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문체부의 의지가 필요하다

e스포츠 불공정 계약 논란, 정부 역할 필요


[아이뉴스24 김나리 기자] "해당 리그는 민간에서 운영하는 대회로, 우리 부는 민간대회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조사 권한이 없어 요청하신 진상조사, 실태조사 등을 실시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e스포츠 업계에서 불거진 미성년 선수 불공정 계약 논란과 관련한 국회의 실태조사 요구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e스포츠 담당자가 내놓은 답변이다.

현재 한국 e스포츠 업계는 불공정 계약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종목 프로게이머로 활동 중인 '카나비' 서진혁 선수가 해외로 임대·이적하는 과정에서 소속 구단 대표의 협박을 받아 부당 계약을 맺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게 발단이 됐다.

이 과정에서 해당 선수와 구단 간 계약서에 불공정 조항들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 등이 드러나며 논란이 확산됐다. 이에 더해 한국e스포츠협회가 제공했던 표준계약서 자체가 불공정 계약서였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파장은 더 커진 상황이다.

e스포츠 업계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그간 알려지지 않았을 뿐 수많은 카나비가 곳곳에 있어 왔다는 게 업게 얘기다. e스포츠 선수들의 불공정 계약 병폐는 LoL 리그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e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 제7조 [출처=e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 캡처]

그러나 문체부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권한이 없다'며 지금까지도 실태조사 착수에 손을 놓고 있다. 카나비 선수 건에 대한 해당 기관의 자체 조사 결과 등을 고려해 향후 e스포츠 선수의 권익 보호 등을 위한 정책적 대안 마련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인 게 문체부가 내놓은 답변의 전부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과 이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은 모두 문체부가 관련 정책 수립 등을 위해 실태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문체부가 이 같은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결국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잘 모르거나, 개선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전문가들 역시 문체부의 태도가 소극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행법에 문체부가 실태조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충분한데도 권한이 없다며 발을 빼는 것은 너무 안일한 대응이라는 비판이다.

실제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한국법조인협회 e스포츠연구회 소속 윤현석 변호사는 "현행법에 따라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게 충분히 가능한데도 문체부는 지금까지 관련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다"며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문체부의 의지가 지나치게 소극적인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한 국회 관계자도 "관련 법 조항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며 "현행법을 토대로 관련 실태조사에 착수할 수 있지만, 문체부가 의지가 없어 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할듯하다"고 일갈했다.

업계 내 불공정 계약 문제가 심각한데도 주무부처가 피해 현황 및 규모를 파악하고 제도 개선 방법 등을 모색하기는커녕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이 동네 PC방을 시작으로 20여 년 전 태동시킨 e스포츠는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문체부 장관 및 업계 관계자들과 해외 순방에서 e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정도로 위상도 확대됐다. 하지만 국내 e스포츠 업계의 실상과 주무부처의 인식 수준이 여전히 20년 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과 e스포츠 선수 표준계약서법을 발의한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은 문체부 등이 참석하는 'e스포츠 제도 개선 방안 마련 토론회'를 오는 9일 예고한 상태다.

자리는 마련됐고 이제 주무부처의 의지만 남았다. 실태조사가 선행돼 업계 피해 현황이 파악돼야 제대로 된 대책도 마련될 수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해야 한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달라진 문체부의 입장을 들을 수 있길 기대한다.

김나리기자 lor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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