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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묵] 개인정보유출, 국가에도 소(訴)해야


GS칼텍스의 대량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보며, 재계 6위 기업의 계열사라고 보기 힘든 '원시적' 정보보안 실태에 할 말을 잃는다. 젊은 내부 직원이 'Ctrl + C, V'라는 단순조작으로 1천100만명이나 되는 개인정보를 빼낼 수 있도록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범인의 범행동기는 더 가관이다. 경찰 수사 결과, 범인은 언론에 알려 정보의 가격을 올리고 집단소송을 유도해 법무법인과 돈을 나눠가질 계획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기업과 범인에 적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범인의 의도대로 벌써 집단소송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하지만 과연 집단소송을 한다고, 기업에 거액의 과징금을 물린다고, 범인이 형사처벌 된다고, 계절마다 한 번 꼴로 터지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옥션, 하나로텔레콤, LG텔레콤 그리고 GS칼텍스. 각기 업종도 다르고 유출 경로도 제각각이지만 공통분모는 바로 주민등록번호다.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을 가중시킨 주민등록번호 제도의 개혁 또는 완전폐지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주민등록법과 관련된 위헌법률심판 혹은 헌법소원 등을 제기하거나 국가를 상대로 손배소를 진행할 법 하다.

주민등록번호 제도의 근간이 되는 주민등록법의 위헌성은 이미 법학자들의 공통 의견이다. 그들은 헌법에 명시된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며 법의 근거가 하위법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위헌성이 있다고 말한다.

주민등록번호의 생성 배경도 오늘날 민주사회의 상식에 반한다. 일제시대의 기유제도에 근간을 둔 주민등록제도는 1962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전면 공포됐고, 남북 냉전 대립의 시대에 사법경찰관리가 간첩의 색출, 범인 체포 등을 수월히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그 연원이었다.

나이와 성별 태어난 지역까지 식별이 가능한 주민번호가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 무형자산으로 치환돼, 이번 GS칼텍스 건에서 보듯 언제든지 범죄에 악용될 여지를 갖게 된 것이다.

국가는 국민을 일사분란하게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인 이 번호를 국민적 반대가 있지 않는 이상 절대 폐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진보정권이 집권을 하더라도 기대하기 힘들다. 완벽한 개인식별번호 제도가 사회 안녕을 유지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언제까지 '다음 타자'는 누굴지 꺼림칙한 마음으로 살 것인가. 유명 인터넷 기업인 SK커뮤니케이션즈와 NHN이 보유한 개인정보만 해도 각각 4천500만, 3천100만건에 달한다.

주민번호는 이미 그 효용성을 상실했다. 이미 광범위하게 유출된 우리의 개인정보는 초고속 인터넷 망을 타고 세계 어디서든 악용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행정안전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민번호 대체수단인 아이핀도 결국 SK커뮤니케이션즈나 NHN 규모를 가진 또 하나의 주민등록번호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일 뿐 본질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할 때 주민번호를 통한 실명인증은 민간 기관에서 담당한다. 국가가 부여한 번호를 민간에서 관리하는 상황이 모순된 상황이다. 그 폐해가 몇 달 간격으로 터지는데도 국가는 '꺼림칙하지만 큰 반발이 없으니 그대로 간다'며 팔짱을 끼고 있다.

지금이라도 국가에 왜 주민번호를 요구하느냐고 말해야 한다. 완전 폐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나이와 성별을 알 수 없는 무작위 번호로 전환해도 개인정보의 무형자산으로서 가치는 현저히 떨어지게 될 것이다.

한국처럼 개인식별이 가능한 주민번호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사는 나라는 많다.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개인식별번호 없이 사회보장번호나 사회보험번호로 필요 업무를 대체한다.

프랑스나 독일 등은 식별번호를 부여하지만 수집이 엄격히 제한된다. 숫자는 무작위로 당사자가 '몇 자리인지도 모를 만큼' 일상생활과 관계가 없다.

한국의 급격한 산업화 드라이브는 '한강의 기적'을 낳았지만 그 이면에는 양극화, 부의 집중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갑자기 얻게 된 물적 자산에 걸맞은 성숙한 사회적 분배 의식이 결여된 채 추진됐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정보화 드라이브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 수준의 휴대폰과 초고속 인터넷 보급을 자랑하는 'IT 코리아'의 영광을 누렸지만 우리는 그 급격한 정보화의 폐해를 겪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개인정보 유출이다.

개인정보 유출 건이 법률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이래, 변호사들은 나이트 클럽 '삐끼'를 방불케 하는 호객활동을 벌이고 있다. 과연 몇 푼 되지 않을 손배소 금액을 받으며 변호사들의 배를 불려주는 것이 중요한가.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고 정보화 시대에 많은 폐해를 일으키고 있는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이 중요한가. '나무만 보지 말고 달도 봐야' 우리는 정보화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정병묵기자 honnez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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