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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범죄와 한국사회]③"관련법 제정, 공론화와 토론 필요"


전문가들 "추상적 용어 난무"

다음 아고라 논객 '미네르바' 박 모(31)씨가 구속되고 그가 '사이버범죄자'로서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쓴 글들이 과연 범죄인가 아닌가에 대한 공방이 온·오프를 막론하고 끊이질 않았다.

'미네르바'의 혐의는 '허위사실유포죄'다.

사이버범죄와 관련된 법률은 이밖에도 여러가지가 얽혀있다. 공인의 사생활과 관련해 자주 논의가 되는 '인터넷 명예훼손'이나 UCC(이용자제작콘텐츠)의 등장과 함께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저작권 침해' 등도 사이버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한다.

사이버범죄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법 적용 및 해석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도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허위의 통신' '공익 해할 목적' 등 추상적 용어 난무

'미네르바'의 구속 사유가 된 허위사실유포죄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에 근거한다.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다.

하지만 '미네르바'가 어떻게 공익을 해했는지, 허위 통신의 정확한 정의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아 구속 여부를 떠나 그가 유죄인가 무죄인가에 대한 공방이 끊이질 않았다.

'미네르바' 변호인단이 관련 법률의 추상성에 대해 위헌 제청까지 내놓은 상태다. 변호인단은 "박 씨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거짓이라 단정할 수 없으며 공익을 어떻게 해했는지 명확하지 않다"면서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용어가 있다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런 용어의 추상성에 대해서 법 전문가들은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한 언론사에 기고를 낸 송기춘 전북대 교수는 "허위의 통신이란 말은 통신 기술에 대한 말이다. 통신 내용이 허위인가 여부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통신 송수신 과정에서 명의 도용 등이 일어날 경우를 지칭하는 게 '허위의 통신'이다"라고 정의한 뒤 "거짓말이 나쁘긴 하지만 불법은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는 "설사 박 씨의 글이 거짓일지라도, 허위의 사실을 인터넷으로 유포했다고 처벌받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공익을 해할 목적'에 대해서 '미네르바' 변호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각을 보였다. 그는 "공익을 해할 목적은 매우 추상적이고 애매해 범죄 구성요건으로서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 위헌이다"라고 말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박 교수는 '허위사실유포죄의 위헌성에 대한 비교법적인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허위의 명제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했을 경우에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허위 사실 유포 자체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행사자의 '이득'이 전제될 때만 처벌이 가능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박 교수는 '허위'의 판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진실과 허위의 구분은 항상 잠정적이며, 추후에 폐기될 수 있다"면서 "그런데도 이를 기준으로 표현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도리어 진실의 발견을 가로막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들의 표현을 단죄하게 되면 국민은 100% 진실을 확신하지 못하는 이상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법 전문가들은 현존하는 관련 법 조항의 표현들만으로는 '사이버범죄' 구성 요건을 적시하거나 위법성을 논하기 힘들다는 데 뜻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사이버범죄의 죄질이 더 무겁다?

사이버범죄 관련 법리해석의 모호함에 대해 전문가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반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도 있다. 사이버범죄의 죄질 중량에 대한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발의한 일명 '사이버모욕죄'는 사이버범죄의 전파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지는 명예훼손 등은 즉각적으로 대중에게 공표되며 순식간에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이버공간의 피해 확산력에 대해 정완 경희대 교수는 지난 13일에 열린 '기술과 법 센터 워크샵'에서 "인터넷공간에서 한번 행해진 명예훼손행위는 순식간에 전세계로 확산될 수 있으며, 가해자가 뒤늦게 반성을 해도 전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 교수는 "사이버 공간의 특성에 대한 깊은 고려가 있다면 보다 신중해질 필요는 있다"면서 "인터넷상 떠도는 언어활동에 대한 신뢰는 기존 매체만큼 크지 않으며, 인터넷을 이용하는 자에게는 반론권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사이버범죄에 접근했다. 그는 "익명의 네티즌과 과학도들이 인터넷 게시글을 통해 줄기세포 존재 여부에 의혹을 제기할 수 없었다면, 또 참여정부가 '공익'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이 주장들에 전기통신법을 적용해 처벌했다면, 진실이 드러났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교수는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한 국가에서는 허위사실 유포 등과 관련한 법적 제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UN인권위원회에서 각 국가의 표현의 자유 보호 정도를 판단하는 준거 중 하나가 허위사실유포죄의 존속여부"라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허위사실이 타인에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이미 오프라인 상 명예훼손죄, 사기죄, 문서위조죄가 존재하는데 표현의 자유에 위축을 줄 법률을 더 제정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즉 사이버범죄에 가중처벌하는 것은 과잉입법이란 뜻이다.

사이버범죄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목소리도 있다. 설진아 한국방송대 교수는 한 언론사 기고에서 "사이버범죄는 콘텐츠로 접근할 게 아니라 미성년 보호가 있는가 여부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선진국들의 미디어 규제기관은 '사이버 모독죄'와 같은 법안으로 인터넷 콘텐츠 내용을 규제하지 않는다"며 "다만 불법적이고 유해한 콘텐츠로부터 미성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 교수는 "미성년자 보호를 제외하면 오히려 미국과 영국 모두 인터넷은 규제의 사각지대로 설정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그는 "매체의 사회책임주의를 강하게 피력하는 프랑스에서조차 인터넷 등 신생매체에 있어서는 표현의 다양성 보장을 중시한다"고 지적했다. 선진국 사례의 경우 사이버에 대한 법적용이 오히려 가볍다는 얘기다.

◆더 많은 공론화와 토론이 필요하다

사이버범죄 관련 법률은 법학계의 합의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죄질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사이버범죄에 대한 법 적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조차 현행법 시행 후 사이버범죄 수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었다는 점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정완 경희대 교수는 이에 대해 "형법 외에 정보통신망법에 사이버 관련 규정을 두었음에도 범죄건수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관련규정이 효과가 없다고 단언하기 전에 인터넷실명제 등 정책적 보완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신중한 견해를 나타냈다.

설진아 한국방송대 교수는 "영국의 경우, 민주주의 사회의 표현 수단인 인터넷 매체 특성을 고려해 자율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인터넷에 대한 관용과 인내를 통해 민주적 여론 형성과정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창우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지난해 한 언론사에 기고를 통해 "우리나라는 정보통신망 수준은 세계 최고지만, 이를 이용하는 문화는 성숙되지 못해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이버범죄로 인한 폐해가 큰 것은 급속도로 발전하는 인터넷의 악용행위에 대해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관련 법률이 필요하다는 뜻을 비췄다.

다만 그는 "다양한 의견으로 토론해 여론을 생성하는 인터넷의 순기능을 간과해선 안되므로 필요 이상의 과도한 법률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하 회장은 "현재의 형법을 수정하는 것이 '사이버 모욕죄' 신설보다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구윤희기자 yu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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