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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BIFF]라브 디아즈 "휴머니티 위해 싸우자. 영화는 좋은 도구"(인터뷰)


"부산국제영화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영화제"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휴머니티를 위해서 같이 싸우자. 영화는 그렇게 하기 위해 좋은 도구다."

인터뷰 말미에서 우리나라 영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라브 디아즈(Lavrente Indico Diaz)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 내내 라브 디아즈 감독은 '휴머니티'를 말하며 자신의 영화 철학을 전했다. 그가 말하는 휴머니티는 '관찰'이자 '진실'이었다.

지난 18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두레라움홀에서 조이뉴스24와 라브 디아즈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라브 디아즈 감독은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영화계 거장이다. 감독뿐 아니라 촬영감독, 편집자, 작가, 제작자, 배우, 시인, 작곡가, 프로덕션 디자이너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필리핀 출신 영화인이기도 하다.

라브 디아즈 감독의 작품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적은 있지만, 이번에는 뉴 커런츠 부문 심사위원 자격으로 영화제를 찾았다. 라브 디아즈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 일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기에 작품이 초대됐을 때와 심사위원으로 영화제에 온 것은 큰 차이가 없다"며 "프로그래머, 영화 관련 선생님 등과 함께 작품에 대해 토론하고 심사하는 과정이 너무 즐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라브 디아즈 감독은 지난 2010년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포함해 우리나라 영화제에서 두 번째 심사위원을 맡았다. 두 영화제의 차이를 묻자 라브 디아즈 감독은 "물론 영화제마다 기준이 다르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전주국제영화제는 최고의 촬영상, 최고의 영화상 등이 있었지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최고의 영화상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심사하는 과정에서 내 자신이 풍부해지는 건 똑같다. 다양한 작품들을 보면서 스스로 충만해지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자신만의 심사 기준에 대해선 "작품의 휴머니티와 감독의 비전에 초점을 맞추면서 심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사 기준은 내가 영화 작업을 할 때와 연관돼 있다. 내 영화는 나의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게 휴머니티와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저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엔터테이닝 영화를 하는 건 아니에요. 제 영화는 저의 인생과 연결돼 있어요. 제가 겪는 문화와 연관이 있는 거죠. '왜 필리핀 사람은 이런 일을 겪는가', '필리핀 사람은 왜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가' 등이요.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일본에서는 왜 여성을 이렇게 대할까', '미국 사람은 왜 그런 대화를 할까' 같은 거죠. 한국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점이 많아요. 정치적인 것, DMZ에서 사는 사람 등이 대표적이죠. 지금 묵고 있는 호텔에서 아침에 창밖을 보면 해운대에 있는 어부들이 보여요. 이 사람들은 삶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보면서 저 스스로 작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저는 이렇게 제 인생에서 겪는 문화를 관찰하면서 영화를 만들어요. 이게 저의 휴머니티이고, 제가 생각하는 휴머니티예요."

라브디아즈 감독은 우리나라 부산을 더 언급했다. "부산의 역사 자체가 흥미롭다. 지금은 부유한 대도시 중 하나지만 예전에는 외국 군인들, 그에 따른 매춘도 많았다. 대조되는 부산 역사 자체만으로도 관심이 간다"고 밝혔다.

필리핀은 독재 정치로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나라다. 그만큼 예술가는 정치적으로, 예술적으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라브 디아즈 감독은 "영화인으로서 압박이 있다"며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런 압박을 겪고 난 후 작품을 통해 맞서 싸워야 한다"고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실제 라브 디아즈 감독은 필리핀 사회를 다룬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2016) '떠나간 여인'(2016) '멜랑콜리아'(2006), '필리핀 가족의 진화'(2004) 등을 만들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서왔다.

라브 디아즈 감독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촛불혁명,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구속 등을 언급했다.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인은 영화로, 음악인은 음악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며 "모른 체 하는 걸 없애야 한다. 어떤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중요하다"고 라브 디아즈 감독은 거듭 강조했다.

