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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게이트? 청와대 '서별관 회의'를 아시나요


야권 국채발행 靑 개입 '재정조작' 연일 공세, 전문가들 "도 넘은 선동"

[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성 주장을 둘러싼 정치권의 움직임이 점입가경이다. 당사자는 극단적 선택을 암시한 유서 소동 이후 입원 치료 중이지만, 정치권은 연일 신 전 사무관을 앞세워 청와대를 공격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신 전 사무관의 유튜브 폭로와 기자회견을 두고 "80년대 민주화 이후 최대 양심선언"이라 부르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아예 1970년대 미국 닉슨 대통령을 퇴진시킨 역사적 사건인 '워터게이트'에 비유했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까지 신 전 사무관을 '공익 제보자'로 추켜세우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집을 통한 청문회를 요청하고 있다.

신 전 사무관은 문재인 정부의 첫 해인 2017년 11월 국채발행 논의 과정에서 청와대의 '강압적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나아가 고의적으로 국가채무비율을 부풀려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부각시키려는 '정치적 꼼수'를 의도했다고도 언급했다. 야권이 이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정부가 '재정조작'을 시도했다고 공세를 펴지만 전문가들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당연히 일어나는 일을 왜곡한, 도를 넘은 정치적 선동"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채발행 결정 청와대는 개입하면 안 된다?

우선 신 전 사무관의 국채발행 관련 폭로 내용을 살펴보자. 당시 14조원의 추가세수가 걷힌 상황에서 1조원 규모의 국채매입 계획이 취소되고 4조원 규모의 국채 추가발행이 논의됐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국채발행 의견을 제시한 점은 기획재정부도 인정한 사실이다. 그런데 기재부는 청와대가 견지한 입장과는 달리 전액 국채를 발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청와대의 '강압적 지시'를 기재부가 정면으로 위반한 셈이다.

여기에 대해 기재부는 "청와대와 협의를 거쳐 기재부가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만약 강압적 지시가 있었더라면 궁극적으로 적자국채 추가발행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채매입 취소와 관련해서도 "적자국채 추가발행 여부 논의, 국채시장에 미치는 영향, 연말 국고자금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불가피하게 결정한 것"이라며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렇다면 국채발행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기재부 의사와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점이 기재부의 권한을 침해한 일종의 월권일까. 혹은 외압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신 전 사무관과 야권의 비판이 집중되는 부분도 이 대목이다. 예산 편성과 집행은 정부의 경제운영 방향 핵심이다. 외교·통일 및 안보, 국민안전, 사회·문화, 경제·산업 등 국정 전반에서 대통령은 국가정책의 최종 책임을 진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따라서 대통령의 보좌기구인 청와대가 개별 부처에 정책적, 정무적 입장을 피력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국채발행 과정에서 경제부총리를 우회하거나 법적 한도 이상으로 발행을 강요하는 등 불법적 요소가 드러나지 않은 이상, 청와대의 개입 자체를 문제 삼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공통된 인식이다. 신 전 사무관의 폭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령 박근혜 정부 말까지 운영된 '서별관 회의'의 경우 청와대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를 주축으로 운영된 비공식 협의체다.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국책은행 등 경제 부처 수장들이 참석해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한 부처별 입장을 조율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기구 자체의 법적인 규정이 없이 비공개로 회의가 진행되다 보니 '밀실협의'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서별관 회의는 대규모 부실이 드러난 대우조선해양 지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민간은행을 동원한 '관치금융' 의혹으로 중단됐다. 2015년 당시 논의를 주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안종범 경제수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지금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수감 중이다. 그러나 서별관 회의 자체는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부터 운영되면서 재정정책은 물론 구조조정, 부동산, 자유역협정(FTA) 등 국민경제와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민감한 사안들을 논의했다.

국회 기획재정위 한 전문위원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부터 사회적으로 첨예한 사안들일수록 청와대를 비롯한 부처간 입장을 조율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라며 "청와대가 정책적 입장을 내세우는 것 자체를 문제 시 삼으면 역대 모든 정부들이 동일한 잘못을 저지른 셈"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6월 지방선거 이후 고용악화, 자영업 위기론이 크게 부각되면서 최저임금과 일자리 예산 등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의 갈등이 부각되기도 했다. 부처간 소통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지난해 말부터 기재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중소기업부 등 경제 부처 장관들과 정책실장, 경제수석, 정무수석, 일자리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이 참여하는 비공개 회의가 다시 가동 중이다. 사실상 '서별관 회의의 부활'로 여겨진다.

나라살림연구소 정창수 소장은 "청와대가 재정정책은 물론 경제현안에 대한 별도의 입장 없이 기재부 등 정부 부처의 독자적 판단에만 맡긴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그러려면 대통령을 뭐하러 뽑느냐"고 반문했다.

◆4조원 국채 더 해도 채무비율 0.2% 증가

문제의 국채발행이 전임인 박근혜 정부의 부채비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현실적으로 성립되기 어렵다. 2017년 예산은 2016년 정기국회에서 심의, 집행됐다. 여기에 4조원의 국채를 추가한다는 것인데 정작 그 영향은 지나치게 제한적이다.

당시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천760조원으로 국가부채는 660조원가량이다. 4조원이 국채로 추가되더라도 국가채무비율은 38.3%에서 38.5%로 불과 0.2% 증가한다. 신 전 사무관과 야권의 주장처럼 재정을 '마사지' 하기엔 미미한 규모다.

더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부터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되면서 현 정부가 들어선 이듬해 5월까지 직무대행 체제였다. 국채 추가발행이 이뤄지더라도 박근혜 정부가 아닌, 문재인 정부 첫해 국가채무비율로 귀속된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2016년 기준 OECD 평균 116%에 크게 못 미친다. 정부의 국채와 지방채에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더한 일반정부 부채 기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44.2%로 미국(115.6%), 일본(233.7%), 프랑스(122.7%) 등 주요 국가들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정 건전성은 비슷한 인구 규모 국가들 중 세계적으로 가장 건실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지표가 오히려 국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박근혜 정부 당시 매년 추가세수가 누적되는 구조가 나타났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인 재정 운용으로 저성장 추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정부의 세수 증가가 기업의 입장에선 순이익, 가계 입장에선 가처분소득의 감소를 의미하는 만큼 경기활성화를 위해선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경우 출범 초기부터 확장재정 기조를 들고 나왔다. 올해 예산안이 470조원 규모로 전년보다 10%가량,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폭으로 증가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가급적 재정 지출을 줄이는 데 익숙한 기재부와 확장적으로 운영하려는 청와대의 입장이 충돌할 수 있는 지점이다.

건국대 최배근 경제학과 교수는 "현행법상 국회가 정한 국채발행의 한도 내에서 정부 재량으로 발행량이 결정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정책 결정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개입하는 것은 하등 문제 될 소지가 없다"며 "그런데도 문제 삼는다면 무지의 소산, 또는 청와대가 공무원 사회를 부당하게 압박한다는 정치적 프레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석근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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