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여행]<18> 고령화의 금맥을 두드리는 테크놀로지, 한국은 경쟁력이 있는가?


"할머니, 약 먹었어요?"

"깜박 했네, 벌써 약 먹을 시간이야?"

"식후 30분에 먹어야 하니, 지금이죠. 노란 알약 먹고 빨간 약은 저녁에 먹는 거예요. 그리고 할머니 오늘 데이케어센터에 가는 날인데, 슬슬 준비하셔야죠."

"오늘이야?"

"네, 오늘 날씨가 춥다고 하니, 목도리를 단단히 두르고 나가셔야 해요."

87세 할머니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손주가 아니라, 로봇이다.

경도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할머니가 서울에 사는 딸네 집도 아니고, 근처 요양원도 아니고 평생 살았던 집에서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할머니의 말동무이고 할머니의 기억을 도와주는 로봇의 존재 때문이다.

누비인형처럼 생긴 이 로봇(‘효돌’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됐다)은 할머니가 외로울 때면 할머니가 좋아하는 옛날 노래를 불러주고 진짜 손주가 걸어온 전화를 기억했다가 연결해주기도 한다.

75세 이상 고령인구의 증가, 그 보다 더 빠른 독거노인의 증가. 식사보조, 이동, 배변처리까지 노인 수발은 사람의 손이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휴먼서비스이다. 그런데 수발이 필요한 요보호노인은 늘어나는 데 일할 사람의 손은 점점 줄어든다.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힘을 빌려 수발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치매에 걸려 배회하는 환자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배회감지기, 환자가 언제쯤 화장실에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배변센서, 집안의 전등, 가전제품의 이용 상태를 통해 독거노인의 이상을 감지하는 IoT기술, 로테크에서 하이테크까지 다양한 기술이 쇠약해지는 몸을 부축해주고 깜박거리는 정신에 불을 밝혀주고, 고립과 절망을 막아준다.

기술의 힘으로 고령화의 파고를 넘어보자는 것이 Gerontechnology(노년공학)이다.

국제제론테크놀로지학회(ISG) 회장으로써 지난 달 한국을 찾았던 미국 남플로리다대학 교수인 윌리엄 컨스 회장은 "음성인식기술, 인공지능이 노인의 기억력감퇴, 생활의존 등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SNS가 이들의 고립을 막아주며, 스마트지팡이, 스마트슈즈가 낙상과 배회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희망감을 피력했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주도하고 높은 기술력을 선보이고 있는 것은 역시 세계 최고령국가 일본이다. 일본의 고령화율은 30%를 향해 우상향을 계속하고 있으며 100세가 넘어서도 두 다리로 걸어서 동네 이자카야(선술집)에 가고 싶다며 재활운동을 하는 노인들에게 사회 전체가 '힘내라'고 격려한다. 필자는 거의 이십 년 전에 일본의 실버산업전시장에 갔다가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환자가 휠체어에 탄 채 승용차에 탑승할 수 있고, 휠체어가 알아서 계단을 오르내린다. 노인들의 근력감소를 막아주는 노인용 운동기구, 환자의 목욕온도를 기억하는 욕조, 인지훈련 도구 등, 다채롭고 신기했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점점 진화하고 있다.

사람의 감정을 인식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로봇으로 칭찬받는 페퍼, 개호로봇의 대명사가 되어가는 물개 로봇 파로 등이 전 세계 서비스 시장, 요양시설 등에 수출돼 치매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물론, 어떤 기술은 설익은 밥처럼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특히 노인들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게 느리다. 정책지원금을 따거나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둘러 등장한 상품들은 노인들을 더욱 위축시킨다.

실제 일본의 시설에서 개호로봇을 활용하는 경우는 30%에 지나지 않는다. 개호리프트를 이용하는 시설도 10%에 불과하다. 비용 면에서 여전히 비싸다는 점,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직원을 교육시켜야 하고 손으로 하는 것보다 기계나 로봇을 시키는 것이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점 등이 이유다.

테크놀로지 일본에서도 여전히 갈 길은 멀다고 한다. 하지만 먼 산에서 들려오던 4차산업혁명의 메아리는 이제 우리 일상에 천둥처럼 울려 퍼지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 새로운 기술은 고령화의 파고를 타고 새로운 성장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서 요양산업의 규모는 320조원이며 전체 국내 소비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한자녀 정책으로 인해 고령화의 봇짐을 더욱 무겁게 지게 된 중국, 노인들의 대륙이 된 유럽 등 시장은 어마어마하다. 바이오헬스, 빅데이터, 머신러닝등도 고령화라는 엄청난 금맥을 캐기 위해 이리 저리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한국에서는 실버산업보다 긍정적인 용어라며, 고령친화산업이라고 명명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고령친화산업육성법이 제정된 것이 벌써 10년 전인데, 기술적 발전이 더디기만 하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 시장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심하게는 한국에서 고령친화산업의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은 바로 장기요양보험제도라는 쓴 소리도 있다. 모든 것이 정부에서 제공되는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은 굳이 지갑을 열지 않는다. 정부가 제공하는 만큼만 소비하고, 그 만큼만 기업이 투자하며, 그 만큼만 기술이 발전한다.

어떤 기술은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외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점이 있다. 공공시설 화장실에 비데가 설치돼 있는 것을 보고 '한국에는 치질환자가 이렇게 많냐?'고 묻는다.

고령친화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술, 어떤 상품이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노인돌보는 일의 수고를 더는 데 필수적인지? 행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비자들에 의해 선택되어졌으면 좋겠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는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복지 연구에 몰두해 온 노인문제 전문가다. 재가요양보호서비스가 주요 관심사다. 저서로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이 있다. 치매미술전시회(2005년)를 기획하기도 했다. 고령자 연령차별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땄다.블로그(blog.naver.com/weeny38)활동에도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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