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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범죄와 한국사회]②"법과 현실 간극 좁혀야"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의 명확성' 필요해

과거 재래시장에서 어떤 상인이 가짜 물건을 속여서 팔았다면 법은 상인에게 책임을 물었다. 상인에게 세를 받는 재래시장 주인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시장 주인은 '터'만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는 지난 세기의 이야기다. 오늘날처럼 의견 교환, 문화예술 향유, 물품 거래가 온라인으로 수렴한 인터넷 세상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터'를 제공한 OSP(온라인 서비스 업체)들은 '명예훼손' '불법 상품 유통' '저작권 침해' 등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다고 법의 경고를 받는 시대가 21세기이다.

터를 제공한 OSP와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와 간에는 '장소를 제공했을 뿐'이라는 의견과 '범죄를 방조했다'라는 의견이 상충해 왔다. 이는 검색포털, 웹스토리지, 오픈마켓 등 업종을 막론하고 온라인 비즈니스를 관통하는 하나의 딜레마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시장 주인', 즉 OSP에 대한 책임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 '기준의 불명확'…함께 고민해야 될 시점

지난 2월 지식경제부 무역위원회는 인터넷쇼핑몰 등에서 유명 브랜드, 디자인 등을 모방한 제품, 소위 짝퉁 등을 판매하다 적발될 경우 형사고발, 사이트 폐쇄조치 등 강력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위원회는 "업종단체와 합동단속을 정례화하고, 실태조사 결과 파악된 피해업체 중심으로 상담을 통해 필요시 무역위가 직권조사에 나서는 등 강력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오픈마켓은 그간 '짝퉁' 상품의 보고라는 오명을 써왔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오픈마켓 G마켓이 상표권 침해신고를 받은 상품은 2005년 5월경부터 2007년 8월말까지 약 3만여 종, 131만개에 달한다. 거래금액도 246억원에 이른다.

업계의 자정 노력으로 '짝퉁' 거래는 전보다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이에 대한 유관 부서의 입장은 '강경' 그 자체다. 심지어 공정위는 지난 해 6월, G마켓이 '짝퉁' 상품 우려가 있는 상품을 판매중지했음에도 이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정명령을 내렸다.

상표권자들이 상표권 침해신고를 하는 이 업체의 경우 해당 상품의 판매를 중지시키면서, '판매가 종료된 상품', '상품하자로 인해 판매가 중지' 등 사실과 다른 내용을 구매자에게 팝업창을 통해 보이도록 표시했다는 것.

이에 공정위는 지난 해 10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 입법예고에서 오픈마켓에 판매자의 신원정보를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해 잘못된 정보제공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OSP에 대한 막중한 책임 부과에 무게를 실었다.

당시 업체 관계자는 "개정안에 대해 준수하며, 대비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충분히 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전소법 입법예고안은 의견 수렴을 통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상황이 더 복잡한 곳은 검색포털과 웹스토리지 업체다. 상거래 사이트와는 달리 이들 사이트의 이용자들은 법을 어기는지도 모르거나 준법 의식이 희박한 경우가 많기 때문. 사안이 복잡하고 보편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만큼 법적인 판단도 어려운 것이다.

특히 포털에서 벌어지는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는 난감한 문제다. 최근에만도 탤런트 고(故) 장자연 씨의 사건 관련 '장자연 리스트'에 관심이 쏠리면서 포털은 이 문건이 자사 사이트에서 돌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광우병 촛불 정국' 및 '최진실 씨 자살' 사건을 거치면서 포털은 인터넷에 퍼지는 수많은 '말의 홍수'에 버거워하고 있다.

명예훼손의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건은 'K씨 사건'이다. 2005년 4월 K씨의 여자친구 S씨가 자살하자 다음 달, S씨의 사연을 서 씨의 어머니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린 후 포털을 통해 게시물이 확산됐다.

K씨는 네티즌들의 압박으로 직장과 학교를 그만두었고 같은 해 7월 네티즌, 기자 등 80여명을 상대로 형사소송을 냈고 NHN, 다음커뮤니케이션, SK커뮤니케이션즈, 야후코리아 등 포털 네 곳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008년 5월, 네티즌 및 기자에 대한 형사소송이 합의 및 벌금형으로 각각 종결됐다. 포털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은 2007년 5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일부승소 판결이 났고, 항소심에서는 지난 7월 고법에서 1심보다 2배 정도 배상액이 늘며 일부승소했다.

포털 업체는 재항고해 사건은 현재 공개 변론을 거쳐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

재판부(서울고법)는 당시 "피고(네이버 등 4대 포털)들이 원고(K씨)의 피해 확산에 관해 이를 인식 또는 예견할 수 있었고 또 그 결과를 회피할 수도 있었으므로 이 사건의 경우에는 피고들이 원고 관련 게시글의 존재를 알거나 알 수 있었던 시점에서 원고의 요청이 없더라도 이를 즉시 삭제하거나 그 검색을 차단할 의무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포털 노출로 인한 피해는 우리 입장에서는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뉴스에서 댓글이 달리고 피해가 확산되고 있으니 미리 조치를 했었어야 맞으니 손해배상 하라는 건데 미리 보고 삭제를 임의로 하라고 하면 네이버에 과도한 검열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게시물에 대해 검열을 하는 빅브라더가 돼라는 얘기"라며 "법적 판단 기준을 명확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첨언했다.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가 주로 '정신적' 피해를 초래했다면 저작권 위반은 '물질적' 피해를 가져왔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한국음원제작자협회는 지난 7월과 11월, 네이버, 다음에 불법 음원 유통을 막아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는데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며 고소했다.

검찰은 이를 약식기소했으나 법원은 이달 초 이 사건을 정식 재판에 회부해 앞으로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분야는 웹스토리지다. 영화를 단돈 몇백원에 내려받을 수 있는 웹스토리지 업체 덕에 영화 부가판권 시장은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는 것이 영화 저작권자들의 의견이다.

CJ엔터테인먼트 등 영화제작사, 투자사, 배급사 등 총 35개 업체는 2008년 3월 웹스토리지 업체를 고소했다. 그 결과 지난 6월 웹스토리지업체 운영자 6명, 릴리스 그룹 4명, 헤비 업로더 1명이 구속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웹스토리지 서비스 제공자에 방조 책임을 물었다는 것이다. 법원은 서비스 사업자와 릴리스 그룹, 헤비 업로더 6명에 징역 10월에서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양 측의 의견 대립은 첨예하다. 업체들은 대부분 항소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법무연수원 구본진 교수(부장검사)는 지난 13일 서울대 기술과법센터 세미나에서 "이 사건은 그동안 저렴한 가격으로 영화를 보는 시민들로부터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불법 영업을 해 오던 업체에 대해 형사적 단죄가 내려진 것"이라며 "잘못된 관행을 끊고 적법한 영화 파일 유통 경로를 마련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 웹스토리지 업체 관계자는 "법원이 자정 노력이 스스로 부족했다는데 정확히 몇% 수준까지 돼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이 없고 사업자가 왜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형사책임만을 물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업체들은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요 포털사들은 이달 초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를 출범했고, 네이버는 '말'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댓글의 주요 생산지인 뉴스를 올해 초부터 아웃링크로 돌렸다.

웹스토리지 업체들도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저작권 DNA 필터링 신기술에 관심을 보이며 이를 합법적 콘텐츠 유통 모델과 연계시키려 움직이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의 명확한 기준 제시도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안이 어떻든 간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기준의 불명확'이다. 법적 기준이 불명확해 법적 판결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체 관계자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급격한 발달 때문에 발생한 법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는데 힘이 모여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병묵기자 honnez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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