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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양심 버리고 박수 받을 생각 했다니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한 연극인의 비도덕적·이기적 행동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국내 최대 연극축제가 시작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성폭력으로 고발된 미투 파문의 당사자가 이름을 바꿔 대한민국연극제에 작품을 낸 사실이 개막 이틀 전에 발각된 것이다. 유명 극작가인 그는 김지훤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해 충북대표 극단 시민극장의 ‘은밀한 제안’에 참여했다.

‘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 in 서울’의 집행위원회를 맡고 있는 서울연극협회는 지난 3일 “미투 건으로 지난해 3월 기한부 권리정지된 작가가 개명된 이름을 사용해 다른 지역에 출품한 사실을 5월 30일에 인지했다”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아울러 “미투 작가의 작품으로 출전한 본선팀의 참가를 반대하며 본선경연의 자격박탈을 조직위원회에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극제의 집행위원장인 오태근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이 개막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블랙리스트와 미투 등에 소리 내지 못하고 반목한 점을 깊이 반성한다”며 고개 숙인 게 무색해진 상황이다. “연극계가 그렇지 뭐”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쉽게쉽게 넘어간 일들이 비일비재 했잖아” “얼마나 우스웠으면 반성은커녕 이 같은 꼼수로 뻔뻔하게 큰 대회에 출품할 생각을 했을까” 등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한국연극협회는 개막 당일인 지난 1일 이사회를 열어 해당 작가를 제명하고 충북대표 공연단체의 공연을 취소키로 결정했다. 한국연극협회와 대한민국연극제 조직위에 따르면 극단 시민극장 대표는 공연준비 과정에 개명한 극작가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한국연극협회는 지난 7일 입장문에서 “이번 사안을 윤리성과 도덕성의 기준으로 바라보고 해당 극작가가 미투 사건이 한국사회와 연극계에 던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투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관행처럼 이어져온 문제에 대한 성찰과 각성의 결과로 공연 불허 결정을 한 것”이라며 “연극이 마땅히 가져야할 윤리가치의 엄중함을 직시하고 모든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충북연극협회는 “조직위의 출품 불허 처분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조직위의 미숙한 행정 진행에 억울함도 느꼈다”며 “하지만 사전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작품을 엄격히 선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결과를 받아들였다.

이 얼마나 큰 민폐인가. 이름을 바꿔 자신의 작품을 들이민 작가와 그의 작품이 욕심나 그에게 장을 마련해준 극단 대표. 이들은 당연히 걸리지 않을 거라고 예측했을 테고, 혹시나 발각되는 상황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그로 인해 기회를 박탈당한 충북지역 한 팀을 비롯해 피해를 입을 연극제 관계자·참여자, 이 행사를 가치있게 바라보는 많은 연극인과 연극을 사랑하는 대중을 고려했다면 그런 뻔뻔함으로 이 안에서 박수 받을 생각을 감히 할 수 있었을까.

한국연극협회는 “극단·단원·지역의 입장을 모두 고려한 원만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했으나 창작의 시발점에서 마지막 제동되기까지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아 읍참마속의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씁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단호한 자세로 대처하며 깨어있는 연극정신으로 한국연극을 이어가겠다”는 협회의 각오에 공연 팬으로서 지지를 표한다.

박은희 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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