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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과뒤]통화기록 '볼 권리'와 침해사실 '알 권리'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일 '통신사실확인 자료제공 등 협조현황'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통신사실확인 자료제공'이란 통신사가 수사기관의 요청으로 일반 시민의 통화기록을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경찰이 범죄 수사를 위해 통신사의 협조를 받아 통화내역 같은 것들을 뽑아보는 것이죠.

방통위는 이같은 협조 사실에 대한 기록을 수집해 일 년에 두차례 공개합니다.

발표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경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이 일반 시민의 통화 내용을 엿듣거나(감청), 통화 기록을 열람한 사실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31.8%, 51%씩 늘었습니다.

물론 51% 늘었다고 해도 적지 않은 증가치입니다. 하지만 이는 방통위가 과거 집계하던 방식을 따랐을 때 이 정도라는 것이고요. 실제 방통위가 발표한 단순 숫자로만 보면 통신사실확인 문건이 무려 6천560%(65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그 숫자는 1천577만 회선을 상회하지요.

이쯤되면 정부와 경찰이 일반인의 사적인 통신내용을 엿보고, 엿듣고 있다는 오해를 사도 할 말이 없게 되는 셈입니다.

경찰청은 "강력범죄가 급증하고 있는데다 보이스피싱 및 사이버 범죄 등 통신기술을 이용한 범죄까지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범죄자들도 대단히 빠르게 지능화하고 있어, 통화내역 조사를 통한 수사가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통신사실 확인 내용이 증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아무리 범죄가 증가하고 이로 인한 통신수사가 확대됐다 하더라도 6천500%는 말이 안되는 증가치이지요. 이에 대해 경찰청 강력계 관계자는 "실제 늘어난 것은 50% 정도다. 나머지는 통계상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들이 설명하는 '통계상의 차이'는 이렇습니다.

그 동안은 검찰과 경찰, 군수사기관 등이 수사를 할 때 감청을 하거나 통신사실을 확인하려면 법원의 '압수수색영장'이 필요했습니다. 압수수색영장은 '형사소송법'에 의거해 발부하기 때문에 법무부 관할이죠.

그런데 최근 일부 지방법원들은 수사기관이 통신사실 협조에 관한 영장 발부를 신청하면 이 내용이 방통위 관할인 '통신비밀보호법'에 더 근접하다고 보고, 통신비밀보호법 상 발부되는 '허가서'로 대체했습니다. 그래서 허가서를 발부받아 조사한 통신사실확인 문건은 모조리 방통위 통계에 잡히게 됐고 따라서 6천500%라는 엄청난 숫자로 나오게 됐다는 것이 경찰청의 설명입니다.

작년에 갑자기 일반시민의 통화내역을 엄청나게 많이 엿본것은 절대 아니고, 그간 해 오던 방식의 절차가 바뀌었을 뿐이라는 겁니다 .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순간 벼락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원래 해 오던 방식이 뭘까?'란 데 생각이 미친 겁니다.

결국 2008년까지 방통위가 발표한 통신사실확인 협조자료 내용은 빙산에 일각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더욱 엄청난 양의 통신 내용을 수사기관이 들여다보고 있어왔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압수수색 영장발부로 방통위 '통계'에 잡히지 않았을 뿐, 이미 일반인의 통신 사실은 수사기관에 상당부분 제공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방통위가 발표한 통신사실확인자료제공 1천570만여건은 허가서를 받은 사실만 집계된 겁니다. 압수수색 영장발부로 조사되는 통신사실 확인은 여전히 방통위 통계에 잡히질 않고 있습니다.

경찰청 측은 압수수색 영장발부로 수사하는 통신사실확인자료는 어느정도 분량인지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 압수수색과 허가서 발부 비율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허가서 발부만으로 이미 1천570만여개 이상의 전화번호 통화 내역이 수사시관에 제공됐는데, 여기에 압수수색 영장으로 확인하는 통화 내역까지 추가되면 그 양은 얼마나 될까요.

범죄 해결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수사기관의 노고에 대해서는 당연히 치하해야 마땅할 겁니다. 하지만 그 수사를 위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통화내역을 들여다봤다면 이를 알려야 하는 것 또한 법으로 보장된 국민의 권리입니다. 경찰이 그 부분을 간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일이 개개인에게 "경찰인데요, 이번에 수사하면서 당신 통화내역을 열람했거든요~"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어려울테지요. 또 그렇게 하려면 인적사항 확인이라는 또 다른 사생활 침해 요지가 있는 수사를 병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경찰의 이런 어려움은 공감이 안 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밀한 개인 정보가 사용됐다면 당연히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몇몇 의원들이 이런 점을 감안해 당사자 통지 강화법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속히 해결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수사기관들이 '공익'을 위해 '볼 권리'를 요구한다면, 개인들은 자신의 정보 사용 내역을 '알 권리'가 있을 테니 말입니다.

강은성기자 esth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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