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벤처생태계가 더욱 빈약해지며 제2의 NHN, 휴맥스와 같은 스타 기업이 나오기 힘든 구조로 바뀌어가고 있다.
소규모 벤처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금융위기로 '강자만 살아남는' 경제 구도가 짜여지며 벤처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밀려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기업의 지속적인 노력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벤처, 성장 한계 부딪히는 이유
금융위기 이전부터 기술 벤처의 몰락은 꾸준히 이야기되어온 과제다.
솔루션 업체인 코난테크놀로지는 "한국 내 벤처는 좁은 한국시장에서 대기업들과 경쟁하다 보니 모든 면에서 불리한 벤처가 성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대표 벤처인 휴맥스만 해도 국내에서는 대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초기 투자 자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는 점도 벤처 생태계가 커 나가기 힘든 이유다. 창투사나 엔젤투자가들은 여전히 초기 벤처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어, 초기 창업자들은 투자확보를 위한 네트워크가 부족해 수익이 없는 기간동안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술 벤처 창업자들이 거의 '경영자'가 아닌 '기술자'라는 점도 초기 기업들의 진입장벽을 높게 만든다. 경영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영업, 관리, 재무 등 다양한 직책을 소화해야 한다.
이같은 기본적 한계에 더해, 지난해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인한 금융위기 이후 벤처업계로 돌아가는 자금줄마저 끊어지고 있어, 수많은 우수기업들이 빛도 보지 못하고 사장된다는 것이 업계 지적이다.
◆벤처생태계 살리려면 '대기업' 나서야
일단 벤처생태계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갑-을' 관계로 여겨졌던 대기업과 벤처 협력사 간의 관계가 '윈-윈'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기청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들이 상생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또 전략적 차원에서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 협력사 투자를 확대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 대기업들도 상생협력 차원에서 공공구매, 융자대금 차원의 네트워크는 제공하지만 투자 차원에서는 활성화가 안 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MS, 인텔 등 글로벌 IT대기업들은 이미 벤처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존을 외치고 있다. 특히 MS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로 업계에 알려져 있다.
한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몇 년사이 벤처 창업이 급감, IT산업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직접 IT기업의 창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MS는 단돈 100달러에 창업 요령과 운영방안을 가르칠 뿐 아니라, 창업을 위한 투자 비용이 부담되지 않도록 소프트웨어를 무료 제공하고, 기술 자금 마케팅 등 사업 전반에 걸친 폭넓은 지원을 제공한다.
온라인 음악 사이트를 운영하는 한국 토종 벤처 '큐박스'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세계 개발자 네트워크를 통한 기술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글로벌 벤처캐피털리스트들에게도 우리 회사가 소개됐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를 통해 직접 해외에 진출한 업체도 적지 않다. 이지씨앤씨는 일본 IPTV 시장에 진출, 일본 브로드 TV와 직접 계약을 맺는가 하면 교통방송 IPTV 서비스를 계약했다. 이같은 성과 뒤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노베이션센터 지원이 있었다. 솔루션부터 기술, 인력, 컨설팅 전반에 대해 지원해주는 한편, 글로벌 벤처투자자들과의 미팅도 적극적으로 주선했다.
MS 관계자는 "플랑크톤처럼 아주 작지만 IT생태계를 위해 필요한 것이 벤처기업"이라며 "벤처 기업이 계속 창업되고 이들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해야 IT산업도 발전한다"고 말했다.
인텔의 경우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VC투자를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인텔 캐피탈' 조직을 통해 이미 국내 벤처기업 중 기술력 우수한 10개 이상의 기업에 대해 자금투자를 진행 중이다.
◆돈이 돌아야 한다…"정부가 도와줘야"
그러나 현재 벤처기업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보다도 '자금'이다.
은행들이 돈줄을 조이고 대출 상환을 독촉하는 한편, 자금줄이 돼 줄 민간자본은 보수적 운영을 선호해 사실상 돈이 돌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특히 정부 역할이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투자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만, 벤처투자 재원인 국민연금, 연기금, 은행은 투자를 보류하거나 중지한 상태이며, 민간은 말할 것도 없다"고 말하며 "정부에서 나오는 모태펀드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올해 모인 모태펀드는 총1천450억원. 이 중 제조업체나 IT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것은 850억원 규모다. 나머지는 문화 부문이나 특허에 투자된다. 하지만 모태펀드를 지원받겠다며 정부에 들어온 요청은 총 4천500억원이 넘는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현재 추경예산을 검토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한국벤처투자도 "올해는 경기침체로 인해 출자지원을 확충해서 조기에 공급하는 형태로 추진할 것"이라며 "정부의 역할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IT벤처의 경우, 지원을 총괄하던 정통부가 사라지며 지원 체계에 두서가 없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중복 투자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창업 지원이 그린테크놀로지와 신성장동력 위주로 진행되며 IT가 다소 소외됐다는 지적도 있다.
◆투자문화, 벤처정신·기술중시로 바뀌어야
VC들의 투자 문화도 '안전중시'에서 본연의 '기술력 중시'로 돌아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기업가 정신에 투자하는 VC가 늘어나야 하지만, 대부분 안전한 길을 선택하고 있다"며 "경기침체로 인해 투자-엑시트-재투자의 선순환 구조가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물론 희망의 싹은 보이고 있다. 경기가 하반기부터 회복될 것으로 보이며 벤처들의 '귀환'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
김영수 벤처산업협회 금융전문위원은 "최근 코스닥 증시가 좋아지며 '위기 때 투자하자'는 VC가 늘고 있다"며 "정부도 최근 자금을 늘려 투자재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벤처펀드들이 많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지난해는 굉장히 (투자실적이) 나빴다"며 "지난해 투자금액이 7천억원이었다면 올해는 1조 정도(9천300억원)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투자할 만한 벤처정신과 참신성을 갖춘 기업이 많지 않다는 업계의 반론도 있어, 기업들 스스로 벤처정신을 되살리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IT벤처 전문 투자 VC인 IDG벤처스 오덕환 사장은 "경기가 좋아야 직업이 많이 나오고 사람들의 창업열기가 높은데, 경기가 어려울 때는 대기업 등에서 근무하려는 경향이 높아 창의적인 기업들이 나오지 않는다"며 "이노베이티브하고 획기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투자를 부르는 '킬러 앱'을 가진 벤처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이지은기자 leezn@inews24.com