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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과뒤]유튜브 만국기(萬國旗) 속 서글픈 태극기


구글이 운영하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www.youtube.com)가 한국에서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최근 선언했습니다.

인터넷 상의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내용이 담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4월부터 적용되면서 회원을 10만명 이상 가진 사이트는 실명제를 도입해야 하는 데 따른 것입니다.

구글은 상당한 고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튜브는 지난 1년 간 한국에서 나름 성공적인 정착을 보였습니다. 랭키닷컴의 10일 집계에 따르면 한국 유튜브 서비스는 지난 해 1월 방문자수 135만명에서 3월 235만명으로 크게 증가하며 2위 업체 엠군을 바짝 뒤쫓고 있습니다.

실명제를 도입하지 않았으니 이용자가 한국 유튜브에서는 동영상을 올릴 수 없게 됐습니다. 이는 활동 위축을 가져올 것이고 비즈니스에도 직접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즈니스'와 '네티즌 표현의 자유 중시 및 개인식별번호를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철학' 중 구글은 후자를 택한 것입니다.

구글 관계자는 10일 "(실명제 미도입으로)사용자들이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비즈니스와 철학 사이에서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고 밝혔습니다.

유튜브 사이트를 들여다 보면 이러한 고집을 부릴 수 있었던 게 이해갑니다. 유튜브는 글로벌 웹사이트입니다. 초기화면에서 '국가 콘텐츠 기본설정' 메뉴를 보면 한국을 포함 호주, 독일, 홍콩, 이탈리아 등 수십개 나라의 국기가 나옵니다.

국기를 누르면 그 나라에 맞는 동영상으로 화면이 재편됩니다. '유튜브 한국'은 한국에 맞게 최적화된 일종의 '메뉴 탭'인 셈이지요. 실명제를 채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동영상을 한국에서 올릴 수 없는 게 아닙니다. 다른 나라를 통해 회원가입을 하면 동영상을 올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youtube.com'이라는 한 도메인 내에서 이것이 다 이뤄지는 것입니다. 여타 한국 사이트가 주민등록번호와 주소지 등을 요구하는 것과 달리 글로벌 사이트답게 유튜브는 간결합니다. 인도를 통해서건 아일랜드를 통해서건 메일 계정, 생년월일 및 성별(거짓 작성도 가능) 등 간단한 정보 입력 절차를 통해 가입할 수 있습니다.

구글의 이번 발표를 보고 솔직히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른다고, 한국에서 사업할 건데 깐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글이 내세우는 '이용자 우선 철학'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국가별 콘텐츠 기본설정'의 국기들을 보고 있으니 서글퍼집니다. 한국은 휘황한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얼마나 후진적으로 이용해 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보면 실명제를 유일하게 요구하는 한국은 참 이상한 곳일 겁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7일 발표에 따르면 2008년 하반기,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인터넷 기업이 개인의 전화번호나 통화일시 및 시간, 인터넷 로그기록, 접속지 자료(IP주소) 등의 자료 제출이 11만261건이었습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1.3%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구글도 거대 기업인지라 '네티즌 표현의 자유 수호'라는 지고지순한 철학만 가지고 이번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한국 비즈니스가 타격을 받는다 해도 구글에게 인터넷 실명제는 끝내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 무엇인 것입니다.

국가가 수시로 인터넷 기업에 개인 정보를 요구하고 그마저도 해킹을 당해 전 사회적 문제가 심심찮게 벌어지는 한국에서 말이지요.

초등학교 운동회에 걸린 만국기를 보고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유튜브의 만국기'를 보고 있으니 씁쓸합니다. 유튜브의 만국기는 우리에게 "너희는 왜 그렇게 인터넷을 쓰니?"라고 되묻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인터넷 실명제가 나름의 설득력 있는 탄생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라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나라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정병묵기자 honnez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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