일에 한번 고등학교에 나가서 문예반 선생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최근에 많이 들어오는 말 중에 하나가 겸손”이라며 “사람과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동·식물을 만날 때도 좀 더 겸손하게 봐야되겠단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이어 “강이나 바다 앞에서도 인간으로서 겸손하게 대해야되겠단 생각도 많이 한다”며 “좀 더 겸손하고, 좀 더 낮게 조용하게 살아야겠다”고 강조했다.

박은희 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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