"필리핀 관객들은 할리우드나 엔터테이닝 영화를 좋아해요. 하지만 저는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으로서 한 사람이라도 바꿀 수 있고, 한 사람이라도 지금 현실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 정도로도 만족해요. 지금도 그걸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요.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무지(ignorance)'예요. 그래서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죠. 문제를 인식하고 각자가 자신이 작업하는 매체를 통해 사실을 전달하는 것,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게 제가 영화를 만드는 첫번째 원동력이고요. 솔직하고 진실되게 문제를 다루는 것이 최고예요."

라브 디아즈 감독은 '멜랑콜리아'(2008), '프롬 왓 이즈 비포'(2014),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2016), '떠나간 여인'(2016) 등으로 권위 있는 세계 영화제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라브 디아즈 감독은 세계적인 거장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부끄럽고 숨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그런 명칭에 책임감이 좀 더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라브 디아즈 감독의 영화는 러닝 타임이 긴 것으로 유명하다.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2016)는 480분, '필리핀 가족의 진화'(2005)는 540분에 이른다. 러닝 타임에도 라브 디아즈 감독만의 영화 철학이 있었다.

"처음에 영화를 시작할 때 제 용어로 만들고 싶었어요. 제 영화를 조작하고 싶지 않았죠. 찍은 장면을 편집하면서 자르는 게 조작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죠. 저는 인생을 관찰하고 진실을 보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작품에서 자주 쓰는 기법은 한 프레임에 원테이크로 찍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영화에서는 인물이 말하는 장면을 다양하게 찍지만 저는 한 프레임에 써요. 그렇게 삶을 관찰하고 싶고 진실을 보여주고 싶어요."

라브 디아즈 감독은 인터뷰 내내 '진실'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라브 디아즈 감독이 생각하는 진실은 무엇이냐고 묻자 "모르겠다"고 웃으며 먼저 답했다. 이어 "진실이라는 것은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거다. 한 사람이 죽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왜, 언제 죽었는지 궁금해 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 '라쇼몽'처럼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은 그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추상적일 수 있지만 이런 진실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라브 디아즈 감독은 우리나라 예술·독립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일단 다이나믹하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문화를 전달한다. 지금은 심사위원이라서 최고의 감독 이름은 말하지 않겠지만 첫번째 두번째 작품인데도 뛰어난 감독이 많다"며 "또 한국 영화는 전세계에 대해 감독만의 관점도 있는 것 같다. 한국 영화는 살아있다"고 답했다.

라브 디아즈 감독은 지난 1998년 '콘셉시온 구역의 범죄자'로 데뷔했다. 이후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왔지만 여전히 감독으로서 어려운 점은 있다고 밝혔다. "영화를 기획하고 촬영하는 건 너무 좋아한다. 섬에 들어가서 촬영한다고 해도 즐겁다. 하지만 편집해야 하는 후반 작업은 가장 힘들다. 이미지를 조합할 때 최고의 것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 구조를 맞춰 가는 게 힘들다. 그래서 종종 아프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부산국제영화제 故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 프로그래머와의 인연을 언급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시작할 때 김지석이 아시아 각 나라 영화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새로운 영화가 있다면 알려달라. 초대하고 싶다'는 메시지였다"며 "김지석은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를 오래된 친구처럼 대해줬다"고 살짝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에서 촉발된 부산국제영화제의 파행에 라브 디아즈 감독은 응원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여전히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외압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라브디아즈 감독은 "빨리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꼭 필요한 영화제다. 문화 교류적으로도 너무 중요한 포럼이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영화제"라고 거듭 밝혔다.

한편,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12일 개막해 오는 21일까지 열린다. 75개국 298편의 영화가 초청됐다. 월드 프리미어로 100편(장편 76편, 단편 24편)의 영화가,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로 29편(장편 25편, 단편 5편)의 작품이 상영된다.개막작은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 폐막작은 실비아 창 감독의 '상애상친'이다.

조이뉴스24 부산=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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