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주민번호, 과연 필요한가 ①]'마(魔)의 숫자' 열세자리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 고민 있어야

'마(魔)의 숫자' 열세자리…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태어남과 동시에 주어지는 주민등록번호이다. 최근 주민등록번호가 곳곳에서 유출돼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의 불안은 깊어지고 주민등록번호 유출에 대한 대책은 없는 현실이다. 법학자들은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열세자리에 개인의 사생활이 또렷이 기록돼 있고 언제든지 추적이 가능한 주민등록번호...과연 우린 지금 이 순간, 무엇을 고민해야 되는지 [주민번호, 과연 필요한가]라는 기획을 통해 아이뉴스24에서 파헤져본다.[편집자주]


다음커뮤니케이션, 옥션, 하나로텔레콤, LG텔레콤…….

올해 회원 개인정보가 자의든 타의든 새나간 유수의 국내 기업들이다. 각각 유출 규모와 개인정보가 빠져나가게 된 경로 및 방법이 제각각이지만 공통분모가 한 가지 있다. 바로 주민등록번호이다.

이 중 가장 많은 인원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옥션 해킹 사태의 피해규모는 1천81만명. 대한민국 인구 약 4천800만 중에서 현재 전국민의 3분의 1 이상 되는 주민등록번호가 어디선가 떠돌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각종 정보유출 사건 이후 '보이스 피싱' '신원미상 휴대폰 회원가입 인증문자' 등이 성행하며 국민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해킹으로부터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기술적 부분과 개인정보를 소중하게 관리할 기업 윤리 문제 등이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주민등록번호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박정희 정권 초기 부여한 '국민 군번'

주민등록제도의 기원은 일제 치하인 1942년 10월에 시행된 기유(寄留)제도. 그 뒤 1962년 5월 주민등록법이 공포되며 기유제도가 폐지되고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 성별, 생년월일, 주소, 본적 등을 각 지방에 등록하도록 의무화하는 '주민등록제도'가 실시됐다.

법이 공포 시행된 1962년 5월은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군사 쿠데타에 성공해 정권을 손에 넣은지 만 1년 후로, 제1차 경재개발 5개년 계획(1962.2)을 실시하며 막 '근대국가 건설'에 발동을 걸던 시기였다. 이러한 주민등록법과 그에 근거한 주민등록번호 생성을 두고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문송천 교수는 이를 두고 "국민 개개인에 부여한 군번"이라고 해석했다.

주민등록제도는 이후 몇 차례 개정을 거쳐 ▲17세 이상(개정안)의 주민등록자에 대해 주민등록증을 발급하고 ▲주민등록을 기피하거나 기간 내 신고하지 않을 시 형벌 및 벌금에 처하게 하며 ▲사법경찰관리가 간첩의 색출, 범인 체포 등 직무 수행에 있어 주민등록증의 제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현행 주요 규정이 들어갔다.

주민등록번호의 핵심 문제는 13자리로 개인 식별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처음 시행할 때 12자리였던 주민등록번호는 1975년 주민등록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으로 생년월일, 성별, 지역을 식별할 수 있는 13자리로 바뀌었다.

국민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앞의 6자리는 생년월일을, 뒤의 7자리 중 맨 앞자리는 출생연대와 성별을 나타낸다(2000년대 출생 남자 3번, 여자 4번). 뒤의 7자리 중 두 번째 자리부터 다섯 번째 자리까지 네 자리는 최초 주민번호 발급기관의 고유번호이며, 여섯 번째 자리는 신고순위, 그리고 마지막 자리는 '오류수정번호'이다.

◆ 정부 "나 몰라라"…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있어야

이처럼 주민등록번호 13자리만 가지고 사람의 성별, 나이, 생년월일 그리고 지역까지 추산할 수 있다. 이에 법학자들 사이에서는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국민의 사생활 보호권을 침해해 헌법의 기본 정신에 반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또 최근 각종 성행하는 '보이스 피싱'을 유발하는데 가장 적합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국회 및 정부 당국은 주민등록번호 및 개인정보보호 관련 대책에 '넋 놓고' 있는 상태다.

더구나 17대 국회에서 노회찬, 이은영, 이혜훈 의원 등이 발의한 개인정보보호 법안은 5년 간의 '긴 휴식' 끝에 회기가 끝난 뒤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의 개인정보보호법 구성에 참여한 한 법학자는 "남은 회기라도 제발 통과시키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5년 구 정보통신부가 도입한 아이핀 제도는 2008년 1월 현재 전체 웹사이트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행정안전부의 지핀도 활용이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 두 기관이 아이핀과 지핀을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김학웅 변호사(법무법인 창조)는 "아이핀 지핀 자체도 주민등록법에 기반했기 때문에 그 사이트 자체가 해킹에 노출될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진정한 대체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의 양상을 가중시킬 미봉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정희 정권 때 무장공비 침투 이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이 제도가 지금 유지돼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인터넷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민등록번호는 국가가 만들어 놓고 온라인상 회원 실명 대조 등은 민간 신용정보기관에 관리를 위탁하며 나 몰라라 한다"며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옥션과 하나로텔레콤을 통해 정보가 유출된 일부 피해자들은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요구한 상태다. 또 두 기업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피해자들만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승소해 주민번호가 변경되더라도, 배상액을 받아내더라도 여전히 주민번호 유출의 위험성은 존재한다. 이미 떠도는 주민등록번호도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정병묵기자 honnezo@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주민번호, 과연 필요한가 ①]'마(魔)의 숫자' 열세자리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