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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틀을 바꾸자]②오락을 넘어 문화를 입힌다


#1. 지난 1999년,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총기 난사를 주도한 고교생 두 명이 '둠'이라는 비디오게임을 즐겨 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총쏘는 게임의 폭력성이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2. 서울시 교육청은 최근 초등학생 5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게임을 하루에 한 시간 더 할수록 성적이 2.38점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게임을 오래 할수록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저하된다는 것.

하지만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학습 환경(취미활동, 소득수준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통제하지 않아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3. 어느 나른한 주말, 점심을 먹고 휴대폰으로 모바일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C씨를 보며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명문대까지 나온 놈이 할 게 없어서 게임이나 하고 있는 거야. 그만해!"


게임은 시나리오와 그래픽, 영상과 음악 등 대표적인 대중문화들이 한 곳으로 압축돼 만들어지는 종합예술이다. 하지만, 게임 개발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한국 사회에서 게임이 가지는 위상은 그다지 높지 못하다.

부모들에게 게임은 자녀의 공부를 방해하기만 하는 유해한 콘텐츠이고, 사회적으로도 게임은 '폐인'만을 양상하는 불편한 콘텐츠란 인식이 강하다.

게임 개발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프로게이머에 대해서는 'PC앞에만 앉아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 많고,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중독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사회적인 인식 뿐만아니라 게임 산업을 둘러싼 규제 환경 역시 척박하기만 하다.

정부는 청소년들의 수면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 아래 밤 12시 이후로는 청소년들의 게임 이용을 강제로 차단하는 '셧다운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 같은 글로벌 애플리케이션 오픈마켓에서 게임을 내려받을 수 없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에 따라 국내서 유통되는 모든 게임이 게임물등급위원회의 등급분류를 받아야 하는데 애플과 구글이 심의를 거부하면서 아예 게임 카테고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내 이용자들은 해외 오픈마켓에 별도로 계정을 만드는 우회 경로를 통해 게임을 내려받고 있으며, 모바일 게임사 역시 국내보다는 해외 이용자를 위한 스마트폰 게임 위주로 개발하는 형국이다.

오픈마켓에서 유통되는 게임물에 대해서는 사후에 심의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규가 이미 국회에 상정돼 있지만 2년 가까이 상임위에서 잠들고 있다.

관련 법규가 제자리를 걸으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채 시장 성장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

이같은 문제는 지난 달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한선교 의원은 "게임과 관련한 규제 법령이 진흥 관련 법령의 두 배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최종원 의원도 게임 시장의 변화를 아우를 수 있도록 게임법이 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게임 산업은 문화콘텐츠 수출 실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청년층의 일자리 부족 현상을 해결해주는 효자 산업인데도, 정작 게임 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중복 규제와 부정적 인식으로 얼룩져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게임의 긍정적 영향 바라보는 시선 필요해

똑같은 대중문화인데도 불구하고, 영화나 뮤지컬, 문학작품 등 일반 문화 콘텐츠에 비해 게임이 이처럼 저급한 취급을 받는 것은 왜일까.

일부에서는 게임이 다양한 세대가 즐기는 대중문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영화, 비디오, TV 등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초기에는 기존 문화와 충돌을 빚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것처럼 게임이라는 미디어 역시 적응기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게임 속 세상에 과도하게 몰입한 나머지 현실 세계와의 조율을 잊어버린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에는 자기 조절 능력이 성인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학교와 가정에서 통제해줄 필요가 있으며, 과몰입을 예방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규제도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증상을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게임을 그만해야 한다'고 강제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게임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 관심을 갖고, 절제의 필요성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게다가 '중독'이라는 표현은 병리학적 표현으로 진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밀한 검사를 거쳐 매우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단어다.

TV 중독, 영화 중독, 독서 중독이라는 용어를 쉽게 쓰지 않는 것처럼 게임에도 '중독'이라는 진단을 섣불리 내릴 경우, 이에 대한 해결책도 올바른 것이 될 수 없다.

또한 국내에서는 게임 중독이 '인터넷 중독'이라는 용어와 혼용돼 쓰이면서 게임 과몰입 실태가 실제보다 과장돼 보이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게임문화가 기존 대중문화처럼 주류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0 한일 게임이용자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응답자의 53.9%가 여가수단으로 TV시청(22.1%)이나 영화관람(19.7%)보다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만큼 게임은 이미 대중적인 여가수단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게임이 세대간 소통의 매개체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최근 LG경제연구원은 '게임 세대가 몰려온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게임이 이미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게임을 즐기는 세대의 특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모 세대가 게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게임을 과소평가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이므로, 자녀 세대가 게임을 일상적인 놀이 문화 중 하나로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을 일상적으로 즐기는 젊은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어르신들도 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면 게임의 긍정적 효과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게임업계 관계자도 "영화든 연극이든 문화 콘텐츠 흥행의 기본 요소는 '몰입'"이라며 "게임이 주는 몰입의 즐거움도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지연기자 hiim29@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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