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박경신]노무현의 죽음, 어느 아줌마의 깨달음


"앞으로 자식교육 똑바로 시키겠습니다"

누구나 자살에 대해서 '그러할 용기로 살아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겠는가'를 아쉬워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다르다.

'앞으로 자식교육 똑바로 시키겠습니다.' 어느 아줌마 조문객이 대한문 노대통령 분향소에 남긴 고인에 대한 글이다. 이렇게 당연해 보이는 글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에 대해 나는 한참을 의아해 했다. 그리고는 이 말이 우리가 요즘 거의 듣지도 하지도 않는 말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잘 살 것'을 요구해왔지 '똑바로 살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행여나 자식들이 옳은 길을 가다가 험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어른들의 마음과 가슴을 장악한 지배이데올로기였다.

그런데 노대통령의 죽음은 이 아줌마 조문객이 '자식 교육 똑바로 시키겠다'라는 결연한 의지를 글로 남기도록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 학부모가 이런 글을 스스로 남기도록 한 것은 엄청난 일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 이름도 후세에 전하지 못하고 일제의 탄압에 스러져가는 동안 일제와 결탁하여 치부한 자들이 반민특위의 위기를 돌파하고 다시 군사독재시대의 고도성장을 거쳐 우리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리잡았다. 그 뒤틀린 역사 속에서 우리는 '옳은 것'을 자신있게 주장할 용기를 잃어갔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용기의 부재를 성숙함으로, 조직성으로 추앙하게 되었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타인의 말에 반대를 하는 것은 너무 쉽게 '빡빡함'으로, 조금이라도 권위가 있는 사람의 말에 대한 반대는 '버릇없음'으로 여겨졌다. 누구나 '법을 지키면 손해본다'고 수군거리면서도 사법제도를 바꾸려다 '손해'를 보려는 사람보다는 손해를 보지 않기기 위해 법을 회피하는 기술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노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들을 '왕따'를 무릅쓰고 고집스럽게 추구하였다. 누구도 3당 합당 때의 그처럼 수많은 동료들을 버리고 신념을 택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산에서 낙선을 거듭하던 시절의 노무현을 서울대 출신 386운동가들마저도 왕따시킬 때 노무현은 '친구들을 사귀려고' 원칙을 굽히는 일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대통령 취임을 통해 우리 역사 속에서 흔치 않은 '사필귀정'을 실현해 보였고 자신의 취임 일성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죽음으로써 살아서 가려던 길을 갔다. 그 길은 노 대통령 영결식의 와중에도 경영권 편법 상속에 대한 무죄판결을 받은 삼성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사회의 '주류' 그리고 법원이 방패가 되고 검찰이 창이 되어 지켜주던 '주류'에 대한 '거부'의 길이었다. 예상치 못한 개인적 비리 의혹으로 자신이 가려던 길이 막히자 그는 생명을 내던지며 그 길을 뚫었다.

운동권과 노동계의 수많은 열사들이 죽음으로 '저항'하였지만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도리어 '제발 너는 저렇게 되지 말아라'며 자식들이 불의에 눈감고 살기를 바랬다.

노 대통령은 죽음으로 학부모들에게 각인시켰다. '올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임을. 지금부터라도 당장 자식들에게 '잘 살기'를 가르치던 것을 중단하고 '올바르게 살기'를 가르치기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괴물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박경신 고려대 교수








alert

댓글 쓰기 제목 [박경신]노무현의 죽음, 어느 아줌마의 깨달음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