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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묵]서울광장과 인터넷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엄수된지 일주일쯤 지났지만 광화문과 서울시청 주위에는 여전히 경찰 버스가 가득하다. 평일 낮, 눈을 씻고 봐도 시위의 징후를 찾아볼 수 없지만 전경 중대가 식판을 들고 쭈그려 앉아 매연에 밥을 말아 먹고 있다.

경찰 버스를 잇대어 시위를 예방하는 방식은 참여정부 당시 '여중생 미군 장갑차 사건' 때 처음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정부에서 애용되고 있다. 줄지어 선 경찰 버스는 훗날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를 돌아볼 때 가장 먼저 떠올릴 풍경 중 하나일 것이다.

뜬금 없는 소리 하나. 이명박 대통령은 CEO(최고경영자), 정치인이 아닌 설치미술가로도 대성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서울시장 재임 당시 추진했던 버스 중앙차로 개편, 청계천 복원, 서울시청 앞 광장 개방에서부터 가능성이 엿보였다. 국토를 세로지르는 역작 프로젝트 '한반도 대운하'는 아쉽게도(?) 사회적 반대에 부딪쳐 보기가 힘들 것 같다.

성공한 건설회사 CEO 출신답게 이 대통령은 '공간'과 '건축'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을 지녔다. 긍정적인 의미이든, 부정적인 의미이든.

첫 작품은 일명 '명박산성'이었다. 지난 해 촛불 시위 당시 시민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광화문 사거리 한복판에 쌓은 복층 컨테이너를 기억하는가. '모든 소통을 거부한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표현한 하나의 관제 미술 작품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어느 작가도 시도하기 힘들 장대한 스케일, 주제와 거친 질료와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이명박 정부의 설치미술 후속작이 나왔다. 시청 앞 광장을 빼곡히 둘러싼 경찰 버스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의 작가를 오세훈 서울시장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오 시장은 영결식 후 노제를 시청 앞 광장에서 열자는 요구에 대해 "서울시가 서울광장 사용 허가권을 가지고 있지만 개방 문제는 국무총리실이나 행정안전부 등과 협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경찰 버스를 치울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광장의 사용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쥐었지만 정부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자인한 셈이다. 이런 해프닝 끝에 노제가 열렸지만 다음날 다시 경찰 버스로 봉쇄됐다. 서울광장을 둘러싼 경찰 버스도 이명박 정부의 작품으로 간주해야 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촛불 노이로제'에 걸린 현 정부의 심경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사건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으려는 인식 없이 '군중은 힘으로 통제할 수밖에 없다'는 정부의 인식 수준을 두 '작품'이 보여주고 있어 안쓰럽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충격이 잦아들자, 컨테이너 박스와 서울광장을 에두른 버스, 두 극적인 이미지는 현 정부의 인터넷에 대한 인식과 그대로 겹친다. 워낙 큰 사건들이 많이 터져 금방 잊어버리지만 오프라인 못지 않게 온라인에서도 그간 엄청난 일들이 있었다.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OSP에 이용자의 IP 주소, 로그기록 등이 포함된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요구하는 건수가 급증했다. 인터넷에 의견을 올린 한 네티즌은 국가 경제에 혼란을 초래했다는 명목으로 구속수감됐다가 무혐의로 풀려났다.

특정 회원수 이상을 보유한 사이트에서는 개인정보 확인을 거쳐야만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한 글로벌 인터넷 기업이 이 제도의 도입을 거부하며 세계적인 비웃음을 사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인터넷을 통한 군중 통제가 발생했다.

'사이버 스페이스(cyber space)'라는 말 그대로 우리가 직접 디딜 수 있는 광장이나, 초고속 통신망을 통해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인터넷이나 다같은 광장이다. 인터넷 속에서의 이 같은 강압적인 통제 수단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현 정부가 인터넷에 쌓은 또다른 컨테이너 박스이자, 경찰버스인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 의견이 갈리지만 지지했던 이나 반대했던 이나 (서거 후) 인정하는 것이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이다. 그 복판에는 자유로운 인터넷이라는 장이 있었다.

거리 위의 흉물스러운 컨테이너 박스와 경찰 버스는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 속의 컨테이너 박스와 경찰 버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현 정부는 훗날 민주주의의 역사를 퇴보시킨 정권이라고 기록될 확률이 크다.

정병묵기자 honnez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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