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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성]실리콘밸리의 '망한' 장난감 가게


이번 한 주간,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기업들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비행기로 10시간이나 날아간만큼, 찾아간 기업들은 각자 지난해 경제위기를 타개하고 기록적인 성장을 보여준 대표업체들이었다.

취재를 마친 후, 동행한 선배가 미안한 표정으로 부탁을 한다. "네 살 배기 자식 놈한테 선물 하나 사다주게, 장난감 가게 좀 잠시 들릅시다."

미국의 대형 장난감 가게로도 유명한 'Toy's R us'가 근방에도 많으니, 미국에 온 김에 그 곳을 찾아가 아이에게 줄 선물을 사고 싶다는 것이다.

기자 역시 흔쾌히 동의하고, 말로만 듣던 그 곳을 구경도 할겸 냉큼 따라나섰다.

숙소 인근에 마침 현지인들도 적극 추천한 대형 쇼핑몰이 있었다. 장난감 가게 위치를 파악한 후 곧장 그리로 향했다. 그런데 일행은 잠시 당황했다. 분명 안내지도 상으로 'Toy's R us'가 위치해야 할 곳에 가게가 없었던 것이다. 몇 번을 왔다갔다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한 일행이 농담삼아 한마디 한다. "망한거 아니야?"

그 순간 간판이 없는 한 출입구가 눈에 띄었다. 손으로 빛을 가리고 어두컴컴한 내부를 엿봤다. 족히 수천평은 됨직한 텅빈 공간이 문틈으로 들여다 보였다. 바로 그 자리가 'Toy's R us'가 본래 위치했던 곳이었다.

당황한 선배는 "에이, 가게가 철수했나봅니다. 돌아갑시다" 했지만 일행은 그런 선배에게 괜찮다며, 근처에도 'Toy's R us'가 많이 검색되니, 다시 찾아가 보자고 했다.

두 번째로 찾아간 쇼핑몰 역시 규모면에서 뒤지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도 장난감 가게는 지도에서만 위치할 뿐 사라지고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오기로라도 찾아갑시다!" 미안해하는 선배를 독려하며 일행들은 세번째 쇼핑몰로 향했다. 그리고 드디어 'Toy's R us'를 발견했다.

허겁지겁 아이 선물을 고르는 선배 옆에서 우리 일행도 갖가지 장난감들을 흐뭇한 눈으로 구경했다.

그리고 비로소 기자의 눈에 장난감 제품들 위로 앉은 뽀얀 먼지가 눈에 들어왔다.

눈을 돌려보니 여기저기 이빨빠진 것처럼 제품이 없는 공간도 보인다. 그나마 있는 제품도 재고의 양이 많지 않고 종류도 몇 안된다. "다른나라까지 소문이 파다하던 '장난감 천국'이 겨우 이정도인가" 싶었다.

벼락같이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실리콘 밸리에 와서 만난 업체들이 기자에게 공통적으로 했던 한 마디가 불현듯 생각난 것이다.

"지난 해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가 실리콘밸리도 덮친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회사는 올 해 그나마 실적에서 '선방' 했지만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요. 매출이 수십퍼센트씩 감소하기 일쑤였고, 회복도 더딘 상태죠."

말은 그렇게 해도 정작 '어렵다'는 업체를 만나지 못해서인지, 실리콘밸리의 침체가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한때 문전성시를 이루던 장난감 가게의 초라한 현재를 확인하고 나니 비로소 실리콘밸리의 침체가 가슴에 와 닿았다.

동행도 같은 소회를 느꼈나 보다. "장난감 종류가 영 부실하네요. 월급이 깎이고, 심지어 해고되는 마당에 아이들 장난감 사줄 여유가 없었겠지요..."

그러고보니 쇼핑몰 내 다른 상점들에도 '파워세일', '최대 80% 세일해드립니다', '오늘이 마지막 세일'과 같은 빨간 종이들이 쇼윈도를 온통 뒤덮고 있었다.

심지어 불과 1~2년 전 미국을 찾았을 때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블럭마다 위치해 있던 대형 전자상가 '베스트바이'도 자세히 보니 모두 간판 불이 꺼져있다. 건물 앞에는 '상가 임대'라는 현수막만 펄럭였다.

잘나갔던 실리콘밸리의 현실이 바로 이 곳 쇼핑몰에서 단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각종 경제지표의 호전을 밑천삼아 '경제위기를 극복했다'며 회복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미국 역시 주가 상승 등에 힘입어 2010년을 핑크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실리콘밸리 주민들의 지갑 속은 겨울이다. 일자리도, 연봉도 얼어붙어 있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미국 대형 장난감 가게 한켠에서 거대한 경제위기 쓰나미와 싸워야 했던 2009년과, 영 남의 일만 같은 '경기회복 신호탄'을 새삼 재확인한 것 같아 괜시리 울적해졌다.

새너제이(미국)=강은성기자 esth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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